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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기와 타악기가 조화를 이뤄낸 음악에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춤사위를 이미지로 풀어낸 장면들은 대사로 전달될 때보다 섬세하고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현악기와 타악기가 조화를 이뤄낸 음악에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춤사위를 이미지로 풀어낸 장면들은 대사로 전달될 때보다 섬세하고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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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지만, 그 순간은 사진으로 남겨짐과 동시에 과거가 된다. 그래서 사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다. 지난 9월 22일부터 일주일간의 짧은 공연기간으로 큰 아쉬움을 남긴 서울예술단의 신작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사진이라는 소재가 작품을 통해 얼마나 흥미롭게 쓰일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준 인상 깊은 무대였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사진 찍기를 좋아해 꽤 많은 사진을 남긴 고종과 달리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은 명성황후의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미스터리 판타지 형식의 가무극이다. 작품에서는 그녀를 둘러싼 각계각층의 분분한 해석들과 함께 고종의 아내이자 국모였으며, 대원군의 며느리이자 여인이었던 명성황후의 다양한 얼굴을 에피소드로 그려내며 그녀의 삶을 다각도에서 조명하고자 한 연출진의 시도가 엿보였다.

명성황후 역의 차지연은 그녀 특유의 애절한 보이스와 강한 이미지를 바탕삼아 고종과 대원군 사이에서 겪는 혼란과 권력을 향한 욕구 등의 명성황후의 복잡한 심리를 탁월하게 연기해냈다.
 명성황후 역의 차지연은 그녀 특유의 애절한 보이스와 강한 이미지를 바탕삼아 고종과 대원군 사이에서 겪는 혼란과 권력을 향한 욕구 등의 명성황후의 복잡한 심리를 탁월하게 연기해냈다.
ⓒ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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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 작가의 극본과 더불어 뮤지컬 <빨래>의 민찬홍 작곡가는 어둡지만 우울하지 않은 음악으로 극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특히 임오군란이나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의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장면들은 현악기와 타악기가 조화를 이뤄낸 음악에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춤사위를 이미지로 풀어냄으로써 대사로 전달될 때보다 섬세하고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명성황후 역의 차지연은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녀 특유의 애절한 보이스와 강한 이미지를 바탕삼아 고종과 대원군 사이에서 겪는 혼란과 권력을 향한 욕구 등의 명성황후의 복잡한 심리를 탁월하게 연기해냈다. 하지만 가상의 인물이자 극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스토리 텔러 휘 역의 손승원은 역할의 중요도 대비 다소 약한 존재감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작품의 무대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액자들을 메인 오브제로 활용해 명성황후의 흩어져있는 얼굴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작품의 무대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액자들을 메인 오브제로 활용해 명성황후의 흩어져있는 얼굴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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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가장 돋보인 건 무대였다.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는 뮤지컬 <해를 품은 달>에서 색색의 한지와 천을 이용한 조각보 사이로 은은한 빛이 살포시 새어나오는 아름다운 무대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으나, 전작과는 전혀 다른 감성으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번 무대에서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액자들을 메인 오브제로 활용해 명성황후의 흩어져있는 얼굴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는 극의 배경이기도 한 사진관이라는 공간과도 잘 어울렸지만, 고종과 대원군을 비롯한 실제사진들을 활용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갤러리에서 전시를 관람하듯 무대 속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지나 연출은 "잃어버린 명성황후의 얼굴을 각자 찾아가길 기대하고 작품을 만들었지만 사실 불가능한 것을 안다"고 밝힌 바 있다. 관객들의 발걸음이 극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던 건 미스터리한 이야기와 가무극이라는 형식 그리고 한 편의 미술작품을 연상시키는 무대가 맞물려 관객들 저마다의 명성황후 얼굴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찾아낸 얼굴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도 그 모든 얼굴이 모두 명성황후의 얼굴임에는 틀림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지선의 공연樂서,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문화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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