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마이뉴스>에 2011년 12월 시민기자로 등록했다. 그때부터 <오마이뉴스>로부터 메일이 자주 온다. 대부분 무슨 특강을 한다거나 공모전에 응모하라는 행사 알림 메일이다. 아주 가끔 내 기사를 보고 모 방송국에서 쪽지가 오기도 한다. 헌데 이번에 눈에 띈 메일은 오연호 대표와 1:1 가을데이트를 한다는 것이었다. 매번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던 <오마이뉴스>에서 온 메일을 이번에는 꼼꼼히 살펴보고, 마침내 맞는 시간이 있길래 신청했다.
드디어 10월 23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마당집'으로 갔다. 데이트 1주일 전에 주변 지인에게 자랑했더니 "네가 만나기로 한 그 시간은 오 대표가 무척 피곤한 시간일 테니 위로나 많이 해주고 와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생각나서 조그만 초콜릿도 한 개 준비했다. 약도에 그려진 대로 망원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3~4분 정도 가니 입구에 '오연호와의 가을 데이트'라는 알림판이 쓰여 있었다. 나중에 돈 벌면(?) 꼭 살고 싶은 마당이 넓은 예쁜 한옥집이었다.
오 대표는 앉자마자 물었다.
"여기 신청하면서 무슨 내용으로 대화하고 싶다고 썼습니까?" "사실 제가 신청란에 쓴 건 시민기자와 관련하여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와 시민기자 활동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오다가 바뀌었어요." "뭐로 바뀌었나요?" "제가 종종 듣는 말이 있는데 그게 뭣이냐 하면, 나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저보고 말투가 좀 공격적이라고 하거든요. 오늘도 카톡으로 친구와 대화를 했는데 그 말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이유가 뭘까, 하면서 오 대표님 만나면 물어볼 생각을 하면서 왔습니다." "아, 네에~ 그러셨군요. 얼마 전에 <오마이뉴스>에서 비폭력대화 강좌가 있었는데 그걸 들었으면 참 좋았을걸 그랬네요." "저도 그 광고를 보기는 했는데, 눈여겨 보지 않아 놓치고 말았네요. '비폭력 대화'라는 책은 봤는데 그걸 실제 생활에서 활용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그렇긴 하죠."대화는 그렇게 이어졌다. 오 대표는 곧, "골목 산책이나 하면서 얘기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청했다. "좋습니다!"라고 말하고서 일어나 서교동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을 데이트를 시작한 지 3일째, 그것도 저녁나절이 되어가니 지겨울만도 할 것이라 짐작한 나는 물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오 대표는 "아닙니다. 아주 많은 공부를 하고 있어요"라면서 경쾌하게 대답했다. 그 말은 얼굴에서도 다르지 않게 보였다. 오 대표를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나는 나름대로 상상을 했다. 그래도 진보 언론의 대표인데 좀 지적이지 않을까? 사려 깊고 온화할 거야. 질문하면 많은 얘기를 해주겠지, 라는 추측과 함께 약간의 기대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오 대표는 내가 상상한 것과 좀 달랐다. 우선, 외모가 너무 '수수'했다. 얼굴은 가을 타작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새카맣고 키도 크지 않았고 말투도 평범했다. 내가 청력이 좋지 않아 말이 빠르면 잘 못 알아 듣는데 오 대표는 말까지 빨랐다. 마치 옛날 동아리 선배를 만난 것처럼 친근함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내가 상상한 샤프한(?) 언론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골목 산책을 하면서 동네의 조그만 놀이터에 다다랐다. 맨손으로 하는 운동기구가 있었는데 거기에 매달려 시범까지 보여준다.
"운동 좋아하세요?" "네, 저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박상규 기자랑 저랑 누가 더 잘할 것처럼 보여요?"라는 뜬금없는 질문도 던졌다. 내가 박상규 기자를 민언련 글쓰기 강좌를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고 말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저야, 모르죠. 두 분이어서 축구 한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오 대표가 더 잘할 것 같다는 답을 듣고 싶었을까. 나이도 드신 분이 순수한 구석까지 있어 보인다. 마침 우리 옆에 있는 중학생을 불러 사진까지 찍어 달라고 거침없이 부탁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기자라서 그런가? 거침이 없군. 저런 건 나도 좀 배워야겠어.' 운동기구에 팔을 걸치고 나는 그걸 바라보며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버전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편하고 좋았다.
"가을 데이트는 누구 아이디어입니까?"
다시 서교동 마당집으로 왔다. "<오마이뉴스>에 특별히 바라는 점이 있느냐"고 해서 "시민기자들끼리 친목과 결속을 다지는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작년에 최규화 편집기자가 꾸렸던 '노동시민기자 모임'처럼 어떤 주제를 이슈화해서 집중할 수 있는 모임이 있다면 시민기자한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모임이 지속적이지 못해 아쉽지만 나는 그 모임을 통해서 글쓰기의 기초는 물론 시민기자 활동에 데뷔하기도 했으니까.
나는 궁금한 게 많았다.
"가을 데이트는 누구의 아이디어입니까?" 오 대표는 "제 아이디어예요. 저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획안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이라고 말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오 대표가 아닌 스태프의 발상인 줄 알았거든요. 어쨌든 이번 기획은 참 신선하고 좋은 기획이었습니다." 오 대표는 빙그레 웃었다.
사실, 이번 가을 데이트는 <오마이뉴스> 후원인들의 모임인 '10만인 클럽'을 위해 기획했다고 한다. 매번 유명 강사를 초청해 듣게 하는 강좌를 했는데 이번에는 "좀 더 색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 <오마이뉴스>에 큰 도움을 주는 10만인 클럽에 보답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나는 10만인 클럽 회원이 아니다. 초청 메일에 '10만인 클럽이 아닌 사람도 괜찮다'는 말을 보고 서슴없이 신청하게 되었다. 제일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고 했다. 오 대표도 역시 마음이 약해서 마지막에 그렇게 쓴 거 아니냐고 했더니 "하하" 하고 웃는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돈을 많이 주는 직장에 다닌 적이 없다. 대부분 재정이 열악한 사회단체였기 때문에 월 100만 원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오지랖인지 뭔지 몇몇 다른 단체에 자동이체로 후원금을 냈는데 최근에는 그것마저 끊었다. 정기적인 수입이 생기면 다시 내리라고 마음먹고서는. 그런데 지난주에 오연호 대표와의 가을 데이트를 하고 나서는 마음이 바뀌었다.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은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왜냐면 나도 이제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가끔은 원고료도 받고 좋은 기사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가을데이트를 통해서 마음이 약해졌다. 내가 본 오 대표는 충분히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자신까지 기자로 뛰면서 약 110명의 직원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만하면 가을데이트는 성공했고 나름대로 내 동정심(오 대표가 자존심 상할 수도 있겠지만)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월 1만 원은 술자리 한 번만 덜 가면 낼 수 있는 돈이기도 하니까. 올해는 유난히 가을을 타는 모양이다. 생전 안 그러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원수 같던 내 옆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살까를 두려워하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