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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세대론의 관심은 젊은 세대였다. '88만 원 세대'가 그렇다. '평균임금 88만 원'이라는 젊은 세대 앞에 놓인 가혹한 환경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짱돌을 들어라"는 주문처럼 그런 현실에 맞서 싸워나가라는 요구가 컸다.

젊은이들의 낮은 투표율에 대한 질타처럼 그들이 투표하면 정치가 바로 설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지난 대선은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투표율은 높았지만 선거 결과는 보수 여당의 승리였다.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젊은 세대의 선택이 아니라 '베이비부머'라 불리는 50대의 선택이었다.

소리내지 않는 50대를 이해하기 위한 책

사실 한국의 현대사를 이끌어 온 것은 베이비부머들이다. 베이비부머란 전쟁 직후 출산율이 급격하게 높아져 아기(baby)가 급증(boom)한 세대를 말한다. 한국에선 6·25 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가장 큰 인구 집단이었기에 이 세대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한국의 현대사를 만들어왔다. 이들이 산업화에 매진하면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을 가져왔고, 또 이 세대가 집에 관심을 가지면서 부동산 폭등을 불러왔으며, 자식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교육 과열을 만들어왔다.

정치에서도 그랬다. 지난 대선에서 최고의 반전으로 불리는 '50대의 반란'을 연출한 이들인 동시에 10년 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은 40대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난 대선에서 50대의 선택을 '숨은 보수표의 출현' 이니 '반란'이니 하며 놀라는 것은 그동안 이들이 주목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지도 유아 아니면 노인이 대상이었고 일자리 창출도 젊은 세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또 50대 스스로도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젊은 세대는 공개된 SNS와 인터넷를 통해 활발히 의견을 개진했지만 50대들은 카카오톡을 통해 그들끼리만 소통했다. 똘똘 뭉친 그들은 문자로 투표를 격려하며 투표날 그들의 존재를 과시했다.

 <그들은 소리 내 울지않는다> 표지.
<그들은 소리 내 울지않는다> 표지. ⓒ 이와우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라는 책을 집어 든 것은 이런 이유였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 인생보고서'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한국사회를 움직여 왔던 세대이지만 책 제목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이제는 50~58세가 된 베이비부머는 단어가 의미하듯 전쟁 직후에 태어난 세대이다. 모든 것이 파괴된 전쟁 직후에 태어났으니 '58년 개띠'라는 말처럼 삶의 시작부터 험난했다. 험난한 세상에 태어난 이들의 운명 같은 주제곡은 사이먼과 가펑클이 1970년 발표한 <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였다. 그들은 1960년대까지 지속된 '우유부단한 근대'를 끝내고, '1980년대에 본격 개화한 현대'로 넘어가는 다리역할을 청춘시기인 1970년대부터 몸 바치고 수행해야 하는 '가교세대'가 되었다.

가족 내에서도 전통적인 유교문화가 기본인 부모세대와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한 자식세대 사이에 '쥐어 짜이는 세대'이기도 했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지원받은 것은 없지만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효도관념이 몸에 배어 부모봉양의 의무를 짊어지면서도, 동시에 자식교육에도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세대이다. 시대적 과제 앞에서 자신들의 자아는 억제한 채, 나라와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험난한 세상의 다리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런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온 그들이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해마다 백만 명씩 쏟아져 나온다는 은퇴의 '크레바스'다. 무연금, 무소득 기간이라는 소득절벽인 크레바스가 퇴직한 50대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은퇴에 대비해 모아놓은 재산도 없이 자식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는데, 자식들은 보답은커녕 기약 없는 백수신세다. 대출금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세상의 다리가 되어 헌신해 왔건만 정작 자신들의 다리는 마련하지 못한 이들을 송호근 교수는 '빈곤층 입주를 예약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관련기사 : 프레시안 박근혜의 '작전세력' 그들이 위험하다).

열심히 일만 하다가... 50대의 실패

지난 대선에서 이정희 후보가 "나 박근혜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했을 때 50대들이 엄청난 카톡을 날려대며 분노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가 된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이정희의 발언에서 자신들의 세대와 삶이 부정되고 공격당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들에게 유신은 독재의 그늘과 경제의 발전이라는 이중의 기억이 겹쳐져 있는 시기이다. 현재에 처한 경제적 곤란은 후자의 기억을 더 추억하게 만든다. 지금 절벽 앞에 선 그들에게 그때는 어쨌든 경제가 나아진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던 시기였다.

책에 나온 3년 전 퇴직한 M씨(54, 전 항공사 직원)의 말도 그러한 입장에 서있다. 대학시절엔 유신독재 반대도 했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새누리당 꼭 거길 지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최소한 박정희 시대를 악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을 납득할 수 없거든요… (중략)… 우리가 지금 먹고 사는 게 다 자동차, 조선, 중화학, 철강 그런 것들, IT까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다 70년대에 해놓은 거거든요. 정치인들 꼼짝 못하게 해놓은 상태에서. 그러니까 이거를 경제발전에는 잘했지만 독재해서 안 된다가 아니라, 그렇게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중략)… 대학 시절 지내놓고 보니까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죠, 저는. 어느 새 보니까, 제가 남들이 말하는 수구꼴통이 돼 있는 거예요."(145~146쪽)

선거구도가 민주화냐 산업화냐로 짜인다면 50대들은 현재로서는 산업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특히 그들의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 값을 지켜줄 안정감 있는 후보가 선택의 제일 큰 기준이 된다. 

50대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들의 선택 방식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50대가 그 어느 세대보다 사교육 망국론까지 불러일으키며 자식교육에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당사자인 20대는 혜택은커녕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해 왔지만 평안한 노후보다는 막막한 노후가 기다리는 세대가 되었다.

송호근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 경제를 반석에 올려놓은 베이비부머들은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인생과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마도 그 실패는 열심히 일만 한 탓이 아닐까.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고민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실대로 헌신해 온 결과는 아닌지. 내 자식만 챙기다 결국 경쟁의 비용만 높여 놓은 현실처럼 말이다. 고도성장의 열매를 '사유화'하느라 자신을 포함한 미래 세대를 위한 '공적 자산'을 축적하지 못했다는 50대 송호근 교수의 자기 비판은 그래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50대의 주 관심사인 부동산 문제만 해도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과연 박근혜 정부는 그들의 바람대로 부동산 값을 안정시켜 줄까. 박근혜 정부가 많은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확신은 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집값이라는 것이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참여정부는 부동산 폭등을 막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는 기대와 달리 부동산 침체를 막지 못했다. 미국의 부시정부도 부동산 폭락을 막지 못해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온 것이 아닌가.

현실적으로 한국의 집값을 지켜줄 이들은 누구인가.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20~30대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벌어 40~50대가 올려놓은 부동산을 내집 마련이라는 생의 목표 아래 살면된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주택대책도 생애 첫 주택마련 지원에 방점이 있다. 빚내서 자기 집 마련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20대의 상황이 그러한가. 20대는 백수에 30대는 비정규직 저임에 머물고 있다면 임금 수준에 비해 과도하게 올라간 집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살 사람이 없는데 당연한 것이 아닌가.

50대의 앞날, 20대에 달려있다

결국 50대의 앞날은 지금의 20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20대는 그들의 자식세대다. 20대가 경제적 활력을 찾지 못하면 <고령화가족>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자식 덕은 커녕 늙은 부모가 나이 들어가는 자식을 부양해야하는 고달픈 삶이 되는 것이다.

 영화 고령화가족의 포스터
영화 고령화가족의 포스터 ⓒ (주)인벤트스톤

그런 면에서 50대와 자식세대인 20~30대는 지난 대선처럼 대립하는 세대가 아니라, 운명 공동체인 부모-자식 세대이다. 또한 한국사회가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할지 고민을 나누어야 하는 공생세대이다. 그리고 그 방점은 어떻게 해서든 20~30대가 경제적으로 활력을 찾아 노후세대를 부양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반대로 계속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가 경제적 활력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재벌기업 중심의 산업화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지난 대선의 결과였다. MB정부 시절 '낙수효과'를 외치며 세금 감면까지 해주면서 대기업을 지원했지만, 국민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를 외친 박근혜를 찍은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벌써 경제민주화는 다했다고 종료를 선언하고, 재벌들에게 경제를 부탁하며 협조에 바쁘고, 복지공약은 줄줄이 파기 중이다. 과연 선택한 기대대로 움직이는 것인지 따져볼 일이다. 아직은 기대감이 크다지만 기다릴 여유는 많지 않아 보인다.

50대들도 소리내 울었으면

50대가 한국의 현대사를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50대의 선택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50대의 현명한 선택에 한국의 앞날과 그들 스스로의 미래도 걸린 셈이다. 문제는 50대가 송호근 교수의 지적대로 불안한 심리에서 과거의 기억에 바탕을 둔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과거에만 묶여 선택해 나간다면 한국의 앞날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산업화 시대의 전략으로 한국이 더 나아갈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맨 앞에 선 삼성이 '패스트 팔로우' 전략으로 더 나아갈 곳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만 머문다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길은 장기 불황에 시달린 일본이 간 길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일본의 길을 답습한다면 그 길은 일본보다 훨씬 더 힘든 고난의 길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때 유명했던 소니, 도시바, 파나소닉 등이 이제는 삼성과 LG에 못 미친다. 우리는 일본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한 번도 일본에 무역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지난해에도 256억 적자였다. 일본의 전자산업이 뒤처졌다 해도 일본의 기초소재와 부품기술은 여전히 우리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이 따라잡은 전자, 조선, 철강에선 중국이 부지런히 쫓아오고 있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은 것처럼 그들이 우리를 따라잡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미 레노버가 PC시장에서, 하이얼은 가전시장에서, 화웨이는 통신장비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중국의 삼성이라 불리는 중국 IT기업들이다. 그렇게 중국에 따라잡히면 우리의 미래는 일본보다 더 재앙적일 수밖에 없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의 순익이 상장사 전체기업 순익의 41%나 차지하는 나라에서 삼성이 소니처럼 되는 것은 그 영향의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는 세계 최대 채권국인 일본처럼 양적완화를 쓸 경제상황도 안 된다.

50대가 과거의 기억에만 머물며 나이 들어간다면 한국경제도 그렇게 내모는 것이다. 그래서 50대가 미래를 보는 선택이 중요하다.

한편으로 한국사회가, 특히 민주진영이 유신 시절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해야 한다. 70년대를 돌아보면서 유신독재자만 떠올린다는 것은 그 시절 피땀 흘려 일했던 많은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이다. MB시절을 MB로만 기억할 수 없듯이, 그 시절에도 나라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많은 사람들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50대도 유신을 산업화의 기억으로만 보는 데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항공사 직원이었던 책속의 M씨는 본인도 수긍할 수 없는 퇴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가 입바른 소리를 잘해서, 남한테 맞춰주고 이런 걸 잘 못해요. 근데 하는 짓들이 하도 그냥, 그래서 제가 막 대놓고, 저는 회사를 위해서 의견개진하고 논쟁을 한 건데, 결과는 괘씸죄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150~151쪽)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것은 그런 '찍어내기'식 권위주의 문화에 반대함을 말한다. 누구나 입바른 소리를 당당하게 하고 토론하는 사회. 산업화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 못하게 막는 권위주의 사회를 반대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책을 덮으면서, 50대들도 소리내 울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50대의 절반이 스포츠, 공연 등의 문화생활을 일 년에 단 한 번도 못 즐길 정도로 열심히 일해 왔는데, 왜 이런 힘든 상황에 처했는지 이제는 터놓고 다른 세대들과도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과거의 향수에만 머물지 말고, 새로운 미래로 나가야 할 현재에 대해 함께 토론했으면 좋겠다.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의 인생 보고서

송호근 지음, 이와우(2013)


#50대#베이비부머#송호근교수#보수표#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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