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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버린 주산과 만년필을 주어 한국은행 시험을 치룬 필기구 고학생으로 신문배달을 해서 받은 돈으로 생활한 내가 쓰레기 통에서 주어다 쓴 주산과 만년필
남들이 버린 주산과 만년필을 주어 한국은행 시험을 치룬 필기구고학생으로 신문배달을 해서 받은 돈으로 생활한 내가 쓰레기 통에서 주어다 쓴 주산과 만년필 ⓒ 이월성

내 나이 5살 때 부모를, 중학교 졸업 때 나를 길러주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홀로 자랐다. 신문배달을 해 번 돈으로 납작 보리밥을 주식으로 소금을 반찬 삼아 끼니를 때우는 고학생이 됐다. 나는 1956년 고등학교 상과를 졸업했다. 당시 영양부족으로 제일 먼저 이가 말랑거렸다. 한국은행 입사시험을 보러가야 하는데 인천에서 서울 가는 직행 대동버스 차비 60원이 없어, 중학교 동창이었던 이석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이석이 어머니에게 "한국은행 입사시험을 보러갈 차비 60원만 도와 달라"고 구걸했다. 구걸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때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석이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상과 160명 중 2등 성적으로 한국은행 입사시험을 보러 간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부모도 없이 고학하는 녀석이 좋은 성적으로 시험을 보러간다는 말에 더욱 기뻐서 내손을 꼭 잡고 "장하기도 하지" 하시며 뜨거운 눈물까지 흘리셨다.

이석 어머니께서는 "서울 청파동에 이석이의 친척집이 있으니, 시험 전날 토요일 저녁에 이석이 와 내가 같이 청파동에 가서 자고, 일요일 9시에 한국은행에 같이 가서 시험을 잘 치르고, 인천으로 오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춤을 추듯 기뻐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반복해 인사하고 고개 숙여 감사드렸다.

토요일 저녁에 시험 준비물인 주산, 만년필, 잉크를 챙겨 보자기에 싸놨다. 나는 주산 살 돈이 없어서 남들이 버린 주산을 주어서 썼다. 주산은 낡고 헐어서 주산 알이 잘 오르고 내리지 못해 달그락 거렸고, 쓰레기통에서 주어 온 만년필도 수명이 다 된 물건이어서 글씨가 잘 써지지 않았다. 내가 시험을 볼 당시 한국은행은 만년필로 시험 답안지를 쓰라는 시험 규칙을 만들었다. 연필로 써도 될 일인데 말이다. 주산과 만년필만 해도 신문배달로 고학을 하고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학교 숙직실에서 밤잠을 자야했던 나로서는 큰 짐이 되었다.

한국은행 입사 시험 전 날 찾아간 청파동 집 버스값 60원이 없어 동냥갔다 찾아가게 된 청파동 초상이 난 집
한국은행 입사 시험 전 날 찾아간 청파동 집버스값 60원이 없어 동냥갔다 찾아가게 된 청파동 초상이 난 집 ⓒ 이월성

"아이고, 아이고…."

이석이와 같이 찾아 간 청파동 집. 하필 내가 시험을 치르기 전날 초상이 나서 나와 이석이가 찾아갔을 때에는 곡소리가 온 집안을 울렸다. 문상객이 가득 차서 우리 둘이 들어가 앉은 자리조차 없었다.

이석이와 내가 초상집 벽에 기대 새우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음날 오전 8시 30분에 "한국은행에 시험 보러 가야합니다" 말씀드리고 아칩밥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청파동에서 한국은행까지 가는 데 30분이나 걸린다, 늦었다"고 야단이 났다. 문상객 중에 영등포 헌병대 대장이 지프차를 태워줘 이석이와 나는 아침도 먹지 못하고 한국은행으로 달렸다.

운전병이 시계를 보더니 "9시 10분이다, 빨리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한국은행 수위실로 뛰어가서 "시험장이 어딥니까?"라고 물었다. "4층으로 올라가라"는 수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계단을 뛰어 올라 시험장에 들어섰다. 첫 교시는 주산, 시험은 이미 시작됐다. 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답안지에 만년필로 수험표 번호와 이름을 적어 넣으려는데 잉크가 나오지 않았다. 만년필을 들고 땅 바닥에 힘껏 내리쳐도 잉크가 나오지 않았다. 시험관이 자신의 만년필을 빌려주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수험번호와 이름을 적어 넣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주산 알이 잘 움직여 주지를 않았다. 열 문항 중에 여덟 문항을 풀고 답을 썼는데 시험관이 시험이 끝났음을 알렸다. 나는 몹시 아쉬웠지만 별 수 없이 주산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3년을 닦아 온 주산 실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하늘이 노랬다.

다음은 부기시험이었다. 내 눈은 부기 시험지의 문제를 읽어들이지 못했다. 수재들이 모인 한국은행 입사시험에서 이미 주산 시험을 망쳐, 불합격은 분명해졌기 때문이었다.

인천에서 인천에서 서울 가는 직행버스 값, 60원이 없어서 겪은 고생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고학생 신분으로 생활 전선에 찌들고 지쳐 몸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울면서도 비록 지금은 이렇게 어렵더라도 이를 악물고 남들보다 더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60원 버스 값 없는 죄#고학생의 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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