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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투쟁 현장은 생각보다 공고하다. 주민들은 힘들지만, 지금까지 못하겠다고 나오지는 않는다. 주민들은 나름대로 잘 버티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아래 한전)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20일 넘게 계속하고 있는 속에,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천주교 부산교구)는 공사를 막기 위해 나선 주민들의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김준한 신부는 천주교 부산교구 남밀양성당 주임신부이던 2008년부터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함께 해왔다. 한전에서 낸 공사방해금지가처분신청(25명)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는데, 김 신부도 포함돼 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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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는 송전탑 반대에 나선 주민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대책위는 밀양시민단체인 '너른마당'에 상황실을 두고, 주민들과 연락하거나 기자회견을 열기도 하고, 주민들의 경찰연행과 병원 후송 상황을 파악해 대응하기도 한다.

김준한 신부는 "어르신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대책위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어르신들을 대변하는 것이지 대신하는 것은 아니고, 어르신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준한 신부는 최근 부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산·밀양을 오고 가면서 송전탑 반대 주민들을 돕고 있다. 김 신부는 25일 한전, 30일 경남지방경찰청 국정감사 때 증인과 참고인으로 출석한다.

공사 재개 20일째인 21일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도로에 있는 주민 농성장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어르신들까지 연행하는 경찰... 놀랍고 당황스러워"

-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으로 알고 있는데, 분위기는?
"천주교 부산교구 남밀양성당에 있을 때 신자들도 한결같은 마음은 아니었다고 본다. 아무래도 불편했을 것이다. 성당 안에서 어느 부분은 소홀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불편해 하는 신자들도 있었을 것아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제가 송전탑 반대 활동에 나서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드물었다. 부산교구의 신부들이 직접 저한테 항의하는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100% 동의한다고 말은 못하지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지 20일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에 대한 판단은.
"경찰이 지난 5월에 비해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주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대단히 과잉진압하는 게 예상보다 심하다. 지난 5월에도 경찰이 있었지만 그래도 중립을 지키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무총리실에서 어떤 명령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너무 심하다. 이렇게 경찰이 심하게 하기는 정말 드물 정도라고 한다. 주민들도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 처음에는 활동가만 연행하는 줄 알았는데, 어르신들까지 연행하는 작태는 정말 놀랍다. 당황스럽다. 그러나 주민들의 투쟁 현장은 생각보다 공고하다. 주민들은 힘들지만, 지금까지 못하겠다고 나오지는 않는다. 주민들은 나름대로 잘 버티고 있다."

- 지난 5월 상황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제일 큰 변화는 경찰의 물리력이다. 한국전력공사는 뒤로 빠지면서 주민들은 경찰과 직접 충돌하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이 힘들어 한다. 일부에서는 지친 모습도 감지되는 게 사실이다. 4개 면(산외·부북·상동·단장)의 대표자들이나 송전탑 반대 활동을 중심적으로 해온 분들은 그럭저럭 자리는 잡고 있어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 경찰에서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를 이끌고 있는 책임자들을 불법행위로 엮으려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지.
"저와 이계삼 사무국장은 공사방해금지 대상이 돼 있다. 저에 대해서는 경찰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획 수사를 하고 있는지 감지되는 것은 없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이미 집시법 위반 등으로 해서 기소된 게 있는데, 상당히 의심 가는 부분이 있다. 경찰이 필요하다면 병합시키려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대책위의 발은 묶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얼마 전 한 주민이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대책위 관계자들하고 연락을 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핸드폰을 열람하려고 한 것으로 안다. 그렇게 해서 무리수를 던지려고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지금 상황에서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나름대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한전이든 정부든 극적인 타결 방안을 빠른 시일 안에 찾아내기는,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볼 때 힘들다. 실마리를 푸는 게 중요한데, 우선 텔레비전 토론이 되어야 한다. 텔레비전 토론을 한다면 팽팽하게 맞설 것인데, 중앙방송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론의 향방이 매우 중요한데, 텔레비전 토론을 하게 되면 어느 쪽이든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여론의 흐름에 따라 서로 대화의 장에 나올 수 있다고 본다. 한전이 논리적으로든 어떤 상황이든 자신이 있다면 텔레비전 토론에 나올 것이다. 이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텔레비전 토론에 대해 긍정적인 답을 냈던 적이 있다. 물론 그것이 지방방송만 고집하는 바람에 되지 않았고, 지방방송만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텔레비전 토론을 한다면 그것이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한전은 텔레비전 토론 제안을 거부했는데.
"거부해야 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여론의 향방이 두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호기의 부품 성능시험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한전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명분 없는 공사 강행에다 공사에 속도를 내는 것이 국민 앞에서 검증을 받게 될 것이기에 그것이 두려워 회피한다고 본다. 우리는 거듭 토론을 요구할 것이다. 공식적인 방법이든 아니면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서든 계속 요구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송전탑 반대하는 것은 당연"

밀양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나선 주민들이 계속해서 경찰에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속에,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21일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기획 체포 의혹과 과잉 대응'이라 주장했다. 사진은 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가 경찰을 향해 발언하는 모습.
 밀양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나선 주민들이 계속해서 경찰에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속에,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21일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기획 체포 의혹과 과잉 대응'이라 주장했다. 사진은 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가 경찰을 향해 발언하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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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송전탑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본질은 두 가지다. 재산과 건강 문제다. 재산권 피해는 엄청나다. 시골에서 땅이 가지는 의미는 도시와 다르다. 시골 사람들은 금융자산도 없고, 연금도 없다. 땅은 단순한 재산권이 아니라 생존권이다. 한전에서 보상해 준다는 게 가구마다 400만 원이라고 한다. 말도 안 된다. 몇 억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다. 시골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전 재산을 잃다시피 했다. 만약에 도시에서 아파트값이 폭락하는데 400만 원만 보상한다면 아마도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 건강 문제는?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다. 그 분들은 이미 765kV가 건설된 지역을 답사도 해보았다. 철탑이 들어선 뒤 암 발생률이 높아졌다. 이곳 토착민도 있지만, 이주민도 많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이곳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다. 맑은 공기와 자연환경 속에서 건강을 되찾아 행복한 노후 생활을 보내려 왔는데, 철탑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건강이 나빠지게 되었으니 그 분들은 밀양에 온 목적이 완전히 뒤집어지고 만 것이다. 땅에 대한 생태적인 감수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도시라면 적당히 합의를 보고 결론을 냈겠지만, 이곳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며 시장 등 정치인들은 이전에 송전탑 반대를 외쳤지만 지금은 정반대인데, 왜 그렇다고 보는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송전탑 반대를 해봤자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근래에는 밀양에 '나노산업단지' 건설이라든지 도로 확포장과 같은 지역 개발문제와 어떤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선거에서 얻는 표를 계산했을 수도 있다. 시골 면단위에서 얻는 표보다 밀양시내 사람들한테서 얻는 표가 더 많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만약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시골의 소외지역을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 밀양지역 관변단체들이 이전에는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궐기대회까지 열었다던데.
"기본적으로 송전탑에 찬성할 수가 없다. 면지역이든 도심이든 마찬가지다. 그냥도 아니고 765kV 초고압 송전선로가 들어서는데 환영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 분들도 송전탑 반대에 심정적으로 동의하지만, 반대 활동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압력이 있지 않았나 싶다. 나노산단 등에서 보듯이, 송전탑의 직접 피해와 상관없는 지역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을 배신하는 결과다. 일종의 자본주의적 유인책이다."

- 밀양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는 이미 송전탑이 세워졌기에 밀양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건 아니건 간에, 우리나라 송전 시스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언제까지 지금과 같이 철탑에 의존하는 형태로 송전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바꾸어야 하지만, 밀양은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기에 할 수 없이 해야 하고, 다음부터는 다르게 하겠다고 하는데, 결코 믿을 수 없다. 진정성이 있으려면 상황이 벌어진 이곳에서부터 해결점을 찾지 않으면 제2, 제3의 밀양이 등장할 것이다.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에 해결과 변화를 한다는 것을 누가 믿겠느냐. 신고리원전 3호기 부품성능 실패에 따른 국고 손실이 엄청난데, 그것은 언론에도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송전선로를 지중화 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한전이 지금 당장 진정성을 보이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 이미 공사가 완료되었다고 하더라도, 밀양의 송전탑 반대는 의미있는 싸움이다."

- 한전과 주민의 싸움에서 누가 이길 것이라고 보는지?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로 볼 게 아니다. 대책위가 어르신들 곁에 있는 것은, 어떤 분이 조언을 하기도 했지만, 어르신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대책위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르신들을 대변하는 것이지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도와드리는 입장에서, 어르신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함께할 것이다. 어르신들이 유의미한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

처음에 대책위를 구성할 때도 어르신들과 약속했지만, 이기든 지든 두툼한 백서를 만들어 어르신들의 댁에 꽂아 드리겠다고 했다. 대책위도, 어르신들도 진정성을 갖고 했던가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전국에 보면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곳에 백서를 보내드려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어용학자들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도 수록할 것이다. 누가 이길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단순히 이겼다 졌다거나 0%, 100%가 아니다. 주민들은 분명히 의미있는 결실을 맺을 것이다."

"종북-좌파 논란, 자신의 삶 지키려는 주민들 무시하는 얘기"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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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세력 논란도 있는데.
"요즘 우리 사회의 흐름 속에 하나의 큰 줄기가 모든 문제를 이념으로 몰아버리는 것이다. '종북'이니 '좌파'니 하는 것들은 여론을 왜곡하기 위한 좋은 먹잇감이다. 이전에는 돈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이념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약화시키려고 한다. 시골에 있는 사람들을 그런 의도로 결합했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상상력이다. 도심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크게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시골사람들한테 '종북'이니 '좌파'니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무리수를 던진 것이다. 어떻게 하든 주민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 천주교에서 주민들을 세뇌시켰다고 주장했던 적이 있는데.
"이전에 한전 부사장이 그런 발언을 했다가 사퇴했다. 천주교가 주민들을 세뇌시켰다고 했을 때, 그 때 주민들의 반응은 '우리가 세뇌될 사람들이냐' '우리를 모독하는 것이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주체적으로 살고 있고, 당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누가 세뇌시킨 것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주민들에 대해 '종북'이니 '좌파'니 '세뇌'니 하는 것은 주민들을 로봇으로 만든 것이며, 주민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외부세력 주장은 여론조작을 위한 프레임이다."

- 주민들은 움막농성하며 구덩이까지 파놓고 있는데.
"우려된다. 천주교 신부로서, 모든 것에 앞서는 원천적인 가치는 생명이다. 그 어떤 것도 생명을 대신할 수 없다. 생명이 우선이다. 지금 어르신들한테서 '제2의 이치우(2012년 1월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분신자살)' 어르신 같은 일이 생겨나서는 안 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어르신들한테 말씀을 드리는데, 다시 그런 일이 생기는 순간 끝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구덩이를 파놓은 것은 그만큼 절박감을 표현한 방식이다. 안타까우면서도 저희들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대책위가 명령을 내리고 수행하도록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 더 이상 주민들이 비관하지 않도록 우리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 언론 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언론사마다 나름대로 입장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현장에 온 취재기자의 느낌이 독자나 시청자들한테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기계적인 중립이라도 지켜야 한다. 우리한테 무조건 잘 써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정부와 한전의 편에 선 기사를 봤을 때,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언론은 현장을 보지 않았거나, 아니면 무슨 의도가 있다고 본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그 기사를 쓴 기자의 인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고, 측은함도 들더라."


태그:#밀양 송전탑, #김준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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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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