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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의 경우 교육부장관이 정한 한문교육용 기초한자를 함께 쓸 수 있도록 하자는 법률안에 대한 검토 의견 공문
▲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일부 개정안 검토 공문 한자어의 경우 교육부장관이 정한 한문교육용 기초한자를 함께 쓸 수 있도록 하자는 법률안에 대한 검토 의견 공문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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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부 교과서기획부는 시·도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검토 의견을 듣는 중이다. 개정안을 보면, 초·중등교육법 제29조(교과용 도서의 사용 등)에 ②항을 신설하여, "제1항에 따른 교과용도서는 한글로 작성하되, 한자어의 경우에는 교육부장관이 정한 한문교육용 기초한자를 함께 쓸 수 있다"로 밝혀 놓았다. 이 법률안은 지난 7월 30일 김광림 의원(새누리당) 외 국회의원 10명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인데, 제안 이유부터 보겠다.

우리말 어휘의 70%(초등학교 국어책의 55%)가 한자어(漢字語)로 구성되어 있고, 대부분이 두 개 이상의 뜻을 가진 동음이의어로, 바르고 정확한 국어사용을 위해서는 한자(漢字)와 한자어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음.

개정안은 초·중등학교 교과용도서에 한자를 함께 쓰도록 하자는 말인데, 개정안이 얼마나 헛되고 잘못된 것인지 하나씩 짚어 보려고 한다.

첫째, 입만 열면 우리 말 어휘의 70%가 한자어라고 하는데, 과연 이 말이 옳은가. 도대체 70%는 어디에서 나온 수치인가. 사실 우리 말 사전 올림말 가운데 70%가 한자말이라는 건 일제강점기인 1921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어사전>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때 올림말을 추려내지 않고 그게 <표준국어대사전>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일테면 '순리'라는 말을 찾아보자.

순리01(巡吏)[술-]「명사」순시하는 관리.
순리02(殉利)[술-]「명사」이익만 좇다가 몸을 망침.
순리03(純利)[술-]「명사」=순이익.
순리04(純理)[술-]「명사」학문의 순수한 이치.
순리05(循吏)[술-]「명사」법을 잘 지키며 열심히 근무하는 관리.
순리06(順利)[술ː-]「명사」「1」이익을 좇음.「2」순조로운 것.
순리07(順理)[술ː-]「명사」순한 이치나 도리. 또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
순리08(醇醨)[술-]「명사」「1」진한 술과 묽은 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2」순후한 풍속과 경박한 풍속을 아울러 이르는 말.

와, 과연 동음이의어가 많기도 하다. 올림말이 여덟 개나 된다. 그런데 이 말 가운데 일상으로 쓰는 말은 고작 '일이 순리대로 풀렸다'고 할 때 쓰는 '순리(順理)' 하나일 뿐이다. 다른 동음이의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러니 전혀 쓰지 않은 올림말들이 수두룩하다.

말을 보태자면, 2002년 국립국어원이 낸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를 보면, 토박이말 54%, 한자어 35%, 외래어 2% 순으로, 토박이말의 빈도가 더 높았다. 이후 2011년에도 국립국어원이 <표준국어대사전> 올림말을 따져보았더니, 한자어가 58.5%, 토박이말이 25.5%, 섞어쓴 말이 10.6%, 외래어가 5.4%라고 했다.

한자어 올림말 비율과 사용 빈도 사이에 차이가 큰 것은 그만큼 쓰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글학회에서 1957년에 낸 <큰 사전>에서는 토박이말 47%, 한자어가 53%였다. 한글학자 정재도는 <우리 말 큰사전>으로 쓰지 않는 한자어를 버리면 한자어는 30%로 줄어든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 사교육 시장만 불릴 것

둘째, 개정법률안을 낸 국회의원들의 주장을 보면, 한자어 '대부분이 두 개 이상의 뜻을 가진 동음이의어'라서 '바르고 정확한 국어 사용'을 어렵게 한다고 말한 것도 어처구니없다. 우리가 어떤 낱말을 맥락이나 문장과 동떨어진 채로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일테면 '동요'라는 낱말이 어떤 문장이나 어느 맥락에서 들었다고 치자. <표준국어대사전>에 찾아보면, '동요(動搖)', '동요(童謠)', '동요('뜬소문'의 옛말)' 이렇게 세 가지가 나온다. 다음 문장에서 '동요'는 어떤 뜻으로 쓰였을까?

1. 자갈길에 들어서면서 버스의 동요가 심해지자 승객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2. 할머니는 손녀가 동요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퍽 기특하게 여기셨다.

한자를 알지 못해 '흔들림'을 뜻하는 동요(動搖)와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라는 동요(童謠)라는 뜻구별이 안 되는가. 그게 안 된다면 한자어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말 감각이나 정서가 모자람을 탓해야 옳다.

이와 관련, 한자어를 같이 써주지 않는 까닭에 '역전 앞', '새벽 여명', '하얀 소복', '야심한 밤' 같은 겹말이 생겨난다고 나무라기도 한다. 겹말은 똑같거나 비슷한 뜻을 지닌 말을 쓸데없이 겹쳐 써서 말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말맛을 어수선하게 한다. 그러니 되도록 안 쓰는 게 좋다.

하지만 겹말이 왜 생겨났는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해선 안 된다. 흔히 쓰는 겹말에 '역전 앞', '새벽 여명', '하얀 소복', '야심한 밤' 같은 게 있다. 하지만 이런 겹말은 '역전, 여명, 소복, 야심'만으로는 '역 앞', '새벽/ 동틀 무렵', '하얀 옷', '한밤중 /깊은 밤'이라고 금방 알아먹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낯설고 알아먹기 어려우니까 거기에 쉬운 우리 말을 덧붙여 뜻을 분명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나무라지 마시라.

셋째, 우리 말의 역사는 한자 쓰기에서 한글 쓰기로 이어져 왔다. 그게 거스를 수 없는 우리 역사요 시대 정신이다. 1948년 한글전용법을 제정하고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금지시킨다. 2005년 한글전용법은 국어기본법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국어기본법은 공문서를 한글로 쓰되 어쩔 수 없을 때에만 묶음표 속에 한자나 외국어를 넣어 이해를 도우라고 한 것이다. 이는 소통을 쉽게 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려는 뜻도 있다. 이제 '한글 세대'가 '한문 세대'나 '한자 병기 세대'보다 더 많다.

군말을 한마디 보태자면,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쓰고, 한자 교육을 한다는 것은 어린이 발달 단계를 무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피아제에 따르면, 초등학생은 '구체적 조작기'에 들며, 한자를 낱낱으로 쪼개 말밑을 따지는 한자 공부는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으로 알 뿐이지 '배울 학(學), 학교/달릴 교(校)'로 나눠 말을 배우지는 않는다. 한자를 초등학교 교과서에 쓰도록 했을 때, 한자 교육은 사교육 시장을 불릴 것이고 우리 아이들의 학습에 대한 짐을 더욱 무겁게 할 것이다.


태그:#한자교육, #초·중등교육법 , #한글전용, #한자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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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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