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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교육 장소. 주로 강연을 통해 안보의식(?)을 증진시킨다.
▲ 나의 첫 민방위 교육 민방위 교육 장소. 주로 강연을 통해 안보의식(?)을 증진시킨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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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 나 이정혁은 2013년 10월 21일 국가로부터 민방위 교육훈련을 소집받고, 이에 충실히 임하여 임무완수 하였으며, 느낀 점이 충만하여 교육 내용 및 감상을 보고드리는 바입니다.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 낮 시간에 교육을 배치하시어, 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신 깊은 배려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일부 피곤한 대원들의 취침도 눈감아 주신 관계자 여러분들의 넓은 아량에도 무한 감동 받았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매 수업 시간, 현장에서 달아올랐던 '뜨거운 안보의 열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제1교시] 한국전쟁과 낙동강 방어선 전투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한국전쟁을 경험하시고, 20대 중반의 나이에 월남전에 참전하시어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신 안보 교수님의 현장감 넘치는 전쟁 묘사는 총알이 귀밑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 생생하였습니다.

더구나 전시작전권 반환을 연기해야 하는 이유로 말씀해주신, 비대칭무기(북한의 핵무기)에 관한 이론은 너무도 탁월한 안목이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우리의 우방인 미국의 존재감과 필요성을 확연히 느끼게 했습니다. 미국을 빼놓고서 어찌 대한민국의 안보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에 비하면 턱없이 열세인 우리의 국방력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말씀 중간에 "4대강 사업에 쏟아 부은 22조 원으로 우리의 국방력을 증진시켰다면, 연평해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교수님의 식견은 국방부 관계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주옥같은 논리였다고 판단됩니다. 

[제2교시] 화생방 상황 발생 시 행동요령

매우 짧은 시간 동안 화생방의 개념과 대처법의 핵심만 찍어서 알려주신 강사님의 명강의는 제게 방독면 지름신을 내려주시었습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이 급박한 상황을 알리어 방독면 공동구매를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사명감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무엇보다 2교시 강의에서 저의 안보의식을 활활 타오르게 만든 건, 2004년 미 국방부에서 기밀문서로 공개한 한반도 핵전쟁 시뮬레이션 동영상이었습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 본부·한미연합사가 위치한 용산에 2차 대전을 종결지었던 히로시마 원자 폭탄 규모의 핵폭탄이 투하되는 것을 가정한 동영상에는 한화63시티(옛 63빌딩)가 종잇장처럼 찢겨나가는 장면, 투하지점 반경 1.8킬로미터가 쑥대밭이 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해설자의 말처럼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어릴 적 북한이 금강산댐을 이용한 수공으로 서울을 물바다를 만든다는 가상의 장면을 TV에서 시청하고는 밤새 잠 못 이루다가 저금통을 턴 돈 3000원을 손에 쥐고 방송국에 평화의 댐 성금을 전달하러 가던 반공 소년이 잠시 오버랩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근데 용산의 땅값은 왜 오를까'라는 경박한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하였지만, 120만명의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보는 순간, 저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안보의식 때문에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제3교시] 국가와 안보적 대응

대원들은 민방위 교육 참석표에 매 시간 도장을 받아야 한다.
 대원들은 민방위 교육 참석표에 매 시간 도장을 받아야 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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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는 알 길이 없으나 전직 북파공작원의 경험이 있으신 듯한, 소위로 임관하여 3년 만에 대위로 전역하신 세 번째 강사님에게서 물씬 풍기는 국토방위 의지는 거대한 아우라를 형성하였습니다. 전체 교육 중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시간이었던 이유는 북한군의 점령 작전 시나리오에 대한 상세한 설명 때문이었습니다.

강사님의 말씀처럼 북한이 전면전을 단행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입니다(물론 핵무기를 10개쯤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직 작전 담당 장교님의 말씀을 100% 신뢰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썼을 때 미국의 보복이 따를 것이기 때문에 전면전 양상은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명확하다고 보여집니다.

강사님은 이어 북한이 점령 작전을 통해 미국과 협상을 추진할 것이며, 그에 따른 몇 가지 상황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서해 5도의 점령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로 인천 국제공항 점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세 번째 상황은 '내가 사는 아파트의 점령'이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모골이 송연해지고 등줄기를 땀으로 적시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자칫 주어의 잘못된 선택으로 내란음모의 누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강사님은 냉정함을 잃지 않고, 북한군의 시각에서 차근차근 점령작전을 풀어 설명해주셨습니다. 그의 애국정신과 전문적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습니다. 더구나, 이런 점령 작전이 40명 내외의 북한군 게릴라 부대에 의해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은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북한이 관리사무소를 점령한 뒤 주민들에게 '탁구장으로 모여 달라'는 방송을 하고, 모여든 주민들을 인질로 삼는다는 구체적 설정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여 '내 가족은 내가 지키겠다'는 민방위의 기본정신을 새삼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제4교시] 야외수업으로 행해진 완강기 사용법

용감한 시민 대원들이 자진하여 완강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완강기 시범 용감한 시민 대원들이 자진하여 완강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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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에 대한 이론적 무장만으로도 충분히 알찬 교육 내용이었음에도, 야외에 설치된 완강기의 사용방법에 대해서 직접 설명해주시고 시범을 보여주신 민방위 교육 관계자분들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저도 난생 처음 완강기 사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찍 보내준다"는 조교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어 시범을 보여준 두 분의 시민 대원들께도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상으로 저의 생애 첫 민방위 교육 훈련에 대한 보고서를 마칩니다. 교육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 민방위의 정신을 곱씹을 생각으로 민방위 누리집에 접속해보았습니다. 민방위의 정의와 본질에 대해서 아로새겨 보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 민방위의 정의 : 민방위 사태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의 지도하에 주민이 수행하여야 할 방공·응급적인 방재·구조·복구 및 군사작전상 필요한 노력 자원 등의 모든 자위적 활동.

▲ 민방위의 본질 : ① 주민 자위활동 - 순수민간인(주민)으로 민방위대 조직, 주민의 생명·재산보호 목표 ② 인도적 활동 - 전쟁, 재해·재난으로 부터 주민의 생명, 재산보호활동, 국제적 민방위대원의 활동 협약 ③ 비군사적 활동 - 정부지도하의 비군사적 활동, 비전투 장비·기구 사용.

그런데, 강사님들께 질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결핍되어 있던 안보의식은 충만해졌는데, 북한이 언제 침략할지 불안해서 도저히 두 발 뻗고 잠을 잘 수가 없는데 이를 어찌할까요? 방독면 사놓고, 관리사무소 전화 받지 말고, 우리의 영원한 우방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평상시처럼 살아가기에 북한은 너무 위협적인 존재 아닌가요?

여러 강사님들의 가르침에 힘입어 오늘부터 열심히 삽질해서 참호를 하나 파두어야겠습니다. 대체 이 민방위 교육은 안보 교육인지, 불안 조장 시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려.


태그:#민방위 교육, #화생방 훈련, #완강기, #핵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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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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