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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업 이피쿱', 이름만으로도 예사로운 곳이 아니다. 이피쿱은 2013년 8월 사업자등록증을 받은, 커피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직원협동조합이다. 커피노동자들이란 커피콩을 볶는 로스터(Roaster),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Barista) 등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이들을 칭한다. 현재 5명의 조합원이 함께하고 있다. 커피노동자 협동조합이니 카페를 함께 운영하나 보다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의 생각과 활동은 단지 커피 판매와 카페 운영에 머물지 않는다.

적정기업 이피쿱의 목표는 식품정의의 관점에서 조화로운 삶을 모색하는 데에 있다.
▲ 적정기업 이피쿱의 목표 적정기업 이피쿱의 목표는 식품정의의 관점에서 조화로운 삶을 모색하는 데에 있다.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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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온상, 카페를 부활시키자

원래 서양에서 커피하우스(카페)는 교류와 생산의 공간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온갖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새로운 철학이 탄생하고 담론이 만들어졌다. 17세기 후반 영국의 왕 찰스 2세는 '커피하우스가 혁명의 온상'이라는 정치적 이유를 들어 커피하우스 폐쇄령을 포고했으며, 그 후 찰스 왕의 우려대로 18세기 프랑스 혁명의 기운은 파리의 카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후 한국사회에 들어온 카페는 커피와 카페가 가지고 있는 문화는 쏙 빠진 채 상업의 얼굴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피쿱은 커피가 가진 문화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고 김경 조합원은 설명한다.

"이피쿱은 문화를 가진 카페, 지역에서 관계를 맺는 카페를 추구한다. 커피란 결국 관계의 확장, 문화의 확산이다. 커피 장사는 커피나 커피기계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동네 카페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만남과 대화는 커피의 사회적 역할

이런 관점에서 이피쿱은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하고자 한다고 김이준수 이사장은 설명했다.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은 만나자, 만나서 이야기하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커피가 가진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행사를 주관하고 주최하는 일도 이러한 연장선이다."

이피쿱은 협동조합의 현장을 듣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강연 및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이피쿱의 맛콘서트 이피쿱은 협동조합의 현장을 듣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강연 및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이피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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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공방인 수운잡방. (마포구 서교동 458-10번지 현주오피스텔 지하 1층)
▲ 수운잡방 커피공방인 수운잡방. (마포구 서교동 458-10번지 현주오피스텔 지하 1층)
ⓒ 이피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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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콘서트 '협동조합 도시 서울을 그리다'는 이피쿱의 대표적 행사이다. 이 행사는 올해 5월 30일부터 10월 10일까지, 격주 목요일마다, 총 10회가 진행되었으며 1000여명의 시민들이 다녀갔다. 처음 협동조합 콘서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서울시에 제안한 이가 김이준수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같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만 어렵고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서로 이야기하는 가운데 협동조합끼리 연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피쿱은 최근 막을 내린 협동조합 콘서트에 이어 '마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라는 마을기업과 마을공동체를 주제로 한 행사를 또 다시 개최하고 있다. 특히 최근 마을기업의 형태로 마을카페가 생겨나고 있는 것에 주목하며, 그들과 함께 커피와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확산시켜갈 수 있도록 마을카페 네트워크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커피가 가진 문화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고민한다는 이피쿱의 철학은 수운잡방(需雲雜房)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들의 커피공방에서도 묻어난다. 수운잡방이란 안동김씨 집안에서 발간한 조선시대 최초의 요리서라고 한다. 풍류와 격조를 담은 음식을 다양한 방법으로 만든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피쿱은 수운잡방을 통해서 다양한 강연, 공연 등의 문화행사를 연다. 음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하기 위한 맛 콘서트, 오페라나 영화를 함께 나누는 시간, 조금씩 음식을 가져와 나눠먹는 파티 등. 또한 작업공간이나 회의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공간을 개방하여 공유한다. 공간은 누가 만들었던가에 상관없이 탄생하는 순간 사회적 자원이라는 것이 이피쿱의 생각이다.

문화는 결국 건강하고 적정한 노동으로부터

커피 그리고 나아가 먹거리에 대한 고민에 더해 이피쿱은 주방에서의 노동에도 주목한다. 김경 조합원은 "카페에 가보면 커피에 대한 소개는 많다. 우리는 어떤 커피를 사용하고, 어떻게 로스팅을 하고, 어떤 기기를 이용해 추출한다 등 많은 소개가 있다. 하지만 커피 외의 재료인 캐러멜, 바닐라, 설탕 등에 대해서 말하는 카페는 없다. 왜 그럴까? 왜 커피 외의 재료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을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재료부터 요리 및 조리까지 스스로 자신의 노동을 통해 만들었을 때 비로소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고 답했다. 캐러맬이나 바닐라 등의 재료는 이미 반제품 상태로 만들어진 것을 사와서 사용할 때에는 커피노동자의 노동이 들어갈 여지가 없으며, 따라서 자긍심을 가질 이유도 없게 된다.

그래서 이피쿱은 2010년부터 캐러맬, 바닐라 등의 재료도 모두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유자, 매실 등의 과일은 지역농가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여 맞춤형 재배와 구매를 하고 있다. 이피쿱은 주방 안에서 '요리' 혹은 '조리'라 부를 수 있는 노동이 많이 생길수록, 노동이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많은 카페들이 바리스타들에게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간 카페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게 '요리'나 '조리'가 아닌 단순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각 매장의 주방에서 요리가 이루어지면서 각 매장만의 레시피가 발명될 것이고, 이는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특성을 반영한 독특한 커피와 음식을 낳을 수 있다. 현재 이렇게 이피쿱의 철학을 반영하여 운영되는 카페가 몇 곳 있는데, 그 중에서도 부천문화재단 앞의 카페 '내림'이 이를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고 한다.

철학과 방향 제시, 1세대 협동조합의 역할

이피쿱은 협동조합 자체와 그 운영방식에 대한 고민도 깊어 보였다. 이미 2010년부터 함께 모여서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고민하고 공부를 꾸준히 해왔기에 얻을 수 있었던 고민들로 보인다. 김경 조합원과 김이준수 이사장은 지금 한국의 협동조합은 1세대인데, "1세대 협동조합이 해야 할 기본의무는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시스템이라고 해서 일반 비즈니스 모델 컨설턴트들이 강조하는 회계나 재무 시스템, 사업계획 등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특히 요즘 경영전략, 마케팅, 사업계획 등의 외형적이고 사업적인 측면의 시스템을 강조하는 교육이 많은데, 이런 거창한 틀은 대부분의 작은 협동조합에는 잘 맞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런 것을 갖추는데 과도한 투자를 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비용 낭비를 초래할 뿐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지금 협동조합들이 준비할 것은 협동조합의 철학과 방향을 잘 담은 운영원리라는 것이다. 이를 초기부터 잘 마련해두어야 이후 새로운 조합원이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조직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피쿱은 현재 협동조합기본법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법에서는 조합원이 탈퇴할 때, 출자금과 함께 협동조합의 자산에서 자신의 몫을 찾아갈 수 있다. 지분환급청구권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5명의 조합원이 출자금을 10만 원씩 내어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시간이 흘러 출자금을 제외한 협동조합의 자산이 100만 원으로 축적되었다. 그런데 이 중 한 조합원이 탈퇴를 할 경우 출자금 10만 원에, 자산 100만 원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20만 원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김경 조합원은 "이런 방식이라면 협동조합이 주식회사나 일반 합작회사와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 협동조합의 자산은 공동의 자산이자 협동조합 자체의 자산이다, 그 자산이 형성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협동조합 외부의 사회적 요인들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자산은 조합원 개인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협동조합이 지속가능성을 갖기 위해서는 자체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렇게 탈퇴할 때마다 자산을 가지고 나가게 되면 협동조합의 역량을 키울 수가 없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이피쿱은 자체규약으로 조합을 탈퇴해도 자산을 가지고 나갈 수 없도록 정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마음을 꽉 채우는 질문

김이준수 이사장은 "협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사회는 이윤추구가 최고의 목표이다, 그래서 적정함을 넘어서 탐욕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런 삶이 아니라 적당한 노동, 적당한 이윤, 적당한 즐거움, 적당한 시행착오를 추구하며, 그런 가운데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고자 한다"고 이야기한다.

김경 조합원 역시 "어떠한 삶을 살든 불안함은 존재한다, 지금 이피쿱을 떠나 다른 일을 하면 서너배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해도 인생의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불안할 거라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는 길을 택하고 싶다, 이 길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이피쿱이 하는 다양한 실험들이 우리 사회에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이피쿱 조합원들의 임금은 아직 법정최저임금 수준이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먹고 살기 힘든 임금 수준이다. 하지만 돈이 부족해 생길 수 있는 빈 자리에는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라는, 마음을 꽉 채우는 질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수연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이수연 연구원은 팟캐스트 공존공생을 통해 만나본 협동조합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공존공생, #이피쿱, #협동조합, #새사연,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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