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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육법 반대' 사전 집회를 위해 세비아 광장에 모인 시민들.
 '새 교육법 반대' 사전 집회를 위해 세비아 광장에 모인 시민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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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낮 12시(현지시각) 무렵부터 스페인 세비야의 한 광장에는 초록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하는 궂은 날씨였지만, 광장은 사람들도 채워지고 있었다. 이들이 입은 티셔츠에는 "모두를 위한, 모두의 공교육"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준비된 플래카드를 들고 이미 무리를 지어 행진해 오는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부 등 다양한 얼굴들이 보였다. 취재 준비를 하고 있는 주요 언론 카메라들과 리포터들의 움직임도 분주하고, 집회참가자들이 준비해온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손길도 바빴다.

오후 3시정도까지 진행된 이 사전 집회는 이날 오후 6시에 진행되는 본 집회에 앞서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공개 퍼포먼스, 알림자보 쓰기 등을 통해 이날의 이슈를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진행됐다.

'새 교육법'이 도대체 뭐기에

대학교 학생들의 교육법 반대 퍼포먼스. 학생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교육계급화를 표현하고 있다.
 대학교 학생들의 교육법 반대 퍼포먼스. 학생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교육계급화를 표현하고 있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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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들이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은 바로 10월 10일 의회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국민당의 몰표로 통과된 새 교육법 (LOMCE- Ley Orgánica para la Mejora de la Calidad Educativa: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법)를 반대하는 교육계 총파업이 있었던 날이었다. 이날 스페인 전역에서 학교들의 휴업이 이루어졌으며, 주요도시에서는 새 교육법에 반대하는 학생과 교사, 그리고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 나왔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등의 주요도시에서는 수십만명의 인파가 모였다.

이들이 이토록 반대하는 LOMCE 혹은 Ley WERT(교육부 장관의 이름 붙여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라고 불리는 이 새 교육법의 문제는 무엇일까?

이 법은 교육예산 삭감, 교사 인력 축소, 이로 인한 학급 학생 증가, 등록금 인상, 장학금 축소 등이 핵심 내용이다. 이날 오후 6시 안달루시아 의회 앞에서 시작되는 본 집회에 참석하런 온 라우라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 새 교육법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라우라는 현재 예술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고, 그녀의 친구들은 대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중에는 막 고등과정을 졸업하고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도 있었다.

인터뷰에 함께한 학생들. 왼쪽부터 다니,하이메,이사, 라우라,로시오, 아나
 인터뷰에 함께한 학생들. 왼쪽부터 다니,하이메,이사, 라우라,로시오, 아나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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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교육법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라우라 : "불평등하다. 엘리트, 돈 많은 사람을 위한 법이다"

- 어떤 점에서?
아나: "예를 들어 사립학교 장려 정책, 대학 유료 전형시험, 장학금 혜택을 위한 기본점수 상향조정 등이 그렇다. 대부분의 조항들이 그렇다."

이사: "지금까지는 무료 학력평가 시험을 통해 원하는 대학과 과에 지원하는 형태였는데, 이제는 이 시험에 더해 각 대학이 유료 전형을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 장학금 혜택을 위한 기본 점수 상향조정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
다니 : "이는 사립학교 장려정책과 맞물려 있다. 보통 장학금을 신청하기 위해서 받아야하는 점수가 있는데 지금까지는 5.5점이었다. 하지만 이를 6- 6.5로 올렸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사립학교에 훨씬 유리한 제도다. 사립학교는 점수를 높게 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 왜냐하면 자체 내에서 점수 조정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돈내고 다니는 사립학교 학생들에게 장학혜택을 더 많이 주겠다는 이야기다."

라우라 : "이미 유리한 조건에 놓은 학생들이 있는데, 나머지들에게 "너희가 노력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던 장학제도가 전체 교육예산 삭감과 함께 작년부터 많이 줄어든 상태인데, 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는 기회조차 일반 공교육 안에서 점점 축소시키는 것은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일이다."

로시오: "나는 내년에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과정 이수를 하고 있는데 이전에는 이 과정을 이수하면 시험 없이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 교육법으로 인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한 상태다."

아나 : "새 교육법은 대학제도 개편을 통해 경쟁적 교육 분위기 조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과연 교육이 경쟁적이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경쟁력 있는 인재를 만드는 게 교육의 질을 높이는 일이라고? 그 발상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다니 : "그러면서 공교육 안에 종교수업을 확대 의무화하는 전통적인 조항을 강화시켜 놓았다. 반면 예체능 등의 수업을 축소시키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과연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있을까?"

"모두를 위한, 모두의 공교육"

집회현장으로 가는 두 학생. 몸 피켓에 "제발!"이라고 적혀 있다.
 집회현장으로 가는 두 학생. 몸 피켓에 "제발!"이라고 적혀 있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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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들을 데리고 집회에 참여한 교사부부
 아기들을 데리고 집회에 참여한 교사부부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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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0월부터 대학원수업 실습을 위해 한 고등학교에 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분위기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무실 풍경이나 아이들과 교사들이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세계 어디나 교실의 모습은 이렇게 닮았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학교에서 미술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 '수사나' 역시 이번 새 교육법 공표에 대해 "있는 사람을 위한 교육, 학교를 전문 인력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전락하게 하는 법"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날 집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한 교사부부는 "아이들이 있을 교실 안이 평등하고, 자유롭고,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교사 부부의 바람이 스페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교육의 모습 아닐까?

"모두를 위한, 모두의 공교육"이 현실이 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태그:#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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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예술치료, 스페인 문화&언어, 글쓰기로 삶의 형태를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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