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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의 고요한 아침...
▲ 지리산... 장터목의 고요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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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붉게 물들어가고...
▲ 지리산... 가을이 붉게 물들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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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올라가고 가을은 내려온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하지만 한낮은 무더운 요즘, 지리산은어떤 색일까. 지리산의 표정이 궁금하다.

지리산을 만나러 가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지난 18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지만 추석명절이라 터미널은 귀성객들로 붐볐다. 또 교통 정체로 인해 버스는 배차 시간을 맞추지 못해 기다리는 시간이 하염없이 길어졌다. 한참 후에야 버스가 도착했지만, 중산리로 바로 가는 버스는 추석이란 이유로 사라져버렸다. 결국 진주를 거쳐 가야만 했다. 부산에서 진주, 진주에서 중산리까지 3시간 넘게 걸렸다.

목적지가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마음이 바빠졌다. 처음엔 천왕봉에 올랐다가 장터목대피소로 가기로 했지만 하는 수 없이 장터목대피소로 곧장 올라가기로 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까마득한 계곡길 따라 장터목대피소까지 걸어 갈 생각을 하니 암담했다.

칼바위를 지나고 천왕봉으로 곧장 올라가는 길과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계곡 길의 갈림길 앞에서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얼마쯤 가다가 부산서 왔다는 두 팀을 만났다.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멀찍이서 함께 가니 안심이 되었고 여유를 가지고 걸을 수 있었다. 계곡 물소리도 들려오고 가을로 접어든 숲의 나무들도 일별하며 걸었다.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피고...
▲ 지리산...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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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지대와 홈바위교를 지나 유암폭포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병기막터교를 지나 다리를 건넜다. 갈수록 고도는 높아지고 장터목대피소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경사높은 바윗길이 이어졌다. 지난 여름 만났던 지리산의 야생화들은 거의 다 지고 없고 새로운 꽃들이 우리를 반겼다. 쑥부쟁이 꽃도 피고 구절초도 피었다. 보랏빛 투구꽃은 여름에 보이지 않던 것이다. 숨 가쁜 산행 길에서 만나는 야생화들이 마음의 힘겨움을 덜어주었다.

중산리 야영장에서 까마득히 높고 멀어 보이는 장터목대피소까지 언제 닿을까 조금 암담한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내디뎠었는데, 한 걸음 한 걸음을 보태 결국 도착했다. 좀 늦은 시각에 시작했다는 생각에 여느 때보다 마음이 급했나보다. 해가 꼴깍 넘어 가기 전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다른 때보다 약 1시간은 빨리 도착한 것 같다.

장터목산장에서 바라 본 낙조...
▲ 지리산... 장터목산장에서 바라 본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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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대피소에 밤이 내리고...
바깥 테라스에 앉은 젊은 아가씨들...휴대폰 랜턴을 켜고 그 위에 병을 올려놓으니 스탠드가 되었네요...
▲ 지리산... 장터목대피소에 밤이 내리고... 바깥 테라스에 앉은 젊은 아가씨들...휴대폰 랜턴을 켜고 그 위에 병을 올려놓으니 스탠드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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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대피소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예전보다 못했다. 대피소 예약지정제 시행 이후 사람이 현격이 줄어든 것 같다. 확장 보수 공사로 장터목 마당은 좀 어수선했지만, 야외 테라스에 앉아 반야봉 일대를 물들이는 낙조를 바라보며 느긋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으니 좋았다. 어둠이 내리자, 몇몇 사람들은 랜턴을 밝히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고, 몇몇 사람은 찬 공기에 놀라 안으로 들어갔다.

옆에 앉은 젊은 아가씨들 앞에 놓인 물병 빛깔이 왜 저렇지? 어떻게 저런 빛이 날까 보니, 휴대폰 랜턴을 켜고 그 위에 소주병을 올려놓았다. 와~멋진 아이디어다. 은은한 불빛에 비치는 얼굴빛조차 은은하다. 추석 하루 전날 밤 달은 크고 밝았다. 바람은 차고 바람에 씻겨 간 듯 별은 드물고 달은 훤했다.

제석봉의 고요한 아침...
▲ 지리산... 제석봉의 고요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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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서...
▲ 지리산... 천왕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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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행길, 긴장과 설렘 대원사코스로 하산

다음날 아침. 해가 떠오르기까지 대피소에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여느 때 같으면 새벽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기 위해 어둠 가시지 않은 새벽길 걸어 천왕봉에 올랐을 테지만, 천왕봉 일출은 많이 본 터라, 이번엔 그냥 푹 쉬기로 했다. 아침 7시쯤에 일어나 짐을 챙겼다. 제석봉 길을 지나면서 새벽에 나섰더라면 자세히 보지 못했을 야생화들을 하염없이 봤다. 흐드러지게 핀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온통 제석봉 길을 수놓고 있었다. 제석봉을 지나고 통천문을 통과하고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이날은 여느 때와 달리 대원사방향으로 향했다. 예전부터 남편이 몇 번이나 제안했지만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낯선 길인데다가 길도 까마득히 멀어서 엄두가 나지 않아 호응을 해주지 못했다. 초행길이라면 좀더 일찍 서둘러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본다. 꼭 한 번 가보고는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못 가 본 대원사길, 그래 한 번 가 보자 마음먹었다.

대원사코스로 하산 하는 길...
저 멀리 치밭목산장이 보이고...길은 계속되고...
▲ 지리산... 대원사코스로 하산 하는 길... 저 멀리 치밭목산장이 보이고...길은 계속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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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코스는 동쪽 자락에서 계곡과 능선을 번갈아가며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로, 거리상으로나 난이도 면에서 꽤 힘든 코스에 속한다. 해서 주로 주능선 종주의 시작 혹은 마무리 코스로 이용하는 곳이다. 우리는 천왕봉에서 동쪽으로 발길을 향한다. 천왕봉에서 대원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 내리막길로 이어지다가 다시 오르막길로 이어졌다. 인적 없는 길에서 만난 외국인 세 사람이 있어 반가웠지만 그들 외엔 치밭목대피소 근처까지 우리 두 사람만 길을 걸었다.

대원사코스는 일단 들어선 이상 탈출로는 없었다. 한 번 들어서면 계속 길에서 길로 이이지는 길을 쭉 걸어야만 한다. 갈림길을 만나거나 비상시에 다른 길로 들어설 자리가 없다. 끊임없이 오르고 내려가는 길로 이어졌다. 중봉을 만나고 써리봉(해발 1602m)을 만났다.

천왕봉을 뒤돌아보고 멀리 내다보이는 치밭목대피소를 이따금 조망하면서 계속 걸었다. 11.7km. 중산리 길의 배나 긴 거리다.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이 길의 마침표는 언제 찍을 수 있을까. 초행길이라 마음은 더 바쁘기만 했다. 길은 한적하고 우리 두 사람만 길에서 길로 걸으며 내딛는 발걸음소리만 정적을 방해했다.

'오메...단풍들것네...
▲ 지리산... '오메...단풍들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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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쯤 왔는지 가늠할 수 없어서인지 발걸음은 자연히 빨라졌다. 인적 없는 길에서 나는 이따금 찬송을 높이 불렀다. 아무도 없는 듯한 숲길을 얼마쯤 걸었을까. 치밭목대피소를 몇 미터 앞두고 마주 오는 여승들을 만났다. 모처럼 만난 사람들이라 반가워서 인사를 나눴다. 대원사에 있는 분들이라고 했다. 표정이 맑고 연한 여승들과 서로 반가워 인사하고 내려간다. 치밭목대피소가 지척에 있었다.

조개골과 장영골의 경계 그 분수령을 이루는 능선 평지에 자리 잡고 있는 치밭목산장은 아담한 단층 슬레이트 건물로 된 구식 산장으로 약 40명 정도 수용이 가능하다. 주위에 참나무가 울창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라 적막감이 돌았다. 과거 무인산장으로 방치되었던 것을 민병태씨가 오래 전부터 관리해오고 있다 한다. 이곳 지명을 치밭목이라 한 것은 이 일대 주변에 취나물이 많이 나기 때문. 즉 치밭목이란 이름에는 치나물처럼 취나물이 많이 나는 둔덕, 길목이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치밭목산장 뒤로 200m쯤 내려가면 제법 수량이 많은 식수가 있다.

치밭목산장...
▲ 지리산... 치밭목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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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했지만 이곳 역시 조용하다. 서넛 사람이 쉬었다가 일어서는 것을 보며 우리는 비로소 마당 나무의자에 앉았다. 이곳 치밭목대피소를 지키는 분은 추석명절 쇠러 가고 없고 빡빡머리 등치 큰 남자가 대신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대피소 바깥 의자에 앉아 라면을 끓여 먹고 잠시 숨을 돌렸다. 조용한 치밭목대피소에 있는 흰 개가 심심한지 어슬렁거렸다.

다시 내려간다. 여기서부터는 가파르지 않은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이 길 역시 사람 만나기 드문 하산길이다. 초행길이라 어디쯤에 무엇이 있고 얼마쯤 왔는지 끝은 어딘지 도무지 가늠하기 힘들다. 여기서 오는 불안과 조급함이 생긴다. 유평으로 가는 길과 새재로 가는 갈림길에서 새재 길로 들어섰다. 대피소 지킴이 말로는 새재는 에둘러 가되 길이 완만하고 마을이 좀 일찍 나와서 차로 이동하기에 좋다고 하고, 유평길은 좀 더 빨리 가지만 많이 가파른 길이란 말에 우리는 좀 둘러가되 편안한 길로 택했다.

하늘아래 첫 동네...
▲ 지리산... 하늘아래 첫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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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첫 동네에도 가을이 물들고...
▲ 지리산... 하늘아래 첫 동네에도 가을이 물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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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길고 길었다. 길은 처음 시작한 갈림길에서 한참을 멀리 멀리 벌어지는 듯하더니 하염없이 걷고 걸어서 '하늘아래 첫동네' 새재마을(해발700m)에 도착했다. 과연 하늘아래 첫 동네다. 그야말로 심심산골. 몇 호 안 되는 집이 띄엄띄엄 앉아 있고 흔적만 남아 있는 옛 가옥도 보였다. 한 여름엔 사람들 발길이 제법 잦을 듯한 산장과 펜션 식당 등이 여럿 보였다. 지리산 동쪽 맨 끝자락에 앉은 마을 하늘 아래 첫 동네였다.

잠깐 쉬면서 대호산장에 문이 열려 있어 커피도 파는지 물었다. 감사하게도 그냥 드시라며 커피 두 잔을 내왔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그냥 갈수 없어서 곶감을 조금 샀다. 그리고 콜택시를 불러놓고 오기까지 바깥 평상에 앉아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 20분 만에 택시가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이동해 가는 길에 대원사계곡과 대원사를 스쳐 지났다. 거기까지 발 도장을 찍지 못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덕산에서 진주, 진주에서 다시 양산행 버스에 올랐고 어두워져서야 도착했다. 지리산엔 지금 가을이 내리고 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가을... 그 절정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산행수첩
1. 일시: 2013년 9월 18일(수)~19일(목)
2. 진행:
① 첫째 날: 2013년 9월 18일(수) 맑음-4시간 40분
중산리탐방안내소(12:30)-중산리 야영장(637m)(12:35)-점심식사 후 출발(1:40)-칼바위(2:08)-삼거리(12:15)-(돌길. 너덜지대) 홈바위교(3:30)-유암폭포(3:40)-병기막터교(4:15)-다리 건넘(4:30)-장터목대피소(5:10)

교통
부산(8:50)-진주(10:50):7,700원
진주(11:00)-중산리(12:15): 5,900원
중산리(11:15)-중산리탐방안내소; 택시 5,000원

② 둘째 날: 2013년 9월 19일(목). 맑음
장터목대피소(8:30)-제석봉(1,808m,9:00)-통천문(1,814m,9:30)-천왕봉(9:50)-하산(10:05)-중봉(1,874m)-써리봉(1,602m),11:30)-치밭목대피소(1,425m,12:10)-점심식사 후 출발(1:05)-무제치기교(1:45)-삼거리(1:55)-새재마을 다리(2:55)-새재마을(3:00)

 천왕봉-중산리: 5.4km
천왕봉-대원사: 11.7km



태그:#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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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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