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을 노래 마당에 오선지를 그리고 낙엽을 놓으며 가을 노래를 부른다. 여전히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살아가겠다는 의미다.
▲ 가을 노래 마당에 오선지를 그리고 낙엽을 놓으며 가을 노래를 부른다. 여전히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살아가겠다는 의미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흐린 가을 하늘엔 편지를 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듭니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는 길입니다. 마침, 가는 빗줄기가 가을의 정취를 더해 줍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가을을 좋아했는데, 올해는 그러지를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제 내 인생의 삶이 가을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을임에도 별것 없는 것 같은 삶의 열매 앞에서 헛헛한 것이지요.

그 헛헛함을 마당에 오선지를 그리며 달래봅니다. 오선지에 낙엽을 하나둘 올려놓으며 김광석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막상 편지를 쓸 사람이 없습니다. 친구에게 전화했습니다.

"너 혹시, 김○○라고 아니?"
"그래, 초등학교 동창이잖아. 나도 15년 전에 만났는데 그래도 상가건물도 하나 가지고 있던데."
"그래? 지난주에 나를 만나고 싶다고 우리 집에 왔었단다."
"어떻게 알고?"
"그건 나도 모르겠고, 아이들이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했는데 알려주지 않았다네. 행색이 말이 아니었나 봐. 이도 다 썩고, 냄새도 나고, 머리도 한참을 감지 않은 것 같더래."
"그렇구나, 조금 이상하긴 했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우리 나이가 그런 나이 아니냐? 자리를 잡았던지,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졌던지."
"이름은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얼굴은 기억이 안 나. 학교 다닐 때 별로 친하지도 않았거든."

아침을 먹으면서 나도 이젠 쉬고 싶다고 했더니 큰딸이 "그럼, 우린 어떻게 살아?"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직장생활을 통해 얻는 변변찮은 수입이라도 우리 가족에게는 소중한 것이었구나 싶습니다. 무엇을 해도 그만큼은 벌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가족들은 여전히 불안하구나 싶습니다. 인생의 가을을 살면서도 그다지 경제적으로 이뤄놓은 것이 없으니 그냥저냥 월급쟁이 생활이라도 감지덕지하며 살아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인생의 여름이라고 여겨지던 40대까지는 가장으로서 당연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면서 변변찮은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너무 낭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의 황혼기를 살아가시는 부모님께서 한해 다르게 쇠약해지시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느낀 탓도 있을 겁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가을이 무겁습니다

얼마 전부터 치매가 온 어머니는 꿈과 현실과 TV에서 흘러나오는 소식들을 혼동합니다. 나도 저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거기에 친구 소식까지 겹쳐지니 가을이 무겁습니다.

"너나 나나 그래도 가장의 역할을 잘하고 있잖니? 그럼 된 거야. 그것도 못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알았다. 조만간 만나서 밥이나 먹자. 혹시 김○○ 연락처 확인되면 알려주고."

어제만 같게 느껴지던 날들이 10년을 넘어 30년 이상 오래된 세월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라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묻습니다. 딱히 '잘 살았다'는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억울한 일은 나름 애써 동참하며 지켜온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일들을 다시 본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유신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새마을운동 깃발이 다시금 펄럭입니다.

상식과는 벗어난 일들이 일어나고, 권력을 등에 업은 이들은 뻔뻔하게도 자기들만이 이 나라를 수호하는 애국자라고 우깁니다. 재임 기간 후대에까지 고통을 줄 허튼짓을 한 전임 대통령과 거기에 협조한 간신배들은 여전히 큰소리칩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갑니다. 정치권력은 물론이고, 이 나라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대기업의 횡포, 권력에 야합하고 현세적인 이익을 쫓기에만 급급한 종교. 점점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한 번 경쟁의 대열에서 밀려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경쟁구도의 사회 등 생각만 해도 미칠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나를 35년 만에 찾아왔던 친구나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이런 미친 세상이 싫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살아가야겠습니다. 저 빈 마당에 오선지를 그리고, 낙엽을 올려놓으며 흥얼거리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인생#가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