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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대선개입 시국회의 주최 제16차 범국민촛불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국정원에 이어 밝혀지고 있는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선거개입을 규탄했다.
▲ "국정원도 모자라 국방부도 선거개입" 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대선개입 시국회의 주최 제16차 범국민촛불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국정원에 이어 밝혀지고 있는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선거개입을 규탄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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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선 민주당의 제8차 국민결의대회에 뒤이어 매주 토요일마다 계속되고 있는 제16차 범국민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날 촛불은 공식 피켓의 내용부터 달라졌다. 그동안 '국정원 해체'만이 명시되어 있던 공식피켓은 "국정원도 모자라 국방부도 선거개입, 민주주의 지켜내자"(앞면), "국민은 촛불행동, 국회는 입법투쟁, 국정원 전면개혁"(뒷면)으로 바뀌었다. 이번 국정감사 결과 지난 18대 대선이 국정원뿐만 아니라 국방부, 국가보훈처 등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총체적 관권선거, 불법 부정선거였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주의 지켜내자"는 목적성의 측면에서 조금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피켓에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구체적으로 해야 할지를 제시하는 것이 좀 더 선명하지 않을까.

그동안 촛불이 동력을 상실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지금 그런 우려는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에 의해 보기좋게 잠재워지고 있다. 18대 대선이 '국정원 선거개입'을 넘어 '총체적 관권선거'였던 것이 확인된 만큼, 이제 사태는 국정원 개혁 수준에서 매듭지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죄를 하거나 퇴진하지 않는 한, 촛불 역시 지속될 수밖에 없다.

사실 그동안의 행태를 통해보면, 박근혜 정권의 주특기는 모든 상황을 '극한'으로 몰고가는 데 있다. 이제 촛불과 박근혜 정권의 관계 역시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형국이다. 그래서일까. 이날 극우관변단체들의 '촛불 방해 집회'(이른바 '맞불집회')는 평소보다 더욱 극성스러웠다. 거의 '준동' 수준이었다. 참 저열하고도 비열한 처사였다. 역시 정권을 찬탈한 자들의 발상 다웠다. 촛불의 등을 향한 그들의 스피커에서는 유치한 군가(軍歌) 따위가 시끄럽게 흘러나왔고, 심지어 북한 방송까지 틀어댔다. 하지만 이는 이 땅의 진정한 종북세력은 북의 존재에 의지해 민주주의를 유린하며 정권영속을 기도하는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 자신임을 드러내 줄 뿐이었다.

이날 촛불집회는 '국정원' 3행시 공모전 결과 발표로 시작됐다. 그 중에는 "민보호하랬더니 권을 창출하네 래 그런거야?", "민은 당한 선거를 한다", "기문란 단죄하여 의와 상식을 바로잡고 없이 민주주의를 노래하리라" 등 뼈있는 3행시들이 많았다. 정권재창출의 일등공신이 되어 검찰도 설설 기어다니도록 만들며 '오만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국정원이 과연 스스로를 개혁해낼 수 있을까? 그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어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역사비평사) 저자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연단에 올랐다. 지금부터 41년 전 10월 17일은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선포한 날이었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는 해외 한국학연구자들이 조만간 국내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한국의 촛불대중과 함께 싸울 것"임을 천명할 것이라 했다.

이어 현 시국에 대해 "박정희가 유신헌법, 긴급조치, 고문, 무차별 탄압 등의 고강도 긴급조치로 통치했다면, 박근혜는 저강도 긴급조치를 통해 우리를 통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강도 긴급조치가 박근혜 시대에 이르러 훨씬 은밀하고 교활해졌다는 분석이다. '집회의 자유'를 관변단체 동원을 통해 법 외의 졸렬한 방법으로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현장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민변 장주영 회장이 연단에 올라 앞으로 해내야 할 과제들을 조곤조곤 풀어냈다. 그는 "국가기관의 불법적 대선개입이 어디까지 드러날지 정말 궁금하다"면서 "현재 검찰수사가 지지부진하고 진상규명이 어려울 것이 예상되므로 특검 도입이 필요하며, 정권 차원의 수사방해 행위까지도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동안 국정원, 사이버사령부가 증거를 다 삭제해왔으므로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 증거 인멸 시간만 벌어주는 셈"이라 경고했다. 아울러 국정원 개혁은 "국회의 제도개혁으로 달성해야 하며, 수사권 폐지와 더불어 정보수집 권한은 국내와 국외로 분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집회는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해체 음모에 대항해 전교조 조합원 선생님들의 장(場)으로 꾸며졌다. 박근혜 정권의 규약시정명령 요구에 대해 전교조는 총투표를 단행했고, 그 결과 68%(투표율 81%)가 '거부'를 택했다. 따라서 이날 촛불집회는 전교조 조합원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는 촛불에 새로운 기둥이 생겼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 역시 '적대적 상대'를 양산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박근혜 정권 덕분이지만.

정작 국정원은 해체하지 않고 전교조를 해체하려 들며 '참교육'의 이상을 탄압하는 박근혜 정권에 대해 광주에서 오신 풍물패 교사 분들은 풍자극 한마당으로 맞섰다.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진짜 잘하신다"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로 풍자극은 재미와 신랄함을 두루 갖춘 내용이었다. 예컨대 "박정희가 18년 해쳐먹어서 박정희 뒤로 18이 욕이 된 거여", "(박근혜는) 액기스만 뽑아도 지 아버지가 18년 동안 해쳐먹은 것 보다 더 많어. 박근혜가 괜히 18대 대통령인 줄 아냐?" "박근혜는 한 글자면 끝나. '뻥!'"(박근혜의 잇단 공약 뒤집기를 의미),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드는 건) 별거 아니여, 전교조를 좀 더 키워주겠다, 그 말이여" 등의 대목에서 집회 참가자들의 웃음이 빵빵 터졌다.

이어 현재 사범대학에 재학 중인 한 예비교사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이번 전교조 탄압 사태에 맞서 "지방 소재 사범대 학생들도 다 같이 모여 예비교사 선언을 발표했다. 사범대 학생들도 개인화, 파편화된 요즘 이런 전국적 흐름이 나올 수 있었던 건 더이상 못참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다음, 전교조가 탄압받는 건 "저들이 '참교육'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친일미화 독재미화 교과서 비판이 종북 빨갱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참교육이라면, 우리는 자신있게 종북빨갱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공감을 자아냈다. 또 연단에 오른 한 고등학생은 "전교조 선생님들은 늘 약자의 편에 섰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는 오후 9시쯤, 전 참가자가 '아침이슬'을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촛불의 희망사항이 아침이슬 노래 속에 녹아 광장의 밤하늘을 울렸다. 앞으로도 촛불은 그 어떤 교활한 방해 준동에도 굴복하지 않고, 다 함께 흥겹게 노래부르며 나아갈 것이다. 밤 하늘을 밝힐 촛불은 이 땅 위에 '촛불시민'이 있는 한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촛불은 더욱 환해질 것이다.


태그:#16차 촛불집회, #관권선거, #집회의 자유, #전교조,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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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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