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착한여행과 함께 라오스 산간학교에 햇빛발전을 지원하는 공동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2009년부터 꾸준히 라오스 산간학교에 태양광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소수민족이 사는 메콩강 유역 산간 학교 학생들은 하루에 10km이상 걸어서 학교에 가기도 합니다. 이들 산간학교 기숙사에 지원되는 태양광 시스템은 아이들이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라오스 산간학교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햇볕발전 이야기에 오마이뉴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어린 시절 작은 일에도 박장대소를 하며 사춘기를 함께 지낸 친구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는 멀어진 궤적만큼 공감대를 찾기 어려워진다. 예전에 하지 않던 정치에 대한 감정 섞인 자기표현과 이로 인한 어색한 침묵의 시간은 결국 평화로운 관계유지를 위해 정치 혹은 체제에 대한 비판과 같은 민감한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로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친구들과 오랜 인연을 지속하고 있고 가끔은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힌다. 그리고 최근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라오스 산간마을에 태양광을 지원하는 나의 일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다 좋은데, 도대체 우리도 먹기 살기 힘든데 왜 내 세금으로 남의 나라를 도와야하는 거지?"라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내가 낸 세금이니까 그 혜택은 나에게만 돌아가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 본인이 내는 세금은 다 본인을 위해 혹은 본인 주변을 위해 제대로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마음속으로 수많은 질문들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친구를 쳐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공적개발원조(ODA)라는 단어는 일반인들에게 굉장히 생소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흔히 TV를 통해 보는 아프리카의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돕는 활동에 1000원, 2000원을 자발적으로 기부한 경험은 있지만 국가적으로 저개발 국가를 돕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국역시 한국전쟁이후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과 그것이 순수한 호혜가 아닌 전쟁을 막 치룬 나라에게 빚을 지운일이라는 사실은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먼 이야기이다. 이미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후의 경험만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저개발국가, 최빈국의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지원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이에 대한 동의가 필요하다.
이젠 개발원조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간 우리가 ODA라고 부르는 공적개발원조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사회발전과 복지 증진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목적은 UN의 새천년개발목표에 있는 절대빈곤의 감소, 초등교육 보급, 아동사망률 감소, AIDS,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의 예방 및 퇴치 등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인 지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구촌 이웃의 어려운 삶을 개선하기 위한 도움정도로 읽혀서는 곤란하다.
현재 저개발국가, 특히 지원이 필요한 최빈국의 경우 대부분 오랜 식민지의 경험과 선진국들의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본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선진국이 지금의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의 식민지의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한 수탈과 그들의 야욕으로 인해 반발한 전쟁 덕분이다. 게다가 선진국에 의해 만들어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개도국은 여전히 그들의 자원을 값싸게 넘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ODA를 이야기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마땅히 갚아야 할 부채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ODA를 선진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도로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한국은 그러면 ODA를 어떻게 실행하고 있을까? 한국은 오랜 원조 수원국의 지위를 벗고 지원을 해주는 공여국으로 전환한 현재까지 유일한 국가이다. 물론 그 금액은 매우 미미하여 국민총소득(GNI)대비 0.14% 수준으로 OECD 개발원조위원회 24개국 중 22위로 뒤에서 세 번째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자신들의 지위가 선진국의 지위와 다르다는 이유를 들며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ODA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평가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이 선진국과 다른 경제성장의 과정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그 경제성장의 밑바탕에는 개도국의 값싼 자원이 있다. 한국 역시 자신들의 부채를 갚기 위한 마땅한 지원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한국이 ODA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ODA는 유상과 무상으로 나뉜다. 유상은 장기 저리로 해외에 차관을 주는 것이고, 무상은 말 그대로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지원하는 ODA의 유상원조비율은 약 40%에 육박한다. 게다가 고채무 빈곤국에 대한 유상원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18%로 매우 높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게 돈을 빌려주고 빚을 지우는 꼴이다. 물론 모든 ODA를 무상으로 해야하느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적어도 가장 못사는 나라에게 굳이 돈을 빌려쓰도록 하는 행태는 TV 광고에 나오는 대출업자 '무대리'와 뭐가 다를까?
최빈국에 빚을 지우는 행태 뿐 아니라, 한국의 ODA는 교묘하게 한국의 경제성장의 입구전략으로 쓰인다. 한국 기업이 ODA를 진행하기 위해 현지에 진출하면서 자연스럽게 개도국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개도국을 돕겠다는 취지로 지원을 하지만 그 지원이 한국 기업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선진국이 개발 중일 때는 선진국의 시장을 위해 개도국과 저개발국가의 자원을 이용했고, 선진국의 개발이 포화상태에 이르러서는 선진국 시장의 판매처로 개도국을 이용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메콩워치(Mekong Watch)의 활동가 토시씨의 말이 떠오른다.
"일본은 태국에 많은 ODA를 지원했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우호적이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태국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비판을 하기 시작했어요. ODA라고 하면서 결국 일본 기업의 배만 불렸다는 거였죠. 태국을 돕는다며 저리로 지원된 돈들이 대부분 태국 개발사업에 뛰어든 일본 기업으로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그 돈은 결국 태국 국민들이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이 일은 커져서 태국사람들의 일본 제품에 대한 거부운동으로 이어졌어요. 나는 한국이 일본이 밟았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래요." 사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ODA가 순수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일수도 있다. 분명 그 안에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ODA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다면 우리도 일본이 받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나는 10월에 중순쯤 다시 라오스로 왔다. ODA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작은 희망을 가지고 산간 오지에 태양광을 지원하러 다시 라오스로 온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접근을 해도 그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듣고 그들과 소통해하며 그들의 삶이 더 나아지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부채를 갚아가는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