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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지난 달 말 발표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에 관한 권역별 공청회와 간담회를 거쳐 23일 '2015학년도 및 2016학년도 대입제도'를 확정 발표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5학년도 대입전형의 주요 특성을 살펴보면 논술고사 폐지 유도, 수능최저학력기준 완화 등 각 대학들로 하여금 학생부와 수능 등급 위주의 전형을 유도해 고교교육을 정상화 시키고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들어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입학사정관제 지원사업'을 통해 대학들의 참여를 유도했듯이 '공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이라는 새로운 재정지원을 통해 대학들이 정부의 입시정책을 따라오게끔 할 계획이다.

하지만 입시전문가들이 예상하듯 상위권 대학들은 수시 비중을 줄이고 수능 위주의 정시 모집인원을 대폭 늘릴 것으로 보인다. 수능이 전형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결국 재수생과 특목고 학생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써 사교육비 경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교육비 진짜 주범은 누구?

역대 정권에서 망국적인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시도한 방법은 주로 사교육 종사자 및 학원에 대한 감독의 강화였다. 군부 시절에는 아예 과외를 불법으로 규정하였고 재학생들의 학원수강을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시장은 줄어들기는커녕 정부의 입시정책이 바뀔 때 마다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원인을 먼저 파악하듯 말이다. 사교육 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서민 가계의 가장 큰 부담인 사교육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의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근본 인자를 제거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명문대 특히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점은 상상하기 힘들다. 정부의 내각 발표 때마다 언론은 꼭 그들의 출신 대학을 광고한다. 학계, 법조계, 정치계, 경제계 최근에는 문화계까지 소위 명문대 출신들로 꽉 차 있다.

대학의 서열화는 이제 고등학교의 서열화까지 이르게 되었다. 세태가 이러니 어느 부모가 자식들을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옹알이가 끝나기 무섭게 명문대 진학을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바로 대학이 설립된 이래 쌓여온 학벌지상주의가 사교육 문제의 진짜 이유인 것이다. 

몇몇 대학 출신들이 사회의 모든 권력구조를 장악하고 그들의 후배들을 지속적으로 등용시키는 학연주의가 사교육 문제의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노동이 천대받고 지식이 대접받는 세상, 지방이 천대받고 서울이 대접받는 세상, 이러한 세상을 더욱 확고하게 고착시키는 현 사회가 가장 큰 이유이다.

서울대는 기표일 뿐이다

사교육비 문제 해결방안으로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서울대 폐지론'이다. 서울대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나르키소스가 잡고 싶은 연못 속의 환상일 것이다. 매년 4000명 정도는 그 환상을 현실화시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잡을 수 없는 환상을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하며 인생을 허비한다. 그래서 서울대 폐지를 주장한 이들은 그 환상을 제거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심리학에서 마음 속에 있는 각종 생각과 이미지들을 '기의'라고 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각종 언어와 표식들을 '기표'라고 한다. 대개 기표와 기의는 일치한다고 생각하지만, 쟈크 라캉은 그의 '욕망이론'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마다의 시선이 다르고 각자의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미지와 생각은 같은 사물에 대해서조차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기표와 기의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대는 하나의 '기표'일 뿐이다. 그 속에는 개천에서 태어난 미꾸라지가 용이 될 수 있는 지름길, 대한민국 지배구조의 한 축이 될 수 있는 필수 조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욕망을 100% 충족 시켜줄 수 있는 최고의 길을 나타내는 '기의'로써 대한민국 국민들 마음 속에 하나의 신념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기의'들은 그것을 표식하는 '기표'가 사라진다고 해서 동시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또 다른 '기표'가 그 자리를 대신 할 뿐이다.

입학사정(事情)관으로 전락한 지역대학 입학사정(査定)관들

우리 대학에 와 주세요! 서울 소재 대학 선호현상으로 인한 지역대학들의 학생유치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지역대학 입학사정관들은 입학사정 보다는 대학 홍보에 힘 쓸 수밖에 없다.
▲ 우리 대학에 와 주세요! 서울 소재 대학 선호현상으로 인한 지역대학들의 학생유치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지역대학 입학사정관들은 입학사정 보다는 대학 홍보에 힘 쓸 수밖에 없다.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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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서울대'라는 기표가 사라지면 고려대와 연세대가 그 자리를 대신 할 공산이 크다. 현재 두 대학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지만 서울대가 폐지되면 우리 사회는 이 두 대학에 대해서 순위를 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승자가 현재의 서울대가 누리는 영광을 그대로 이어갈 것이고 우리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서울대에 대한 '기의'들 또한 그 대학으로 전이 될 것이다.

서울대 속에 숨어있는 기의들은 강도를 달리하여 서울 소재 대학들로 이어지고 있다. '인서울'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맑은 공기는 노후에 마시자'라는 장난스러운 급훈까지 등장했다. 올 수시모집 원서접수 결과, 예전과 마찬가지로 서울 소재 대학 선호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된 서울 소재 대학들의 경쟁률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서울 소재 대학들의 경쟁률이 수십 대 일을 넘어 선 것에 비해 지역 대학들은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하다. 6회 복수지원을 감안하면 실질 경쟁률은 2∼3대 1에 그친 것이다.

서울 소재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몰려드는 수험생들 중 우수인재를 추려내기 위한 사정(査定)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달리 또 한 부류의 사정관들이 최고의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바로 지역 대학의 사정관들이다. 이들도 학생들을 사정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이들의 사정 대상은 학생들이 아니라 고3 진학 담당 선생님들이다. 제발 학생들을 자기 학교로 보내달라고 사정(事情)하는 것이다.

서울 중심주의에서 탈피해야

서울선호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교육문제 해결은 불가능 할 것이다. 서울이라는 한정된 범위 속에 들어가려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다 같이 공유하는 공교육만으로는 안심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입시 제도를 바꾸고 사교육 기관 및 사교육 종사자들을 단속한다고 해서 망국적인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한 마디로 사교육 종사자들이 사교육 문제의 근본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울중심주의의 최대 수혜자일 뿐이다. 사교육비의 원인을 사교육종사자에게 찾는 다면 성형중독이 사회문제가 된다고 해서 그 원인을 성형외과 의사에게 돌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성형중독의 원인은 외모지상주의이지 성형외과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교육 종사자와 마찬가지로 성형외과 의사 또한 현 사회구조의 수혜자일 뿐이다.

답은 확실하다.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물론 단기간에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서 밤 10시 이후에 학원심야수업 금지를 먼저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특정 대학 출신이 특정 자리에 10% 이상 차지할 수 없도록 법적인 장비를 갖추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정부의 개발정책에서 수혜를 입어왔던 서울의 지방에 대한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다. 서울과 지방이 서로 살겠다고 아우성을 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필요한 투자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사에 전쟁 이후 대한민국처럼 단 기간에 발전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공의 밑바탕이 우리네 부모들의 교육열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교육을 교육열의 한 수단으로 보기에는 서민들이 느끼는 고통은 너무나 크다. 교육부의 이번 대입제도 개선안 또한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가장 크게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교육비 문제는 어느 한 부처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혁제 시민기자는 전남학부모협동조합 이사장입니다.



#2015학년도 및 2016학년도 대입제도#논술전형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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