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이 외진 곳에 떨어져 있고, 별로 주목받지 않은 소국이고, 현대문명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부탄 사람들이 노력을 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부탄이 계속 그렇게 남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는 부탄 정부에서 '매주 화요일을 차 없는 날로 하려 했으나 비즈니스 종사자들의 반대로 무산된 것'을 그 예로 들었다.
얼마 전 내한한, '종사르 잠양 켄체'가 인터뷰에서 한 이 말은 내겐 좀 의외였다. 부탄 출신이며 7세 때 티베트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잠양 켄체 왕포의 환생자로 인정 받은 그는 종사르 승원과 대학의 학장으로서 1600여명의 승려들을 이끈다. 1999년 월드컵 축구에 빠진 동자승들의 이야기를 그린 <컵>등을 만든 영화감독이기도 한 그가 단정적으로 그렇게 한 말이라서 내겐 많은 생각의 여지를 주었다.
오래 전에 읽은 노르베리 호지 여사의 <오래된 미래>는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책의 배경인 라다크는 내가 가서 직접 확인 해볼 수 없는 먼 나라여서 흥미를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며 소식을 듣고 있었다.
한데 최근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수도 '레'가 관광지구로 정해지면서 호지 여사가 염려했던 일들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외지에서 온 자본가들에 의해 독점된 상권으로 인해 관광 철이 지나면 텅 빈 도시에 현지인들만 추운 겨울을 나는 휑한 곳이 되었고 공동체를 이루며 지속 가능했던 아름다운 삶의 전통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이 중지를 모아 노력하고 나름의 성과도 거둔다고 들어서는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부탄이라는 나라가 GNH 개념을 부르짖은 이후 세계의 눈이 부탄에 쏠리기 시작 했고 부탄은 그 예전의 라다크 모습을 한 채로 내 시야에 들어왔다. "국민총행복지수 (GNH, Gross National Happiness)를 고안해낸 나라."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샹그릴라" 등으로 알려진 그 나라가 참으로 궁금했다.
"정말 그렇게 멋질까?"의 관점이 아니라 "이들은 아마도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서구식 개발과 자본주의의 폐해'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걸 극복해낼까?' 와 '그게 과연 가능할까?'"에 관심이 갔다. 이들은 라다크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인가? 다른 변수는?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올해 2월에 내게 부탄을 여행 할 기회가 찾아왔다. 밖에 알려진 것이 사실일지 지금의 부탄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정부가 지키려고 하는 고유의 전통과 자연 환경의 가치를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실제로 그곳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어떤지 등등을 직접 보고 싶었다.
여행 후에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정작 그곳 출신인 그가 그렇게 단정적으로 하는 말이니 내겐 충격일 수밖에. 사실, 나 역시 그쪽으로 조심스레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일단, 인도를 거쳐 입국한 부탄은 깨끗했다. 단지 부탄 전통문양으로 장식된 커다란 문 하나를 통과해서 들어섰을 뿐인데, 거리도 건물도 사람들의 태도마저도 확연히 인도와는 달랐다. 2011년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144위 인도의 국민소득 1475불, 139위 부탄 2088불이라고 나와 있는데 내가 느끼는 차이는 극빈층과 중산층의 차이만큼이나 심했다.
일단 구걸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만나는 사람들도 깔끔하며 전체적인 분위기가 깨끗하고 넉넉해보였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산다는 의미로 난 받아들였다.
부탄의 일인당 국민 소득은 2011년 통계 기준으로 보면 2천불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2만 불 내외라는 것을 감안하면 숫자상으로 우리는 그들보다 10배는 부자인 셈인데, 2011년 영국에서 발표한 국민행복지수에서 부탄은 1등을 했고 우리는 62등을 했다. 이론적으로는 우리보다 훨씬 가난해야할 나라인데 전혀 다른 풍경이 보였다. 실제 부탄 어느 곳에서도 커다란 빈부격차를 느낄 수 없었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제도가 있었고 도시 어느 곳에서도 부랑민이나 빈민촌을 볼 수 없었다.
부탄의 농촌집을 방문 했다. 매일 샤워를 하거나, 고급 가재도구, 최신 가전제품이 있진 않아도 그들이 가난하기는커녕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몇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전통양식의 훌륭한 가옥, 이웃지간에 공동체로 엮인 따스함,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혜로운 생활양식과 문화 그리고 뭇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히말라야에서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맑은 강을 끼고 형성된 나직한 마을도 아름다웠다.
일정 중에 시골마을 음식점에 들러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음식점 창밖으로는 멀리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이 보이고, 우리네 농촌과 비슷한 낮은 산자락 끝에 자리한 작고 예쁜 마을과 그 앞에 펼쳐진 유채밭이 보였다. 식후에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앉아 있다가 한순간 나도 여기서 머물러 살고 싶다는 생각이 울컥 들었다. 맑은 햇살과 깨끗한 공기, 순하고 다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냥 나 어릴 적처럼 살아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평안함 이외에 어떤 부나 명예, 기타의 어떤 것도 다 부질없어 보였다.
그러나 여행하며 바라본 부탄은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그 맑은 산하에, 특히 대도시일수록 많이 나뒹구는 플라스틱, 비닐류의 쓰레기더미였다. 자동차 연료로 경유를 주로 사용해서인지 도심에선 늘어나는 차량 때문에 매연이 만만치 않았고, 이미 젊은이들은 서구의 것들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10여년 전에야 들어온 위성방송 티비를 통해 접하는 서구 자본주의의 풍족함(?)을 부러워하고 정부에서 부르짖는 GNH보다는 현대적(?)이며 안락한 생활을 더 동경하고 있었다. 이미 수도에 인구가 집중한지 수년이 되었고 그에 맞춰 건설 붐이 일어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나 상가 등의 건물이 들어서서 농지를 침식해가고 있었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이곳에도 위성방송을 타고 한류가 상륙해서 일부 10대들은 한류스타의 옷과 머리 스타일을 따라가느라 공을 들인다고 말했다. 우리 가이드 역시그런 아들이 있으며, 아내와 둘이 벌어야 치솟는 아파트 임대료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열심히 GNH홍보를 하고 있는 그도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수입을 얻기 바라고 있었다. 정부가 무분별한 서구 문명의 오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관광객의 수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그 종사르 학장의 말처럼 부탄은 정말 독자적인 모습을 유지하며 바람직한 발전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정말 인류의 '오래된 미래' 원형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었인지 아는 현명한 국왕과 정부의 피나는 노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문명에 노출된 젊은 세대를 어떻게 제대로 이끌어서 자본주의의 폐해에 빠지지 않고 GNH 지수를 지금처럼 지켜나갈 것인지 난 궁금하다.
이제 기억으로만 남은 아름답고 먼 나라 '부탄'을 생각하며 난 요즘 엉뚱한 걱정을 하고 있다. 마치 생텍쥐베리가 어린왕자가 가고난 후 밤하늘을 보며 "어린왕자의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혹시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리면 어쩌나?"하며 늘 걱정하듯이.
"그 나라 사람들마저 상위 1%와 하위99%의 나라로 나뉘어 돈과 권력 앞에서 다들 고개를 숙이게 되면 어떡하지? 행복의 크기보다 물질의 크기를 앞세우는 나라가되면 ? 친구나 이웃보다 돈을 더 좋아하게 된다면? 그 맑은 공기와 물이 오염된다면? GNH보다 GDP를 더 대단하게 여기는 나라가 된다면?"
먼 훗날, 내가 다시 부탄을 방문했을 때도 여전히 '히말라야의 샹그릴라',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슬기로운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기를, 첫눈이 오는 날이면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고 온 국민이 축제를 즐기는 낭만적인 나라로 여전히 남아있어주기를 난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