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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정평위 박병규 신부
대구정평위 박병규 신부 ⓒ 조정훈

"대구 정평위에서 전태일 장학금을 만드는 것은 속죄의 행위입니다. 전두환 독재 시절 가장 많은 혜택을 입었던 대구의 천주교가 복음의 길을 가지 못하고 살았던 교회의 모습을 속죄하는 행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영호 신부)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랐던 전태일 열사를 기리기 위해 대구에서 전태일 장학금을 조성한다.

전태일 장학금 조성 논의는 정평위가 격월로 발행하는 <함께꿈> 소식지의 편집을 맡은 박병규 신부가 한국일보 서화숙 기자에게 원고를 청탁하면서 시작됐다. 서 기자는 원고를 쓰는 조건으로 자신의 원고료를 정평위가 전태일 장학금으로 조성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고 박 신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정평위는 지난 3일 총회를 열어 전태일 장학금을 조성하는 안건을 승인하고 편집분과 박 신부와 노동분과 이태숙씨, 교육분과 임성무 교사 등 3인으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안을 만들기로 했다.

전태일 장학금 조성에 앞장서고 있는 박 신부를 지난 7일과 8일 만나 조성경위를 들었다. 박 신부는 "전태일 열사의 고향이 대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며 "대구에서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의미 있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도 전태일 열사의 동상에 꽃을 바치고 추모했는데 이념적으로 보면 안 된다"며 "전태일은 노동인권을 외치다 죽었기 때문에 인권의 대명사이고 이런 전태일을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장학금 조성이나 지급도 다른 장학재단처럼 큰 돈을 모아서 그 돈으로 이익을 만들어 주는 형식이 아니라 후원자들이 내는 후원금을 모아서 성적과 상관없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형식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신부는 "전태일이 어려운 처지였는데도 더 힘들게 일하는 여공들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그의 정신을 살려 장학사업도 나눔 운동으로 이어갈 것"이라며 "이런 운동이 다른 지역에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전태일은 인권의 대명사, 이념으로 보지 말아달라"

 전태일장학기금을 조성하는 대구정평위 박병규 신부
전태일장학기금을 조성하는 대구정평위 박병규 신부 ⓒ 조정훈

다음은 박병규 신부와의 일문일답이다.

- 전태일 장학금을 조성하게 된 경위를 말해 달라.
"대구 정평위에서 격월로 내는 소식지인 <함께꿈>에 왜곡된 언론을 언론인의 눈으로 고발하는 코너가 있는데 한국일보 서화숙 기자에게 원고를 청탁하면서 시작됐다. 서화숙 기자가 원고료를 전태일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장학사업의 밑거름으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 김영호 신부와 상의했다. 서 기자가 정평위에서 맡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 보수적인 대구에서 전태일 장학금이라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전태일이 대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전태일은 1948년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여공들을 위해 노력한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청년이었다. 전태일이 부르짖은 내용은 노동자가 주인이 되고 기업가를 없애자는 혁명적 내용이 아니다. 그가 진보적인 사람도 아닌데 우리는 그를 열사로 만들었다. 노동자의 기본 인권을 지키게 해 달라고 외치고 분신한 청년을 기리는 사업을 대구에서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2.28기념공원에 동상이라도 세우고 싶다. 전태일을 이념적으로 보는 것은 안 된다. 전태일은 인권의 대명사이다."

- 전태일 장학금 조성 과정은 어떻게 되나?
"지난 3일 정평위 총회 때 안건으로 올려 노동분과 이태숙 노동운동가와 교육분과 임성무 선생과 함께 3인이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전태일 장학재단은 여러 후원자들이 함께 키워나가게 될 것이다. 벌써 여러 신부님들이 동참해 주시기로 했고 더 많은 분들이 동참할 것이다. 장학사업만큼 주저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나눔을 실천하고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도 교훈이 될 것이다."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을 가장 잘 알기에 이 분들의 추천을 주로 받겠다" 

- 장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이 있는지, 그리고 전교조 교사들을 통해 선발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구체적인 선발 기준은 없다. 성적에 상관없이 등록금이나 급식비 등으로 한정하지 않고 어려운 친구들이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도록 지원하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필요하다. 전교조 교사들만이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교조 교사들이 학교에서 참교육과 인권을 가르쳐왔고 학생들에 대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이 분들의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을 것이다."

- 전태일 장학금이 다른 장학금과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기존의 장학재단은 사회 환원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돈 관리 측면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인권문제가 있다. 전태일의 이름을 걸고 하는데 가진 자의 자세에서 할 수 없지 않은가? 실생활 안에서 우리의 것을 나누는 것이다. 장학금 지급도 일률적으로 지급하는게 아니라 각자가 필요한 만큼 지급할 계획이다. 전태일 장학금은 일종의 후원 개념이다."

- 전태일 장학금 모금에 동참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정평위 공식 통장을 만들어 '전태일장학회'로 할 것이다. 전화로 문의하면 함께할 수 있다. 있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십시일반 모아서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으면 좋겠다. 홍보는 하겠지만 누구에게 얼마씩 지급했다는 것은 알리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수입과 지출 내역은 항상 공개할 것이다."

- 전태일 장학금 이외의 다른 계획도 있는지?
"전태일 정신을 시민사회에 알리는 일을 계속 할 것이다. <함께꿈> 다음호에는 전태일 특집을 낼 계획이다. 전태일 기념비와 동상도 세우고 싶다. 전태일 열사가 명덕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야간학교인 청옥고등공민학교에서 공부한 1년이 가장 행복했다고 기억했는데 전태일 학교를 열고 인권교육도 할 계획이다."

- 정평위 소식지인 <함께꿈>에 대해 설명해 달라.
"성경의 교리와 함께 대구 영남대병원 해고자들의 복직문제, 밀양 송전탑에 대한 진실 등을 알리고 있다. 무엇이 진리인지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고자 만들었다. 타블로이드판으로 4면인데 매 호 이슈가 다르다. 현재 15000부 발행해 대구교구 150개 본당과 전국의 시민단체들에게 보낸다. 벌써 11호가 나갔다. 앞으로 8면으로 늘릴 예정이다."

박병규 신부는 정평위가 장학재단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준 서화숙 기자에게 대구 정평위를 대표해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전두환 독재시절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았던 대구 천주교회가 나서는 이유에 대해서도 '속죄'의 행위라고 말했다. 전태일 장학금에 뜻을 같이하고자 한다면 박병규 신부(010-2784-5651)에게 연락하면 된다.
"원고쓰는 조건으로 전태일 장학금 만들어 달라고 했다"
서화숙 한국일보 선임기자
서화숙 한국일보 선임기자는 "대구지역 가톨릭 소식지에는 그 지역 전문가들이 글을 써야 하는데 여기 비집고 들어간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며 "전태일 장학금으로 만들어주면 쓰겠다고 제안하게 됐다"고 처음 제안한 이유를 밝혔다.

올해 초 전태일 열사가 대구 출신이고 대구에서 공부를 했다는 것을 처음 알고 전태일 장학금을 만들고 싶었다는 서 기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어디에 요청하면 될지 고민중이었는데 청탁이 오는 순간 대구 정평위가 내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직감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서 기자는 "전태일 장학금으로 원고료를 기부할테니 만들어달라. 1년 이후에도 그 금액을 게속해서 기부하겠다고 했다"며 "시작하면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신부님이 공감하셔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대상은 초·중·고등학교 학생이었으면 좋겠다"면서 "대구에 전두환과 박정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태일 같은 훌륭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일, 동참하겠다"
전태일 여동생 전순옥 민주당 국회의원
대구에서 전태일 장학금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인 전순옥 민주당 국회의원은 "상당히 의미있고 감사한 일"이라며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가족이나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대구에서 이런 일이 시작되는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며 "대구에서 한다는 게 고맙고 전태일처럼 정말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전 의원은 "10대 어린 동심들이 공부하지 못하고 산업현장에서 15시간 이상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오빠가 이들을 도와야겠다고 쓴 일기장이 있다"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사람들은 변한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또 "얼마 전 영남대 김태일 교수가 '전태일을 기념하는 일을 대구에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장학금 조성사업이 시발점이 되어 전태일 사업을 확장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전태일#전태일 장학금#박병규#서화숙#전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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