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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일상생활과 지방자치단체의 관계 밀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해진 주민의 이해와 요구를 능동적으로 실현해가는 지방자치단체의 혁신 사례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모여 이동호(40) 씨의 망원경 설명을 듣고 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모여 이동호(40) 씨의 망원경 설명을 듣고 있다. ⓒ 이규정

서울 성북구 고명정보산업고등학교 과학교사 이동호(40)씨는 지난 8월부터 노원구 '마을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별을 보는 마을 학교'를 주 1회 진행하고 있다. 아마추어 천문가이기도 한 그는 천체관측 노하우를 동네 아이들에게 전수하고 싶어 이 프로그램 개설을 신청했다.

노원구청에서 운영하는 '마을이 학교다' 홈페이지(nest.nowon.kr)에서 성인들은 '마을학교' 프로그램 개설신청을, 초·중·고 학생들은 수강신청을 할 수 있다. 개설 신청이 접수된 프로그램은 구청의 심사를 거쳐 개설된다. 8월부터 현재까지 602명의 학생들이 예능·체육·언어 분야 등 80개의 '마을학교'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목록을 보면 건축가 장우진씨의 '어린이 건축마을 학교', 파리 유네스코 한국 대표부에서 근무한 이경신씨의 '프랑스문화 마을학교' 등 다양하고 전문성도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마을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월 1~2만 원의 저렴한 수강비용 덕분에 초·중·고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별을 보는 마을 학교'는 신청자가 많아 제비뽑기를 해야 했을 정도다.

기자는 지난 17일 이동호씨가 '별을 보는 마을학교' 수업을 여는 날 현장을 찾았다.

가을밤, 돗자리 깔고 과학선생님과 별 보기

'서울에서 별을 본다. 가능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바꾸어 보자. 별을 보기 위해 멀리 가거나 비싼 비용을 치루며 가지 않아도 동네 학교에서 부모와 자녀가 손을 잡고 밤하늘을 보며 별을 헤아려 보자.'

이동호씨가 '마을이 학교다' 홈페이지에 직접 올려놓은 '별을 보는 마을 학교' 개설내용이다. 실제 수업도 그가 묘사한 풍경과 흡사했다.

오후 7시, 텅 빈 초등학교 교실에 초중등 학생들 10여 명과 학부모들이 함께 이동호씨의 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운동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실습으로 만든 망원경과 선생님이 준비한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했다.

간단한 이론수업 뒤에는 간이 망원경을 제작이 이어졌다. 봉사활동하는 중학생 4명이 학생들에게 재료를 나눠주고 조립을 도왔다. 수업에 참여한 학부모들도 망원경 조립을 도왔다.

 골판지로 간이망원경을 만드는 과정
골판지로 간이망원경을 만드는 과정 ⓒ 이규정

 윤가람(11) 군이 망원경을 만들고 있다.
윤가람(11) 군이 망원경을 만들고 있다. ⓒ 이규정

맨 앞자리에 앉은 윤가람(11) 군과 옆자리의 엄우진(10) 군은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골판지 몇 장과 렌즈 두 개로 금세 그럴듯한 망원경을 만들어냈다.

"이제 나가서 망원경 세 개로 달을 볼 거예요. 거울 달린 망원경, 거울 없는 굴절 망원경 그리고 쌍안경으로 달을 봤을 때 어떻게 다른지 살펴 봅시다."

이동호씨의 말이 떨어지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컴컴한 운동장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교사 주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한 학생이 직접 만든 간이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하고 있다.
한 학생이 직접 만든 간이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하고 있다. ⓒ 이규정

 이동호(40) 씨가 망원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동호(40) 씨가 망원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규정

이동호씨는 머리에 헤드랜턴를 장착하고 차에서 길이 1m 남짓한 망원경을 꺼냈다. 몇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몇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했다. 이씨는 아이들에게 망원경에 대해 설명하며 조립을 시작했다.

이씨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송주형(11)군은 "실제로 별이나 달을 관찰할 기회가 없는데 여기서는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어 좋다"며 "장래희망이 과학자인데 여기서 우주에 대한 지식을 더 잘 배우고 싶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날 공부한 내용은 교과서에도 있지만 학생들이 이날처럼 생생하게 접할 기회는 적다. 또 초·중 학생들과 부모들이 한 데 어울리는 일도 드문 일이다. 학생들의 진로·적성은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진짜 잘 보여!" 한 학생이 망원경으로 100배 확대된 달을 보고 환호했다.
"진짜 잘 보여!" 한 학생이 망원경으로 100배 확대된 달을 보고 환호했다. ⓒ 이규정

이동호씨가 망원경 설치를 완료하자 아이들에 망원경 뒤로 줄을 늘어섰다.

"진짜 잘 보여!"

100배 확대된 달표면을 보며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학생들이 망원경에 집중하자 비로소 이동호씨에게 잠깐 짬이 생겼다. 기자는 그에게 이 프로그램을 개설한 취지를 물었다.

이동호씨는 "중국 사람들이 넓은 세상을 보기 때문에 마음이 크다고 하잖아요. 우리 아이들도 넓은 하늘의 별보면서 큰 생각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라며 "다음 주에는 별자리와 그리스 로마신화 이야기를 엮어서 이야기할 예정인데요. 아이들이 별을 보며 인문 지식도 습득하고 상상력을 키우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
김성환 노원구청장 ⓒ 이락희

지난 17일 구청장 집무실로 가는 복도에서 구청 관계자는 "구청장님이 '마을이 학교다' 사업에 꽂힌 것 같다"고 귀띔했다.

집무실에서 인사를 주고받자 뜻밖에도 김 구청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책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박 시장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있을 때 <마을이 학교다>라는 책을 냈다"며 책장에서 책을 꺼내보였다. 그는 "책 내용은 대안학교 탐방기지만 '마을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모티브는 이 책에서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북부교육청 교육장이 인사말 할 때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인용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노원구에서 그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은 박원순 시장에게서, 방침은 북부교육청 교육장에서 따온 셈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구성에는 김 구청장이 깊이 관여했다. 그는 "교육 전문가, 학부모들과 5~6차례 간담회를 진행했고 노원구 초·중·고의 교장들에게 자문위원을 한 명씩 추천받았다"며 "이 96명의 자문의원이 기본적인 틀을 결정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입 조기교육을 시키는 세상이다. '마을이 학교다'가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을 찾는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지난해 노원구에서 지자체 최초로 교육청과 협약해 진로체험센터 '상상이룸센터'를 만들어 학생들이 직업 체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초등·중등 단계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체계적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마을이 학교다'의 단위사업 중 하나인 '책읽는 마을'은 학생들이 독서이력 등을 관리할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이 적성을 찾고 자기소개서를 쓸 때 근거가 될 것이다."

'마을이 학교다'는 지난 8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규 사업인데 새로운 구청장을 뽑는 6·4지방선거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마을이 학교다'의 미래가 궁금했다. 김 구청장은 "주민들의 호감도가 굉장히 높은 사업이라 설혹 구청장이 바뀌더라도 계승될 것"이라며 "지난 1월부터 구내에 '마을이 학교다' 플래카드를 걸어놨는데 제가 만난 주민들이 플래카드를 보고 잃어버린 공동체의 가치를 떠올린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주민들 스스로가 '마을학교'를 개설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 주민들이 기꺼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바로 '마을이 학교다'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이 프로젝트는 마을의 교육 수준을 높일 것이다. 아울러 내 아이에 대한 관심을 동네 아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하고 싶다."

20분 예정됐던 인터뷰는 30분을 훌쩍 넘겼다. 그래도 김 구청장은 할 말이 있는지 기자에게 '역사의 길 조성 기획안'을 내밀며 또다른 사업에 대한 설명을 추가했다. "역사를 주제로 조성한 이 산책로를 걸으면서 학생들이 역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는 배석한 구청 직원의 만류에야 끝이 났다.



#노원구#마을이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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