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이 있었던 지난 11월 7일의 입동엔 정작 얼마 춥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비가 계속내려 기온은 급강하를 시작했죠.
어제는 더욱 추워져 한겨울에 입어야 마땅한 두툼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저 또한 그래서 내복을 입지 않으면 안 되었죠. 늦은 봄부터 이른 가을까지 상체엔 러닝셔츠만 입어도 되지만 이후론 두꺼운 내복을 입어야 합니다.
더욱이 저와 같은 중늙은이는 추위에 민감한 까닭에 내복은 그야말로 절실한 친구에 다름 아니죠. 저는 상의와 하의 내복이 다릅니다. 위엔 보통의 내복을 입지만 아래는 '스키니진'을 입지요.
왜냐면 보통의 하의 내복은 압박감이 탱탱한 까닭에 똥배가 약간 나온 저로선 배가 갑갑하여 소화불량까지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스타킹처럼 신는 청바지 계통의 스키니진은 사실 재작년까지 아내가 입었던 것이죠,
하지만 양쪽을 가위로 약간 찢으니 그럭저럭 입을 만하더군요. 작년부터 제가 물려받아 입고 있는데 덕분에 아무리 강추위가 찾아와 괴롭혀도 끄떡없답니다. 요즘은 착용감이 탁월하며 발열내복에 맵시까지 그럴듯한 것도 많지만 과거의 내복은 그렇지 않았지요.
대물림된 가난이 태산과도 같이 높았기 때문에 저처럼 할머니와 살았던 애면글면 힘겨웠던 삶의 소년으로선 덕지덕지 기운 내복만으로 겨울을 나기도 다반사였습니다. 여하튼 올 봄에 취업한 딸은 첫 급여로 제겐 아웃도어룩을, 아내에겐 고급핸드백을 사서 택배로 보냈더군요.
그래서 즉시 전화를 하여 야단을 쳤습니다. "이 녀석아, 몇 푼이나 받는다고 이처럼 과용을 한겨? 그저 내복이나 한 벌 사서 보내면 될 것을." 그러자 녀석은 깔깔거리며 웃더군요. "에이그, 아빠도 참. 요즘 누가 촌스럽게 내복을 선물해요?"
저는 30여 년 전 직장에 입사해 받은 첫 월급으론 아버지께 내복을 사드렸지요. 그런데 그것만으론 서운하기에 돼지고기 두 근과 소주도 한 병을 사서 함께 드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 세상으로 가시어 안 계신 선친이기에 마음이 오늘의 날씨만큼이나 시립네요.
언제부턴가 겨울이 도래하면 국민적 내복 입기 운동이 벌어집니다. 한데 내복을 입으면 체감온도가 3도나 올라간다지요? 또한 1조4000억 원이나 되는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답니다.
고로 절전이 화두로 등장한 올해의 겨울엔 더더욱이나 내복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하겠습니다. 세월은 바람처럼 빨리 가고 있으되 역시나 불변한 건 여전히 내복은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