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게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 가끔 내 자신에게 묻는 말이다. 몸이 건강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다음은 뭘까. 답을 얻은 게 있다. 매일 추억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젊게 사는 것이다. 추억을 꺼내어 되새김질하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다.
최소한 11일 오늘 하루는 아주 많이 젊게 산 날이다. 30년 전에 했던 음악다방 DJ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우수축제인 '추억의 7080 충장축제'에서다. 올해 열 번째인 충장축제 추억의 테마거리에 조그마한 음악다방이 만들어졌는데, 그곳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2시간 동안 신청곡도 들려주고 사연도 읽었다.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서"라고 사연을 적고 이치현과 벗님들의 <집시 여인>을 신청한 분, "산수오거리 광주은행 지하 오거리 음악다방에서 80년도에 많이 듣던 노래임다. 친구 태식이랑"이라고 쓰고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를 신청한 메모지도 있었다.
"옛날 생각이 새록이 나 너무 좋네요. 친구랑 듣고 싶어요"라고 쓰고 김승진의 <스잔>을 신청한 메모지는 시간 끝날 무렵에 들어왔다. 예전처럼 메모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예쁘게 접어서 보낸 메모지는 없었지만 형식은 거의 똑같다.
지금은 어디서나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듣고 싶은 음악을 메모지에 적어 DJ 박스 안에 넣고 DJ가 음악을 틀어주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30년 전과 같다. 음악에 굶주렸던 80년대 음악다방과 음악감상실은 배고픔을 채워주는 곳이었다. 그래서 다운타운가에서 일하는 DJ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나도 음악을 많이 듣고 싶어 대학에 다니며 DJ 알바를 했었다. 모든 것이 넉넉하지 못한 시절이었지만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갈증은 심했다. 알바를 해서 전축을 샀던 날은 지금도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몇 번째 안 되는 날이다.
불법복제 판이 500~800원 하고 라이센스 판이 2500~2700원 하던 시절이었다. 인터넷에서 1만5천 원이면 6개월 동안 맘껏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지금을 30년 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형님, 오전 첫 타임 2시간 진행해주세요." 며칠 전 후배의 전화를 받고 많이 망설였다. 3년도 아닌 30년이 지나, 그것도 20대에 했던 음악다방 DJ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한번 해보고는 싶었지만 그것이 가능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어서였다. 한마디로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꿨다. '나는 프로가 아니고 아마추어다. 나는 그냥 7080 DJ다'라고 생각하니 재미있을 것 같았다. 멋진 추억 하나를 만들고 싶었다.
시작멘트와 마무리멘트도 쓰고 때 묻은 '팝스타송북'으로 공부(?)도 했다.
시간은 사람들을 조금씩 옮깁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뒤에 사람은 멀리 가 있죠. 지금도 시간은 우리를 옮기고 있습니다. 30년 만에 앉은 이 자리도 시간이 저를 많이 옮겨 놓은 자리입니다. 2시간 동안 함께 해주셔서 행복했습니다. 제 시간 마지막 곡으로 박강성이 노래한 <내일을 기다려>를 들려드리며 물러가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 이경모였습니다. 감사합니다.마지막 멘트가 끝나자 추억의 음악다방을 찾은 손님과 자원봉사자들이 큰 박수를 쳤다. 30년 만에 외출은 큰 추억 하나를 만든 축제일이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내 모습을 누가 봤다면 내 걸음걸이는 50대가 아니었을 게다.
덧붙이는 글 | 첨단정보라인 11월호에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