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교장으로 정년(명예)퇴직했다가 요양하기 위해 밀양에 들어왔던 할아버지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아 내기 위해 앞장섰다. 할아버지들은 경찰과 몸으로 싸우기도 하고, 움막을 지키며, 시위 때 발언하기도 한다.
밀양 송전탑 반대에 할머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들도 나섰다. 대표적인 교사·교장 출신 할아버지는 고준길(71, 단장면 용회마을), 이남우(71, 부북면 위양리), 김기업(68, 산외면 보라마을)씨다.
고준길씨는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뒤 7년 전 밀양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고씨가 퇴임하기 직전 부인이 건강이 악화되어 부부가 함께 이곳으로 온 것이다.
고씨는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에서 주민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특히 1일 경찰이 철탑 현장으로 오르는 임도를 막자 고씨는 주민들과 함께 저항했다. 고준길씨는 손자뻘 되는 경찰 기동대원들과 몸으로 싸우기도 하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이날 고씨는 쓰러졌다가 의식을 되찾기도 했다. 고준길씨는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셨는데,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공권력이 들어오면 더 많은 사람이 틀림없이 죽지 않겠느냐"며 "이런 식으로 하면 대형 사고는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고 이치우(당시 74살)씨는 2012년 1월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며 분신자살했던 것이다. 고준길씨를 비롯한 주민들은 한국전력이 송전탑 공사를 계속하면 '제2의 이치우 열사'가 나올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남우씨는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127~129번 철탑을 막기 위한 투쟁에 주력하고 있다. 이곳에는 주민들이 농기구로 바리게이트를 설치해 놓고, 움막에다 '죽을 각오로 싸운다'며 무덤까지 파놓았다.
이남우씨는 부산에서 27년간 교사로 있다가 건강이 나빠 요양하기 위해 밀양으로 온 것이다. 이씨는 "순박한 주민들은 국토와 농토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미래세대에 물려주려고 한다"며 "대규모 공권력을 동원해서 힘없는 할머니들과 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연일 계속된 움막농성에 지친 이씨는 "전문가들이 와서 조사를 해보니, 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 70% 정도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며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다면 주민들의 건강은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기업씨는 고 이치우씨가 분신자살했던 보라마을에 산다. 김씨는 3일 경찰·공무원이 주민들과 충돌하고 있는 단장면 단장리 '공사장비 적치장' 앞에 나와 연설하기도 했다. 한국전력공사는 헬기로 공사장비를 옮기고, 밀양시는 움막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에 나섰는데, 주민들이 이를 막았던 것이다.
김씨는 문정선 밀양시의원의 초등학교 스승이다. 문 의원은 밀양시의회의 유일한 여성으로, 요즘 매일 주민들과 함께 송전탑 공사 반대에 나섰다. 이날 문 의원은 '탈핵희망버스' 참가자들 앞에 스승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김기업씨는 "한국전력은 송전선로가 지나가도 아무런 피해가 없다 하고, 모르는 사람들은 주민들이 보상을 더 받기 위해 반대한다고 하는데, 말이 안된다"며 "우리는 보상도 필요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부와 공공기관은 국민한테 희망을 주어야 한다"며 "이곳 주민들은 많이 배우지는 않았지만, 내 고장 내 땅에서 꿈꾸며 살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는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이대로 살게 해 달라는 것뿐"이며 "내 땅에서 자유롭게 꿈꾸며 살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교사 출신인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은 "교사·교장으로 퇴직하신 어르신들은 그동안 교단에 계시면서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만 해오신 분들이라 할 수 있다"며 "그런 분들이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정부에서 하는 게 잘못되었기 때문으로, 이 분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