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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내 대형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자동차가 빠진 공터에서는 어린이들이 뛰어다녔다. 길에는 2, 3살 된 아이와 함께 당나귀 마차를 탄 가족들이 보였고, 간간이 친환경 전기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로에는 최소한의 차량만 출입하도록 곳곳에 화단을 설치했다. 10분 전 마을 외곽 4차선 도로에서 본 크고 작은 자동차들은, '생태교통마을'이라고 쓴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 16일 오후에 가 본 '차 없는 마을' 수원시 행궁동의 모습이다.

수원시 행궁동 '차없는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차량 제한을 위해 화단으로 막아놓았다.
 수원시 행궁동 '차없는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차량 제한을 위해 화단으로 막아놓았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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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행궁동에서는 9월 한달 간 '차없는 마을'을 실시한다. 16일 찾은 행궁동에는 실제 자동차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원 행궁동에서는 9월 한달 간 '차없는 마을'을 실시한다. 16일 찾은 행궁동에는 실제 자동차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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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행궁동은 9월 1일부터 '생태교통 축제'를 시작해 한 달간 자동차 없이 생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자동차 대신 사람이 중심이 된 도시를 만들고 온실가스 등 환경 문제를 해결할 대안적 교통을 체험해보자는 취지다. 걷거나 자전거 타기 등 매연을 유발하지 않는 친환경 이동, 행궁동에서는 이런 '생태교통'과 관련된 이색교통 체험 및 문화공연 등이 한 달간 열린다. 자전거도 400여대 정도 준비돼있어 누구나 신분증만 내면 무료로 빌릴 수 있다.

안전하고 깨끗한 거리...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해요" 

축제 시작 후 약 2주가 지난 16일, 자전거를 빌려 약 2시간 동안 마을 곳곳을 직접 돌아다녀 봤다. 일단 외관상 생태교통 축제는 꽤 성공적인 듯 보였다. 월요일 오후인데도 마을이 구경 온 사람들로 붐볐기 때문이다. 특히 4인용 자전거와 아기용 좌석이 설치된 2인용 자전거를 탄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았다.

'이색 교통 체험' 중 하나인 당나귀 마차를 타고 있는 가족들.
 '이색 교통 체험' 중 하나인 당나귀 마차를 타고 있는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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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평소에도 자전거 타는 걸 워낙 좋아해요. 그런데 저희 사는 곳이 시골이라서, 도로도 울퉁불퉁하고 자동차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많아서 위험하다고 못 타게 했거든요. 여기는 차가 아예 없으니 마음이 너무 편하네요. 애들도 신나는지 자전거만 벌써 두 시간째 타고 있어요."

삼남매와 함께 경기도 양주시에서 구경 온 주부 장현주(43)씨는 "자동차가 없으니 안전해서 좋다"고 말했다. 두 시간 동안이나 '이색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이재빈(7) 군도 "재미있어서 맨날 여기 오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자전거 앞에 달린 유모차에 21개월 된 아들을 태우고 달리던 서승원(41)씨는 옆 동네인 남창동에 산다. 서씨는 "(생태교통은) 환경을 살린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라며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 좋긴 한데, 다만 이걸 어떻게 꾸준히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수원시에 따르면 축제 시작일부터 지난 14일까지 행궁동을 찾은 관광객은 44만 명이 넘었다.

이색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이재빈(7) 군은 "재밌어서 계속 오고싶다"고 말했다.
 이색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이재빈(7) 군은 "재밌어서 계속 오고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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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없는 마을'이 진행 중인 행궁동 일대는 낮 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차없는 마을'이 진행 중인 행궁동 일대는 낮 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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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차 없는 마을'을 위해 약 4천 3백 명의 행궁동 주민들은 개인 차량을 마을 외부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하고, 10~20분 간격의 셔틀 버스를 이용하는 '자발적 불편'을 겪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도 4~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상주, 생계용 영업차량이나 긴급한 경우를 빼고는 차량 출입을 제한했다. 단 짐이 많거나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의 경우는 콜 센터로 전화 시 직원이 바로 출동해 집 앞까지 이동을 도와준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니, 중고등학생 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함께 7인용 자전거를 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주민센터 앞 광장에서는 마침 야외 국악연주가 한창이어서, 자리에 앉아 지켜보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공연을 지켜보던 한 주민은 "주말에는 밸리댄스, 라틴댄스 등 다양한 동아리 공연도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마을 곳곳에 영업용 차량들이 주차돼있어 완전히 '차 없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실제로 교회 등 대형 주차장들이 비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행궁동에서는 학생들이 7인용 자전거를 함께 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행궁동에서는 학생들이 7인용 자전거를 함께 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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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월 된 아들과 함께 행궁동을 거닐고 있는 서수원씨의 모습.
 21개월 된 아들과 함께 행궁동을 거닐고 있는 서수원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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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준비해온 '생태교통 추진위원단(아래 추진위)'의 이장영 시설팀장은 "100%는 아니지만 주민 중 열에 아홉은 취지에 공감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생태교통 체험은 주민의 '자발적 참여'에 달려있어, 추진위 내부에서도 우려가 컸는데, 축제 시작 직후인 지난 2일 약 5%의 차량만을 남겨두고 대부분의 차량이 빠져나갔다고 한다.

이 팀장은 "상하수도를 포함한 기반시설 정비 및 특화거리 조성 등에만 약 130억의 예산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약 5개월간 공사가 진행되자 주민 불만이 터져 나왔다. 수원시 추진위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5~6번의 주민 설명회를 열고, 직접 지역주민의 집에 찾아가는 등의 정성을 쏟았다고. 김지영 추진위 홍보주무관은 "행궁동은 화성 행궁 바로 옆이라는 상징성도 있고, 낙후된 도심을 살리는 '도시재생'의 의미도 있어 선정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낙후 도심이었던 행궁동은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낙후 도심이었던 행궁동은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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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리는 주민 반응... "매일 셔틀 기다리려니..."

관광객이나 외부 시선과는 달리, 행궁동에서 직접 살고 있는 주민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차 없는 마을'을 시행하면서 안전하고 깨끗한 거리가 됐을지는 몰라도, 생활은 더 불편해졌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된 불만이었다. 길에서 만난 지체장애인 차경희(62)씨는 "확실히 차가 없으니 예전에 비해 안전하긴 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같이 휠체어를 탄 사람도 그렇지만 뛰어노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식당을 운영 중인 이아무개씨(50)는 "예전보다 도로도 깨끗해지고 공기도 맑아진 건 맞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많다고 해서 딱히 매출이 더 오르진 않더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장 볼 때나 외출할 때는 셔틀(버스)을 기다리거나 걸어가야 해서 더 불편하다"고 말했다. 길가에 모여 있던 행궁동 주민들도 "한두 번 구경 오기는 좋겠지만, 출퇴근할 때도 그렇고 여기 사는 사람들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길가에 앉아있던 행궁동 주민들은 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많다고 털어놨다.
 길가에 앉아있던 행궁동 주민들은 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많다고 털어놨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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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가스검침원 김아무개씨(45)도 기자를 붙잡고 말을 보탰다. 그는 "가스 검침을 해야 되는데 일일이 걸어 다니면서 하려니 시간이 배로 걸려요, 다리도 아프고…. 며칠 후엔 고지서도 넣어야 하는데"라고 털어놨다. 가스 검침차량을 긴급한 경우로 쳐주지 않아 결국 차를 멀리 주차시키고 들어와야 했다는 말이었다.

생태교통 추진위에서도 일부 주민 사이에서 나오는 민원을 파악하고 있었다. 추진위 홍보담당자는 "아무래도 2주 정도 지나다 보니 주민분들이 생활 면에서 많이 불편해하시는 것 같다"며 "그래도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24시간 콜센터도 운영하고, 전기 자동차도 수시로 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준비한 축제인 만큼 끝까지 잘 마무리해 좋은 예로 남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생태교통 축제는 추석 기간인 18~20일에도 계속된다. 추진위는 행궁동을 방문하는 차량 또한 '추석 방문객용' 스티커를 붙이고 임시 주자창으로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마을 안에서는 추석맞이 풍물놀이 공연, 한가위 국악공연 등 추석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자세한 일정은 ' 2013 수원 생태교통 축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태그:#수원시 행궁동, #차없는 마을, #생태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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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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