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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선발대와 접촉을 했는데…."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돌연 연기한 데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전혀 그런 분위기는 없었다"고 했다. 이산가족상봉 준비를 위한 선발대가 21일 오전 북측을 접촉할 때만 해도 상봉행사를 연기할 것 같은 낌새는 없었다는 것이다.

해금강호텔
 해금강호텔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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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연기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엔 상봉단 숙소 문제 때문 아니냐는 추측이 일었다. 남측은 외금강호텔과 금강산호텔을 상봉단 숙소로 사용하자는 입장이었고, 북측은 이 호텔에 이미 해외 관광객 예약이 돼 있다며 해금강호텔과 현대생활관(현대아산 직원 숙소)을 숙소로 제시한 상황이었다. 남측 선발대는 지난 20일 금강산에 도착한 뒤부터 북측과 이 문제로 협의해왔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통일부 당국자는 "숙소 문제는 북측도 '남측 입장을 잘 이해했다'고 했고 계속 협의를 하자는 입장이었다"며 "절차적이고 실무적인 문제 때문에 전체적인 판을 깨거나 그러진 않았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김관진 발언 때문에? 조평통 담화 내용은 표면적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관진 국방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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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행사 연기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담화에서도 딱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연기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내용을 요약하면 '남한의 대결적 자세로 인해 정상적인 대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남한 사회에 북한 비난 정서가 딱히 높아진 것도 아니다.

조평통 성명은 구체적으로 ▲남한은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에 의해 현재의 남북간 유화국면이 형성됐다고 적반하장식으로 선전하고 있다 ▲남한이 북한의 체제와 제도를 전면부정하면서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 ▲남한 정부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구속사건 등으로 진보민주인사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등 3가지를 상봉행사 연기 이유로 들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측 논리대로 보자면 남한의 국방부장관 발언은 대통령이 말한 것과 같다"며 "이산가족 상봉연기 이유 중의 하나로 국방부장관 발언을 부각시켜 이에 대한 남한 내 비판여론을 조성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지난 9일 북한이 종북세력과 연계해 사이버전·미디어전으로 사회혼란을 일으키는 '4세대 전쟁'을 획책한다고 발언했고 이에 대해 북한 관영매체와 조평통 등이 이미 비난 논평·성명을 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이명박정부 시절부터 이와 비슷한 발언을 계속해왔고, 김 장관에 대한 북한의 비난 역시 이어져왔다. 갑자기 나온 대북 강경발언이 아니기 때문에 준비가 거의 끝난 이산가족 상봉을 돌연 연기한 이유가 됐다고 보기엔 부족하다.

남한 정부가 남북 유화국면을 대북정책 성과로 홍보하는 것이나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구속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것은, 입장을 바꿔보면 북한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북한 조평통이 상봉연기 이유로 든 3가지는 표면적인 것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 "냉온탕 오가는 대남전략이 문제"

정부 당국자는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과도 관련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다"며 "(북한으로선) 현재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이 열려도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지 않았느냐"고 했다. 또 "(북한은) 인도적 문제로 (이산가족 상봉을)하기 보다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해 (이산가족 상봉을) 활용하고 있으니 그런 부분에 배경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마식령 스키장 속도전 같은 데서도 나타나듯 현재 김정은(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최대 관심사는 관광산업 개발인데, 남측이 금강산관광 재개에 소극적인 상황에 대해 가진 불만도 반영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런 배경도 일부분에 불과하고 북한의 속내는 '남한에 넘어간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라는 쪽으로 북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인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개성공단 중단 카드를 잘못 꺼내든 뒤로 계속해서 남한 정부에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된 게 사실"이라며 "북한으로선 '개성공단 말고도 우리에겐 다른 카드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용현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에 계속 끌려가기만 하는 남북관계에 대한 불만이 쌓였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남한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고 분석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남북관계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숨고르기를 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그렇더라도 해야할 것은 하면서 명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상봉행사 연기에 대해선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근식 교수는 "북한의 대남전략이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등 정책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은체제가 들어선 뒤 대남전략이 아직 정리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상봉연기 아직 모르셔, 재개되기만 바랄 뿐"
[이산상봉 가족 인터뷰] 결혼한 지 석달 만에 아내를 북에 놓고 왔는데...

"북한에서 누가 온다카요?"

21일 오후 <오마이뉴스> 기자의 전화를 받은 김철림(94) 할아버지는 이산가족 상봉 연기에 대한 소감을 묻자 대뜸 이렇게 되물었다. 김 할아버지가 이산가족 얘길 하자 곁에 있던 아들 강석씨가 전화기를 낚아챘다.

북한에 있는 두 동생을 만날 기대에 차 있는 할아버지가 낙담할 걸 걱정한 가족들이 이날 오전 상봉 연기가 발표됐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것이다. 강석씨는 "아버지는 아직도 북에 있는 동생들을 만나시는 줄 안다"며 "귀가 안 좋으신 아버지는 아직 소식을 모르신다"고 했다. 김씨는 "하루 빨리 상봉이 재개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다.

북한은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남겨둔 21일 오전 돌연 상봉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60여년간 헤어져 있던 가족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추석연휴를 보내던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들은 실망감과 허탈감에 휩싸였다.

남측 상봉 대상자 가운데 최고령자인 김성윤 할머니는 이번 상봉행사에서 여동생과 조카를 만날 예정이었다. 아들 고정삼(66)씨는 이산가족 상봉 연기 소식을 들은 순간의 심경을 "추석에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에 갈) 짐을 싸고 있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다"고 밝혔다.

고씨는 "어머니가 건강도 안 좋으신데 연기 소식을 듣고 힘들어 하신다"며 "해방될 때 헤어졌던 가족들을 너무 보고 싶어 하셨고, 살아있다는 소식에 얼마나 좋아하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백관수(90)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결혼한 지 3개월 된 아내와 헤어졌다. 세 살 된 아들도 함께 북에 두고 왔다. 그러나 이번 상봉 대상자 명단 교환 과정에서 아내와 아들 모두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유일한 핏줄인 손자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백 할아버지는 상봉의 날만 손꼽아 기다려왔다.

백 할아버지는 "손주가 벌써 서른 살이라고 한다"며 "손주를 만나야만 내 아내와 아들이 언제 죽었는지, 날 그리워했는지를 물을 수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그는 "그러나 이제 상봉이 미뤄지면서 모든 희망이 깨졌다"고 울분을 토했다. 백 할아버지는 "짐을 싸다가 오늘 상봉연기 소식을 TV에서 보고 주저앉았다"며 "상봉이 재개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지금 소식을 보니 잘 될 것 같지 않다"며 낙담한 듯 말했다.

백 할아버지는 "실망보다도 화가 난다"며 "애타는 우리들은 그저 남북이 서로 양보해서 상봉이 이뤄지기만을 바라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일반 사람들처럼 이것저것 이성적으로 따지지 못 한다"며 "그저 죽기 전에 가족을 보고 싶은 우리 같은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서 상봉을 재개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태그:#북한, #이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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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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