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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직권남용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 관계자들이 모두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증언하고 있다. 권 과장이 고립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권 과장의 모습니다.
 한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직권남용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 관계자들이 모두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증언하고 있다. 권 과장이 고립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권 과장의 모습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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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8일 오후 2시48분]

지난달 19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출석한 경찰들 사이에서 '왕따'였다. 이날 참석한 경찰들은 대부분 사건 구도상 대척점에 있는 서울경찰청 사람들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런데 한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법정 공판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지금까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 관계자가 모두 사건 당시 권 과장과 함께 수서경찰서 수사라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분위기는 사뭇 의미가 다르다.

4차 공판까지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당시 권 과장의 직속 상관이었던 이광석 지하철경찰대장(전 수서경찰서장)과 직속 부하였던 김성수 경기광주경찰서 112상황실장(전 수서경찰서 지능팀장)과 유지상 수서경찰서 사이버팀장, 3명이다. 이들은 '왕따'까지는 아니더라도 결코 외압 의혹을 폭로한 권 과장을 지지하는 증언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듣기에 따라서는 피고인 김용판 전 서울청장을 두둔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지난달 30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권 과장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의 오피스텔 대치 초기인 지난해 12월 12일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려 했으나 오후 2시59분경 김용판 청장이 직접 전화를 해서 영장 신청을 막았다고 증언했다. 권 과장은 당시 전화를 수서서 지능팀 사무실 곽아무개 형사 자리에서 받았으며, 그 자리에는 수사팀 직원들이 있었고 마침 이광석 수서서장도 사무실에 와서 자기 앞에 서 있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하지만 17일 증인으로 나온 이광석 전 수서서장은 "그런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보다 앞선 6일 증인으로 나란히 출석한 김성수 전 지능팀장과 유지상 사이버팀장 역시 똑같이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고 말했다.

또 권 과장은 당시 전화를 끊고 앞에 있던 이 서장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니까, 이 서장이 "김 청장과 오전에도 통화하고 직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오전에는 (영장 청구에 대해) 설득이 가능했는데 오후에는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설득이 안되고 막 화를 낸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 전 서장은 법정에서 그런 사실을 부인했다. 검사의 집요한 신문이 계속되자 이 전 서장은 '오전 승인, 오후 보류'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권 과장에게 이야기를 했다면) 그 후 회의석상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김 청장이) 화를 내고 그런 기억은 없다"고 답했다.

결정적인 '압력' 부분에서 다른 증언

당시 수서서 관계자들이 권 과장의 모든 진술과 배치되는 증언을 한 것은 아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는 사안, 예를 들어 서울청 증거분석팀이 김하영씨의 노트북에서 지난해 12월 14일 복구한 텍스트 파일에 담긴 내용이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고, 그 내용을 12월 18일 밤 늦게까지 수서서에 전혀 알리지 않았다는 점, 결과적으로 12월 16일 한밤 중간수사결과 발표가 적절치 않았다는 점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권 과장의 증언과 부합했다.

하지만 이들은 김 전 청장의 부당한 지시 또는 압력과 직접적으로 관련될 수 있는 사안에서는 마치 짜맞춘듯 권 과장과 달랐다. 결론적으로 이번 재판의 핵심은 김 전 청장의 직권남용을 인정할 수 있느냐다.

권 과장은 지난해 12월 19일 새벽 서울청으로부터 어렵게 넘겨받은 ID와 별명으로 수서서 수사팀이 급하게 구글 검색을 해보니 중간수사결과 발표와는 달리 혐의점들이 많이 발견됐고, 이 상황을 이 서장에게 보고하자 이 서장이 "서울청이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 전 서장은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은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이 자리에 같이 있었다는 유지상 사이버팀장 역시 이 서장의 발언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권 과장과 이 전 서장은 이 부분을 놓고 대질조사까지 벌였다.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 전 서장에게 검찰이 물었다.

- 증인이 기억이 안나는지, 말을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서울청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는 취지의 태도나 말을 한 기억은 없는가.
"그때 당시가… 본격 수사 전 단계이고, 개인적인 느낌은 그 이후에도 서울청 분석팀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서울청이 고의로 은폐해서 나를 죽이려 한다, 뭐 이런 생각까지 하지는 않았다."

- 그러면 권 과장의 이 부분 진술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본인의 생각이기 때문에… 하여튼 나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

- 증인은 권 과장과 대질 조사를 받을 때도 이런 말을 했느냐는 질문에 기억은 안난다고 답했다. 당시 명확하게 부인한 것은 아닌 것으로 이해됐는데, 증인의 최종 입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인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데, 나는 그런 말을 한 사실이 기억 안난다."

김용판 전 청장 변호인단의 '권은희 흔들기'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전 수서경찰서 관계자들은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부당한 지시 또는 압력과 직접적으로 관련될 수 있는 사안에서는 마치 짜맞춘듯 권은희 과장과 다르게 진술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재판의 핵심은 김 전 청장의 직권남용을 인정할 수 있느냐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전 청장의 모습니다. 그는 이날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전 수서경찰서 관계자들은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부당한 지시 또는 압력과 직접적으로 관련될 수 있는 사안에서는 마치 짜맞춘듯 권은희 과장과 다르게 진술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재판의 핵심은 김 전 청장의 직권남용을 인정할 수 있느냐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전 청장의 모습니다. 그는 이날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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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청장측 변호인단은 이런 틈새를 적극 공략했다. 변호인은 김성수 전 지능팀장에게 "권 과장이 당시 언론 담당이었는데 서장이나 팀장과 상의 없이 임의로 언론과 접촉해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다"라고 물었다. 이에 김 전 팀장은 "당시 언론 창구는 수사과장으로 일원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브리핑을 위해서는 서장님에게 이야기를 하고 해야 했다"면서 "그런데 그런 상의 없이 보도가 나간 게 있었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서울청에서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를 하드디스크 분석과정에 참여시키려고 하자 항의 표시로 유지상 사이버팀장을 철수시켰다는 권 과장의 증언에 대해 "항의 표시로 증인이 철수한 것인가"라고 유 팀장에게 물었다. 유 팀장은 "항의 표시는 아니었다"고 답했다. 변호인은 "이번 사건 전반적으로 봤을 때 수서서장과 권 과장이 충돌한 경우는 자주 있었나", "혹시 권 과장과 직원들이 업무관계로 사이가 안 좋았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다음은 변호인과 김 팀장 사이에 오간 문답이다.

- 권 과장은 검찰 송치 이후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며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아는가.
"그런 보도를 봤다."

- 권 과장이 언론 제보 전에 수서서 수사팀에 의견을 구한 적이 있는가.
"그런 적 없다. 나에게는."

- 다른 사람에게는?
"알 수 없다."

- 이런 폭로에 수사팀은 동조나 응원하는 분위기였나.
"모르겠다."

- 혹시 증인은?

마지막 질문에 김 팀장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피해갔다.

김 전 청장 변호인단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 검찰 기소 논리의 상당부분은 권 과장의 진술에 근거하고 있는데, 처음 사건기록을 검토할 때부터 경찰 관계자 진술은 결코 권 과장에게 유리하지 않았다"면서 "경찰이 똘똘 뭉쳐서 수사권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검찰과 대립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 전 청장 공판에는 전현직 경찰들이 방청석에서 자주 목격된다.

수사와 공판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한 검사는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라며 "그래서 물증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권 과장의 진술이 일부 탄핵되더라도 물증에 의해 김 전 청장의 직권남용 혐의 입증에는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태그:#권은희, #김용판,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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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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