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먹이사슬'이란 '살아 있는 유기체간의 포식과 의존 관계의 질서'라고 한다. 그리고 먹이사슬을 나타낸 그림을 '먹이 피라미드'라고 한다. 아래부터 단계별로 기초생산자, 1차 소비자, 2차 소비자, 3차 소비자가 있다.

우리 집에도 이러한 먹이사슬 관계가 있다. 비록 아래로 내려갈수록 개체 수가 많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이 구조는 흔치 않은 3대 가족구성원에서 비롯된다.

우리 가족을 먼저 소개하자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고 엄마와 아빠, 나 이렇게 3대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안의 권력관계에 따라 기초 생산자는 나이고, 중간 포식자는 엄마이며 최상위 포식자는 할머니다. 할아버지와 아빠는 이 먹이사슬 구조에서 예외다. 왜냐면 이 두 분은 집안일에 거의 무관심한 일종의 '열외자'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최근 들어 기초 생산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할머니-엄마-나 사이의 먹이사슬은 3대가 함께 사는 집에서 생긴 갈등에서 시작됐다.

할머니-엄마-나, 3대가 사는 우리집 '먹이사슬'

 할머니가 직접 쓰신 글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계신다.
할머니가 직접 쓰신 글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계신다. ⓒ 우중혁

먼저 최상위 포식자에 속하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눠 보았다. 할머니 이예순(76) 여사는 50여 년 전에 할아버지와 결혼한 이후 많은 고생을 하셨다. 할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성격이 매우 포악하셨다고 한다. 직장도 여러 번 때려치우고, 술도 많이 마시고, 그냥 마음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런 거칠고 자유분방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할머니의 이 말은 전혀 실감나질 않는다.

"젊었을 적에 니 할아버지는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발생하면 불같이 화를 내셨단다. 밥상 엎어지는 일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

하루는 할머니가 참다못한 나머지 가출을 하셨는데 할아버지에게 시달릴 아빠, 고모, 삼촌을 생각하니 너무도 가슴이 아파 모두 잠든 밤중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하실 때 할머니 눈에 살짝 눈물이 비치는 듯도 했다. 이렇게 밥상 뒤엎는 일은 아빠와 엄마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또다시 있었다고 한다. 성인이 된 아빠는 더 이상 참지 못한 채 할아버지에게 대들었고, 그 이후론 내가 태어난 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는 게 할머니의 얘기다.

"지금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저렇게 찍소리 안하고 살잖니? 니 할아버지 (성질) 많이 죽은 거다."

할머니는 평생 할아버지로 인한 마음고생에, 집안일로 인한 몸 고생까지 겪을 수 있는 생고생을 다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손으로 집안일을 다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몇 십년을 살아오셨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곳간 열쇠' 싸움

우리 엄마. 김종남 여사(48)는 집안일을 즐거이 담당한 할머니 덕분에 결혼한 이후에도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집안일의 영역에 나타났다. 할머니는 처음에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돌아온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다. 엄마는 원래 한 시민단체의 '우두머리'로서 약 20여 년간 활동을 해 오셨는데, 임기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온 거다. 할머니는 자주 "에미가 내 일을 야금야금 좀먹는 것 같다"라고 하셨다.

실제로 엄마는 할머니가 하시던 밥짓기, 설거지, 청소, 빨래 등을 모두 자신의 일로 만들었다. 아마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거다. 어쨌든 할머니는 마치 자신의 직장을 잃은 듯 보였다.

예전 조선시대에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에게 곳간 열쇠를 물려받을 날만을 학수고대하며 모진 시집살이를 잘 버텨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집안의 부와 위세를 상징했던 곳이 곳간이고, 그 곳간 열쇠는 시어머니들에게 자존심이었다.

마치 곳간 열쇠를 빼앗긴 듯 집안일을 빼앗긴 할머니는 서예와 원예 등으로 시간을 보내신다. 할머니는 가끔가다 엄마가 없을 때 집안일을 했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으신 듯 하다. 결국 바깥으로 눈을 돌리시게 된 할머니는 요즘 노래교실도 다니고, 에어로빅도 하고, 밭일도 하며 여가를 보내고 계신다.

쫓겨난 것 같지 않느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가족에게 그런 게 어딨냐"며 웃으셨다. 지금 할머니는 집안일을 빼앗은(?) 엄마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서서히 여가 즐기는 법을 배우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할머니는 여전히 엄마에게 여러 가지 일을 시키며 '최상위 포식자'의 권위와 자존심을 잃지 않는다. 곳간 열쇠를 완전히 물려주지 않았다고 여기시는 것 같다.

실제로 곳간 열쇠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집안 청소와 밥상 위에서 나타난다. 엄마는 청소를 하루에 한 번은 꼭 해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틀에 한 번을 해도 별로 상관없다고 여기시며 오히려 매일 청소기를 돌리는 엄마에게 핀잔을 주곤 한다. 또한 할머니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반찬을 만드는데, 그 반찬을 식탁 위에 꼭 올려놓으신다. 엄마의 반찬과 할머니의 반찬이 밥상 위에서 투쟁하는 형국이다.

물론 엄마는 궁극적으로 할머니의 명령을 따른다. 지금 할머니는 은밀하게 혹은 비공식적으로 우리 가족을 부려먹는 즐거움을 찾으셨고, 엄마의 집안일은 갈수록 늘었다. 그런 할머니는 우리 가족에서 절대적인 존재이다.

어머니 "우리 가족 식사 분위기 때문에 가끔 체할 때가 있어"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 ⓒ 우중혁

중간 포식자인 엄마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네 할머니에 대한 불만이 그리 많지 않아. 오히려 그동안 할머니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너무 많은 가사노동을 하신 것에 화가 난다는 거야."

이 말은 할아버지, 아빠 그리고 내가 집안일을 돕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집, 특히 가장인 할아버지는 유교적 풍토에 오래 몸담아 오신 분이다. 그래서 가부장적 사상이 우리집 남자들에게 깃들어 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요구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집안일을 하지 않는 분이시다. 요즘은 할머니의 등쌀에 간혹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지만 그것뿐이다. 자발적으로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빠는 먼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집안일을 할 기회가 별로 없다. 하지만 주말에 집에 와서도 그저 나 몰라라 하신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쥐뿔도 없으면서 집안일을 외면했다. 때문에 엄마는 항상 아빠와 나에게 명령하기 바쁘다.

"너는 거실을 청소기로 밀고, 아빠한테는 걸레로 닦으라고 해."

예전에는 건성으로 듣고 마지못해 하곤 했지만 최근에는 엄마가 허리를 다쳐서 아빠와 나도 집안일에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렀다. 사실 엄마는 집안 남자들이 가사노동을 돕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불만을 표출한 적이 별로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빠나 내가 엄마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알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가족들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엄마는 우리 가족이 다른 가족들과 다를 바 없이 좋은 가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엄마는 스스로가 집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3대가 함께 산 지 19년이 되어가지만 바깥 일을 하다가 1년 전부터 가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가족 분위기의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밥만 먹는 우리 가족 식사 분위기 때문에 가끔 체할 때가 있어. 그리고 할아버지 방에서 들려오는 TV의 소음도 어쩔 수 없잖니? 너야 이 집안에서 별로 불편한 점이 없겠지만 난 편한 옷차림에 여유롭게 거실에서 차 한 잔을 마실 수도 없단다. 그래서 그냥 방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바깥으로 외출을 하곤 하지."

생각해 보니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엄마에게도 자신의 주장을 잘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어느 누구라도 남의 생각을 듣지 않고서는 그 사람 속을 알 수 없는 법이다. 엄마는 나의 얘기를 듣고 앞으로는 집에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겠다고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펴지 못한다. 결국 나와 아빠만 엄마의 다그침의 대상이 된다. '중간 포식자'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상위 포식자와 기초 생산자, '대화가 필요해'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든든한 맏손자이자 엄마 아빠의 외동아들이다. 요즘은 집안일까지 하며 학교생활을 하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말했다시피 나는 기초 생산자로서 나의 상위 포식자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제공한다. 물론 합리적인 선 안에서 말이다. 심부름을 다녀오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은 그런대로 문제가 없다. 내가 나중에 하고 살아야 할 일이니까.

하지만 집안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예전에 엄마와 할머니는 집안 일 때문에 종종 대립하는 경우가 있어 나는 그때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대화를 유도하고 중재를 했었다. 최근에는 내가 가족 몰래 그동안 모아둔 돈을 엉뚱한 곳에 쓰는 바람에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해졌고, 나를 믿지 못하는 가족들의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앞서 사전에서는 먹이사슬을 '유기체 간의 포식과 의존 관계의 질서'라고 규정했다. 이 먹이사슬은 동물의 세계에서 먹고 먹히는 포식의 관계가 두드러지지만 인간의 세계에서, 특히 가족에게서는 의존 관계의 질서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질서는 대화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상위 포식자와 기초 생산자와의 대화없는 먹이사슬은 불안하고 불편할 뿐이다.

할머니와 엄마는 서로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나 많다. 나는 내 스스로 혼자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아빠와 할아버지 간에도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가족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최소의 사회집단이다.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 혼자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것보다 함께 대화하며 고민을 나누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 아닌가. 나는 이번에 우리 가족을 인터뷰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알게 되었고 대화가 얼마나 마음 편하고 즐거운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제부터 내가 먼저 우리 가족에게 제안하려고 한다.

"늦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하고, 상대방 얘기를 들어주자."

덧붙이는 글 | <가족이야기> 응모글



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먹이사슬#가족인터뷰#가족이야기
댓글1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