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009개정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경험적 분석①] 국어 교과서 2편
[2009개정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경험적 분석②]수학 교과서 2009 개정 교과서 중에 현장에서 그나마 가장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지는 교과서가 있다면 통합 교과서가 아닐까 싶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로 나뉘어 있던 통합 교과를 주제별로 재통합하고 교과서도 통합한 것은 의미있는 시도였다. 텃밭이나 산책, 주제 중심 교육 과정 재구성 같은 이런 저런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여지들이 훨씬 많이 열리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교과서도 얇고 가벼워서 좋고, 부록도 많지 않아서 사용하기에 편리하다. 다만 교과서 표지 사진이 일본 어린이 사진이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어 비난을 많이 들었다.
1. '시간적 기준'-'공간적 기준' 주제 선정. 억지스럽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주제는 시간적 기준에 따라, '학교'와 '나', '가족', '이웃', '우리나라'는 공간적 기준에 따라 다분히 자의적으로 선정된 주제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계절은 우리나라에 사는 모든 어린이들이 느끼는 계절의 변화이지만, 학교와 나, 가족, 이웃을 넘어서서 '우리나라'라는 주제는 갑자기 너무 커진다는 느낌이 강하다.
봄을 배우는 4월만 봄이 아니라 3월, 4월, 5월 모두 봄이고, 6월, 7월, 8월 모두 여름인데
특정한 한 달만 그 계절을 주제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기계적인 배치이다. 교과서 구성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화분에 모종을 심거나 씨앗을 심는 활동은 4월 어느 날 해야 할 수업으로만 제시되고, 5월 가족에서도, 6월 여름에서도 4월 어느 날 심은 씨앗과 모종에 대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놀이 활동도 주제에 꿰맞추기 위한 억지스런 부분이 많다. 특히 여름이라는 주제에 등장하는 '태풍 놀이'는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태풍이 발생하는 과학적 원리에 부합해서 만들어진 놀이도 아니다. 차라리 여름에 아이들이 많이 하는 전래 놀이나 몸놀이 등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학교와 나, 가족, 이웃은 아이들이 늘 경험하는 일상적인 공간 배치이다. 그래서 크게 거부감이 없지만 교과서에서 상정하고 있는 학교, 가족, 이웃이 너무나 피상적으로 제시되고 있어 아쉽다. 가족에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고, 남들보다 집이 작고 지저분해서 부끄러운 일도 많은데 그런 것을 풀어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크고 번듯한 집에 그럴싸한 가족의 사진만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라는 주제는 아직 아이들과 함께 공부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이해하면서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교과서 구성만 보면 너무 진부한 느낌이 든다. 태극기, 무궁화, 애국가를 강조하는 학습은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에 물들어 있는 것 같다.
2. 학년군별 성취기준, 결국 학년별 교과서로 위축?통합 교과서는 학년군별 성취 기준을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교과별로 제시하고 있다. 교과별로 4개의 성취 기준을 명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앞의 두 개는 1학년 성취기준, 뒤의 두 개는 2학년 성취기준이다. 교과서 구성도 그런 기준에 맞게 이루어져 있는 듯 보인다.
봄에 하는 활동이 1학년에는 씨앗이나 모종을 심는 활동인데 2학년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학년군별 성취기준 내에서 자유롭게 재구성하여 가르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1학년에도 씨앗이나 모종을 심고 가꾸는 텃밭 활동을 넣을 수 있고, 2학년 때도 넣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경직된 교과서 내용 구성은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교과서는 학년군이 아닌 학년별로 이수 시간 기준, 성취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년군별 교육과정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3. 삽화나 사진 자료가 강요하는 중산층 문화질서<아빠 어디가>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지금이야 온갖 간접광고 상품으로 도배되어 그 빛을 잃어가고 있지만 처음에는 오지 산골의, 지붕이 날아갈 것만 같은 흙집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며 자야하는 낯선 체험들이 주류였다. 그 프로를 보면서 낯설고 재밌었던 것은 도저히 나라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시는 것이었다. 집의 크기나 위치, 모양이나 구성보다 그저 '따뜻한 우리 집 한 채'라는 점에서 집은 모두 똑같은 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에 등장하는 삽화나 사진 자료는 그런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번듯하고 그럴 듯한 집만 제시된다. 그러면서 우리집은 좁고 불편하고 벗어나고 싶은 곳이라는 자본의 질서를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듯 하다. 가족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의 아픔이나 어려움, 또는 즐거운 일상을 나누고 공유하도록 하기 보다는 '효'에 대한 암묵적 강요로 덧칠되어 있다.
이웃이라는 주제도 참 다루기 어려운 주제다. 우리반 아이들에게 들었던 이웃에 대한 이야기 중에 마음에 남았던 것은 다세대 가구의 집주인이 마음대로 수도 요금을 걷어가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거나 층간 소음 문제로 혼나거나 싸웠다는 이야기. 그리고 층간 소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집을 많이 비우도록 노력하겠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교과서만 따라가다 보면 그런 삶의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통합 교과서로 겉통합만 했지 속 내용을 아우르는 철학적 사유가 전혀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아이들의 삶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절기의 변화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런 변화들 가운데 중심을 잃지 않고 가르쳐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학교와 나, 가족, 이웃을 넘어 우리나라,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를 아이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거기에서 아이들이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이고, 어른들이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런 사회적 합의가 더 절실해 보인다. 그런 철학적 토대가 없기 때문에 일본 어린이 사진이 교과서 표지로 버젓이 실리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은 아닐까.
4. 단원 주제별 관련 이야기, 책을 사줬으면통합 교과서는 주제별로 두세 개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단원이 도입될 때마다 이야기가 나온다. 기존의 작품을 조금씩 윤색하거나 짜깁기해서 삽입한 이야기들이다. 국내도서는 그림 판권을 구매했는데 원화가 그대로 나오지만, 번역서들은 원화가 아니라 다시 그린 그림이 들어가 있어서 이야기의 맛이 떨어진다. 8개의 주제와 관련된 도서 목록을 정리하고 그런 도서들을 구입해서 교실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5. 교과서만 통합, NEIS는 따로국밥교과서만 통합되었지 교육행정 정보시스템(NEIS) 상에서의 시간표 입력이나 평가는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로 나누어 따로 따로 해야 하는 따로국밥 신세다. 이에 대해 교육부와 교육 과정 개발진에게 문의를 해도 서로의 탓만 하면서 아무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미 만들어진 분과 학문 체계를 통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결국 실생활에서의 통합, 학습에서의 통합은 교사의 몫이라는 엄연한 현실. 그 속에서 틈을 찾아 돌파구를 만들어가는 것도 교사라는 것이 다시 한 번 무겁게 다가온다.
덧붙이는 글 | 초등학교 1학년 국어, 수학교과서 기사에 이어 쓴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