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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우상수 사무차장이 두 조합원의 철탑농성이 296일만에 해제된 2013년 8월 8일 철탑앞에서 심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우상수 사무차장이 두 조합원의 철탑농성이 296일만에 해제된 2013년 8월 8일 철탑앞에서 심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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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짧게는 12년, 길게는 16년간 학교에서 '용기'와 '희망'에 대해서 배웠다. 비단 학교 뿐이겠는가. 부모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고 동네 어른은 물론 사회지도층은 기회 있을 때마다 희망과 용기를 말했다. 우리 사회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자기계발서는 최면이라도 걸듯 '사람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 불의를 보고 나서는 용기를 가져라'고 세뇌한다. 이 사회는 '항상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하라'는 역설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다.

GRDP(지역내총생산액)가 4만 달러가 넘은 지 이미 오래된, 주민 평균 소득이 타 도시에 비해 월등히 높은 부자도시 울산에서 20여년간 살다보니, 이같은 '용기'와 '희망'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허상에 가득찬 것인지를 깨닫게 됐다.

어려서부터 늘 배워왔던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목숨 걸고 불투명한 미래에 투자했던 많은 사람들, 특히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허탈감에 빠져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비정규직 중에서도 용기를 내서 권리찾기에 앞장서면서 희망을 갖자고 부르짓던 그들. 그들 간의 사정이 추석 귀향길을 앞두고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정규직 손엔 '1000만 원', 비정규직 손엔 '빚'

1980년대 중반, 국민들은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탄압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제적인 3저 현상(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의 영향으로 국내 경기는 호황을 맞았다.

당시 기자가 사는 부산에서도 상당수 친구들이 날로 확장하는 울산의 현대차공장에 취업했다. 취업의 조건은 고등학교 졸업자로 대학물을 먹으면 안된다는 단서가 달렸다. 독재에 저항하면서 꿈틀거린 소위 386세력이 노동계에 침입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다. 신체 건강하고 성실하고 말 잘 들을 것 같으면 합격됐다.

경기 호황을 맞아 컨베이어 속도가 나날이 높아져도 나오는 족족 팔리는 자동차는 현대차 생산직 사원의 수를 급격히 늘렸다.

하지만 1997년 IMF라는 복병을 맞아 휘청거린 국내 경기를 자동차 산업도 피해갈 순 없었다. 자동차 생산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됐다. 몇 년 후 경기가 해복되자 그 빈자리에는 어느 사이 '비정규직'이란 이름표를 단 하청업체 사람들이 메웠다. 당시 부산에 사는 친구들 상당수도 그 자리에 들어갔다.

그후 같은 공장, 같은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신분이 둘로 나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난 2013년 9월 현재, 한솥밥을 먹던 노동자들의 모습은 극과 극이다.

최근 10여차례 부분파업으로 갈등을 겪던 현대차노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임단협 협상을 타결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타결의 대가로 많은 금액을 손에 쥐고 귀향길에 오르게 됐다. 현대차 울산공장 한 노동자는 "추석 전에 세금을 떼기 전의 금액으로 1000만 원 정도 받는다"고 말했다.

과거 성과급 대상에서 제외됐던 하청업체 노동자(비정규직)들도 지난 2003년 비정규직노조가 생긴 후 수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지금은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수준의 추석 전 일시금을 받게됐다. 다만 정규직에 비해 기본 임금이 낮아 정규직의 80% 정도 금액을 추석 전에 받는다.

이쯤되면 "대법원 판결에 따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은 다른 도시 노동자들에 비해 임금이 높다, 배부른 소리다"고 일축해왔던 현대차 회사 및 상공계, 보수층의 논리를 제대로 반박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모두 추석 전 이처럼 목돈을 쥐고 고향에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실상은 그러질 못하다. 상당수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일시금은 커녕 오히려 빚과 이자만 안고 고향에 가거나, 혹은 고향가는 길을 아예 포기하고 있다.

귀향길 포기한 비정규직에게 더욱 슬픈 건...

1997년 IMF 때 정리해고된 정규직의 빈자리를 채워왔던 비정규직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받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2003년 노조를 결성하고 2004년 노동부에 불법파견을 진정했다. 곧이어 나온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과 이어진 사법당국의 불법파견 무혐의 결정, 이어 8년간 이어진 정규직화 재판, 그리고 대법원 판결... 이 과정은 이미 너무 많이 다룬 문제라 식상할 정도다.

문제는 용기를 내서 비정상적인 노동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한 비정규직들이 해고되거나 구속되고 수배되면서 고충을 겪었고, 추석을 앞두고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용기를 내서 권리찾기에 앞정섰던 현대차 비정규직 20여명은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 40여명은 수배됐거나 지금도 수배상태에 있다. 200여명은 해고돼 길거리로 나앉았고 200여명은 수백 억 원의 회사측 손해배상 청구에 통장이 가압류된 상태다.

현대차에선 8000여명의 비정규직들이 일하지만 실제로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1200여명에 불과하다. 이중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용기를 내서 앞장서서 저항한 수백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이 거액의 일시금을 쥐고 고향길에 오르는 것을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동안 배워 왔던 용기와 희망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달는 것은 아닐까.

여기다 더해 2010년과 2012년 대법원이 비정규직의 대표소송에서 정규직임을 판정한 후 벌어지고 있는 일은 비정규직 간의 또 다른 분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현대차 회사측은 판결 이행은 고사하고 신규채용이라는 이름으로 퇴직하는 정규직의 자리에 비정규직들을 채워가고 있다. 올해 벌서 1000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신규채용되는 등 올해에만 1750명이 신규채용될 예정이다. 회사측은 이렇게 2016년까지 3500명의 비정규직을 신규채용으로 정규직화 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비정규직노조 등은 현대차의 신규채용이 근속년수 등을 무시한 결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용기를 내서 정규직 전환이라는 희망을 부르짖다 해고되고 빚만 떠안은 사람들. 그들에게 추석 귀향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함께 희망을 가져야 할 동료 비정규직들이 신규채용에 응하는 모습을 볼 때다.

지난 2010년 해고된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우상수 사무차장은 얼마전 인터뷰에서 "불법파견으로 불이익을 받는 모든 비정규직을 위해 낮에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노조일을,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3가족 생계를 꾸려간다"고 했다.

그는 한 달에 들어가는 이자만 수십 만 원이라고 했는데, 빚으로 빚을 메우고 밤새 번 돈으로 이자 내기에 바쁘다고 했다. 해고된 비정규직 수백 명의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고도 했다.

우리가 오랜 세월 배워온 '용기'를 내서 앞장서서 희망을 외쳤건만, 왜 이렇게 됐을까. 그들의 귀향길은 서글프기만 하다.


태그:#현대차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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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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