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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지승호의 <공범들의 도시> 한국적 범죄의 탄생부터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 지승호의 <공범들의 도시>한국적 범죄의 탄생부터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 김영사
2010년 하버드 대학교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설파한 정의론은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주로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철학적 접근과 자유 민주 사회에서 부딪치게 되는 다양한 의견들을 이성적으로 통과하기 위한 질문과 답변으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정의를 깊숙이 새겨주었다.

최근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건이 나자 과감하게 경찰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며, 우리 사회의 굵직한 문제들을 매우 정직하게 비판하면서 건강한 사회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표창원과 13년간 전문 인터뷰어로서 서른 권이 넘는 인터뷰집을 펴낸 지승호가 만나 펴낸 책 <공범들의 도시>도 결국 '정의'의 문제와 관점으로 귀결된다.

<보수의 품격> 이후, 이 두 전문가의 만남은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부면을 다루며, 광범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표창원과 지승호를 따라 가다보면 도대체 우리 사회의 이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우리 사회가 이토록 어두웠는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이리도 먼 것인가, 하는 암담함과 답답함으로 절벽 앞에 선 심정을 느끼게 하지만, 그들의 '돌직구'는 불편한 진실을 바로 보게 하며, 시원하게 속을 열어주기도 한다.

우선 표창원은 거침없다. 대부분 실명을 거론하며 사실에 입각한 비판을 가감 없이 전개해 나간다. 정말이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정확한 분석, 합리적인 문제해결방안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책을 잡는 순간부터 놓을 수 없다.

한국적 범죄는 사회적 모순에서 발생한 사회적 분노이다

한국적 범죄는 어디에서 탄생하는가. 인큐베이터는 어디인가. 대담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사회적 분노'였다. 층간 소음으로 살인하고, 방화하고, 연쇄 살인하는 이 범죄들은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분노가 표출되는 것이고, 이 분노를 줄여나가는 출발점은 가진 자들의 과오와 잘못부터 반성하고 책임지고 바람직한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경찰들의 활동 패러다임이 예방활동으로 변하고 있어도, 아직도 우리나라는 결과 위주, 실적 위주의 활동만 한다고 했다. 아예 바람직한 치안 정책이나 경찰 철학을 받아들이고 채택할 수 있는 기구나 기관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에 충성하는 1인 경찰청장이 4대악 척결 같은 대통령의 의중을 지방경찰청으로, 각 경찰서로 하달하여 실적 보고하라는 지시만 있을 뿐.

일선 경찰들도 그런 실적 위주 활동에 쫓기어 어찌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문방구가 죽어나고 서민들이 죽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이 바쁘면 바쁠수록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경찰이 바쁘면 바쁠수록 서민들이 화를 내고 볼멘소리하고 분노한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신창원, 무기징역+22년 6개월 형

결국 우리 사회의 양극화, 빈부격차, 모순된 사회구조, 그리고 1인 지배 체제인 경찰 구조 등이 곧 한국형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법 집행의 불공정성은 사법 체제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데, 표창원은 신창원과 지강헌의 사례를 통해 매우 날카롭게 이 문제를 지적한다.

세상에 이태원 살인사건 같은 경우는 분명 둘 중 한 명이 살인범인데, 둘 중 누군가를 특정하지 못한다고 아무도 벌을 내리지 못한 사법부가 4명의 공범 중 한 명만 피해자를 살인했는데, 피해자를 살해할 의사도 전혀 없었던 공범에게 무기징역형을 내리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거예요. 거기다 전경환 같은 인간이나 기타 수도 없는 힘 있고 돈 많은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과 비교해보면 그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본인의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탈주한 2년의 기간 동안 경찰을 농락했다는 괘씸죄가 22년 6개월 형을 추가로 선고하게 했던 것이 아니냐는 거죠.(본문 61쪽)

신창원은 '무기징역+22년 6개월 형'을 받았다. 탈주하여 인질극을 벌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한 지강헌도 500만 원을 훔치고 17년 형을 선고받았기에 그런 비극이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한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 혹은 가장 비난받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권리를 보호받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한 표창원의 말은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지나치게 수직적인 경찰 내부 구조

표창원은 이어서 조현오 경찰청장을 사임시킨 오원춘 사건을 통해서 경찰 내부의 아픈 속살을 건드린다. 성폭행 피해자가 112에 신고했는데도 출동을 지연하여 결국 살해된 사건은 단순히 112 신고제도 개선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국가 치안 시스템의 근본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잘못된 경찰시스템과 경찰관 양성시스템을 원점부터 뜯어고치고, 119와 112를 통합하여 사건에 대한 대응을 빠르게 하자는 제안을 하는 외에, 경찰관들의 사기 저하와 낮은 처우의 원인은 경찰 고위 간부들의 경직된 태도와 권력지향적 이기심에 있다고 폭로한다.

저도 경찰관 생활을 해 봤지만, 제일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내부에서 상사들의 불합리한 대우, 그리고 부하 직원을 노예나 몸종처럼 부리려는 태도, 인격 무시, 이런 것들이 가장 큰 문제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위험 상황이라든지, 어려움에 노출되었을 때 내가 실수했거나, 잘못은 아니지만 결과가 나빴을 때, 상급자들이 자기를 보호해주지 않고 내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가장 중심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사회와 언론의 잘못인 것처럼 자꾸 이야기가 되니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 나오는 거죠.(본문 193-194쪽)  

말하자면 경찰관 한 명 한 명이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계급에 상관없이 인권을 존중받고, 자기실현의 기회를 부여받으며, 불의의 사고나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때, 경찰관들도 국민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말일 터.

나는 이 부분에서 문득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말콤 글래드웰의 역작 <아웃아리어>가 생각났다. 이 책엔 조직 내부 상하관계의 경직성을 분석한 '권력간격지수'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상하관계가 너무 엄격하여, 멕시코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권력간격지수가 높게 나오는 나라로 명시되어 있다. 미국이나 유럽 나라들에서 그 지수가 매우 낮게 나오는 건, 그 나라들이 그 만큼 수평적인 사회임을 증명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불평등한 수직구조는 세계적인 관심과 연구대상이 되었다.

범죄 피해자 보상 제도

표창원의 대담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제도를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서구의 경우 심리적, 정신적 치유와 피해 보상 등, 완벽에 가까운 피해자 지원 시스템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개인에게 떠맡기는 잔인한 사회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들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대개 가해자에게서 받은 벌금의 일부를 피해자 지원 기금으로 넣고 있는데, 성폭행의 경우도 가해자의 피해자 접근을 금하기 때문에 국가에서 피해자에게 필요한 모든 보상과 치료를 피해자 지원 기금으로 해준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현대 그룹 정몽구 회장이 배임횡령죄에 걸려서 엄청난 벌금액을 선고받았잖아요. 그러면 그 엄청난 벌금이 어디로 갈까요. 전부 국가로 갑니다. 그래서 법원 건물 세우고, 검찰청 세우는 데 씁니다. 국가가 도둑놈이죠. 그럴 것이 아니라 그런 벌금 중 상당수를 피해자 기금으로 넣으면 되는 거죠. (…) 그렇게 지원하게 되면 피해자들도 떳떳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시혜로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죄지은 놈들이 낸 돈으로 당당하게 보상받는다면, 피해자들도 어디 가서 미안해하거나 고맙게 여길 필요가 없는 거죠. 왜 피해자가 고맙게 여겨야 해요?(본문 278쪽)

높이 올라가는 사람일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표창원이 건드리는 문제들은 차고 넘친다.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며 국민들 위에서 군림하는 검사, 일본법을 베낀 식민형법과 공소시효,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경찰, 사형제 폐지 논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과학수사, 국가를 뒤흔드는 범죄인 전관예우, 검사 출신이 장악하여 형사정책을 생산하는 못하는 법무부, 사이코패스와 정치인들의 공감 능력, '일베'들과 표현의 자유, 경찰대학과 경찰청장, 그리고 계급지상주의, 국정원 문제와 경찰 노조 문제 등을 다루며, 그는 매우 날카로운 말로 문제의 핵심을 짚어 가며 경종을 울린다.

검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잘못한 경우에 다른 사람과 똑같이 수사 받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거죠. 관행적으로 당연히 증거 중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것은 빠뜨리고 있거든요. 그게 범죄라는 인식이 없어요.(본문 81쪽)

우리 사회에서 높이 올라가는 사람일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공감 능력이 없어야 출세할 수 있는 이상한 사회가 된 거죠.(201쪽)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게 맞아요. 오히려 공산주의 국가에서 가장 사형을 많이 시키거든요.(211쪽)
전관들에게 수억을 주면서 어떤 것인가를 했다면, 전관을 살 수 없었던 상대방에게는 엄청난 불이익이 가해졌을 거란 말이죠. 이게 우리 사회의 정의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어요.(257쪽)

선거 무효 내지는 정권의 정당성을 잃을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철저하게 원세훈의 진상을 밝히고 처단하는 것이 현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352쪽)
경찰 내의 경직된 상하 위계질서가 깨져야 하고, 전문성이 무시되는 풍토가 깨져야 하고, 계급으로 모든 것들을 깔아뭉개려는 계급지상주의가 깨져야 합니다.(381쪽)
유럽연합의 경우 EU 가입국에 대한 권고 자체가 경찰관 노조, 공무원 노조를 인정하라는 겁니다. 시대정신인 거죠.(403쪽)

용기 있는 소수와 정직한 다수의 연합과 협력

앞에서도 언급했듯, <공범들의 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정의'이다. 공자께서 '덕으로써 정사를 펴는 것은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으나 뭇 별들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과 같다.' 하신 말씀처럼, 그 '덕'이라는 말에 '정의'라는 말을 대체해도 그 의미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표창원은 책의 말미에 우리 사회가 더 늦기 전에 '용기 있는 소수와 정직한 다수'가 연합하고 협력해서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범죄자들과 불법행위에 동참하는 공직자들은 똑같이 '비겁한 자들'인데, 만약 침묵으로 정의의 노력을 외면한다면 '공범들의 도시' 안에서 그들과 동거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는 메시지로 들린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국가기관과 정당이 자신들의 조직과 고위 공직자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하는 구성원들을 도리어 배신자로 낙인찍어 내쫓는 뒤집힌 세상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하여.

덧붙이는 글 | <공범들의 도시>, 표창원.지승호, 김영사, 2013년 10월 2일, 1만 4천 원



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김영사(2013)


#표창원#한국적 범죄#사회정의#경찰의 수직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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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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