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박근혜 정권은 바짝 엎드려야 할 처지다. 정권의 정당성에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정원·국방부·국가보훈처·경찰 등 국가기관이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상호 협조한 전모가 소상히 밝혀지고 있다.
정상적인 민주국가라면 지금 재선거 여론이 비등하고, 현 정권은 퇴진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촛불'마저도 현실을 고려해 '특검'을 요구하는 수준에 머무를 뿐, '재선거 요구'는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도리어 국정원의 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내란음모 사건 발표, 채동욱 검찰총장 강제사퇴, 여야 3자회담 결렬, 진영 복지부 장관 항명파동, 이른바 사초(史草) 실종 논란과 문재인 의원 소환, 전교조 법외노조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및 소속 의원 의원직 박탈 청구, 윤석열 전 국정원 특별수사팀장 징계, '종북' 시민단체 해산 추진 그리고 여기에 더해 4대 사회악 척결, 김기춘 비서실장 임명,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검정통과, 새마을운동·유신독재 띄우기,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 후퇴에 이르기까지.
아직 출범한 지 1년이 채 안 된 박근혜 정권은 끊임없는 부정선거 논란 와중에도 이 모든 사태를 주도, 유발했다. 이에 지난 1년간 한국정치는 그 자체 '초유의 사태'들이 난마와 같이 지나갔다. 예측불허의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박정희가 집권 11년차(군정기간 포함)에 비로소 1인 독재체제인 유신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현 정권은 그야말로 '폭주'하고 있다. 현 정권이 '유신말기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행태 중 압권은 단연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일 것이다. 1인 철권통치의 대명사인 박정희 유신독재도 야당을 아예 해체시키지는 못했다. 그런데 박 정권은 통합진보당을 종북 세력으로 낙인 찍으며 해체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거물 정치인도 없는데... 통합진보당 압살의 저의는 무엇일까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대체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를 두고 대부분 국가기관 선거개입 사건을 '물타기'하려는 공작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해산은 이러한 물타기와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대체 얼마만큼 물타기를 해야 성에 찬다는 것인가?
현 정권이 진보당 해산을 청구했을 때 진보언론들은 '조봉암 처형'과 '김영삼 제명'을 상기시켰다. 이승만은 1956년 5·15정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의 조봉암 후보가 자신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음이 입증되자 진보당 등록을 취소하고,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에 처했다(1959년 7월 31일).
당시 평화통일, 피해대중을 위한 정치, 사회민주주의적 경제정책을 주장한 조봉암은 상당한 대중적 지지를 받았고, 이는 이승만 정권과 보수 야당인 민주당을 위협했다. 이에 그들은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았지만, 지난 2011년 사법부는 그의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한편, 1978년 12·12총선에서 공화당을 득표율 기준 1.1% 앞지른 신민당과 총재 김영삼은 선명야당론을 내세우며 유신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자 이성을 상실한 유신정권은 김영삼을 국회의원직에서 제명하기에 이른다(1979년 10월 4일). 이는 당시 YH사건을 계기로 신민당이 낸 책자 제목 그대로 '말기적 발악'이었고, 부마항쟁을 유발했다.
박근혜 정권의 통합진보당 탄압은, 얼핏 위와 같은 역사와 유사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결정적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조봉암과 김영삼은 '거물 정객'이었고, 대중적 영향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권 입장에선 '정치적 위협'으로 간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 통합진보당은 객관적으로 '거물 정객'이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정치적 지지기반도 없다. 즉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이 통합진보당을 압살하려는 저의는 무엇일까? 단순히 박근혜 정권 유지, 강화를 위한 이념공세의 일환일까?
18대 대선의 교훈... '의외의 위협을 제거하고 역사를 조작하라'
이를 이해하려면 지난 18대 대선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2012년 12월 4일, 대선후보 1차 TV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국가관이 의심스럽다며 억지 공세를 폈다. 그러나 곧 박 후보는 이 후보의 공세에 전전긍긍했다.
이 후보는 그간 박정희·박근혜와 관련해 주류언론도, 민주당도 외면하던 역사문제들을 정면으로 제기했다. 박정희를 다카키 마사오로 지칭하는 한편, 정수장학회, 6억 원의 실체 등을 공식 제기한 것이다. 또 박 후보가 유신시대의 사고와 행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여왕'임을 상기시키면서 새누리당을 향해 '친일과 독재의 후예', '매국세력'이라는 직격탄을 날렸다.
이날 박 후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새누리당은 즉각 조치에 돌입했다. 그리하여 12월 7일, 이른바 '이정희 방지법'을 발의했다. 그 내용은 TV토론 참가자격을 지지율 15% 이상인 후보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파쇼적 발상'이자, 보잘 것 없다고 여긴 세력에게 일격을 당한 데 대한 '졸렬한 분풀이'였다. 한편 2차 토론회에선 이 후보에 의해 민생경제에 대한 박 후보의 몰지각성이 표출됐다.
아무튼 이때 새누리당은 크게 놀랐던 것 같다. 특히 1차 TV토론회에서 이 후보가 제기한 역사문제들은 박근혜 후보 진영뿐만 아니라 수구세력 전체의 허를 찌른 것이었고, '다카키 마사오'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등 그 여파가 컸다. 1차 TV토론 직후 불과 3일 만에 이정희 방지법을 발의한 사실에서 이때 새누리당이 느꼈던 위기감과 당혹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또 새누리당은 이때 큰 교훈을 얻었던 것 같다. 특히 자신들이 향후 계속 '집권'하려면, 정치적으로는 '의외의 위협'인 통합진보당을 제거하고, 아울러 역사인식의 조작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역사인식을 조작하려면 뉴라이트 사관이 반영된 역사교과서를 발행하고, 일선 교육현장의 전교조를 해체시켜야 한다고 인식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를 집권 뒤 지금 실현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지금 정국을 18대 대선의 '연장', 즉 '긴(Long) 18대 대선'으로 이해하면, 박근혜 정권의 행태가 지닌 속성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실제 NLL문제는 물론이고, 이석기 의원·통합진보당에 대한 종북공세 역시 18대 대선 당시부터 있었다.
또 박근혜 후보는 3차 TV토론회(2012년 12월 16일)에서 문재인 후보와 전교조의 관계를 트집 잡으며, "학교현장을 혼란에 빠트려 온 전교조"라 지칭하고, "전교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등의 언급을 했다. 집권 뒤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사실상 예고했던 셈이다. 아울러 당시 박 후보의 역사인식은 5·16군부쿠데타, 인혁당 사건, 유신 등을 둘러싸고 계속 논란이 됐다.
사실상의 독재와 장기집권을 추구하는 '연성화된 독재정권'
그런 점에서 18대 대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이 선거를 둘러싼 논란이 진행되고 있고, 새누리당이 이 선거에 설정했던 프레임이 작동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선거시기와 통치시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예 양자를 구분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행태는 '정치'라기보다 '선거운동'에 가깝다.
즉 현재의 정국을 새누리당 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한 선거운동 차원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처음엔 부정선거·관권선거로 얼룩진 18대 대선을 덮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18대 대선의 진상이 밝혀진 지금 시점에 와선, 전략을 바꾸어 '18대 대선 과정'을 '지속'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장기집권을 위한 선거운동을 지속하는 방편으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이를 상징한다.
아울러 새누리당이 장기집권 야욕과 계획을 갖고 있음은, 지난 10월 8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우리가 20년은 더 해야 된다", "민주당이 하는 꼴을 보니까 저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기겠느냐"라고 말한 사실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따라서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그 자체로 독재정권이 될 수는 없지만, '사실상의 독재'와 '장기집권'을 '추구'하는 '연성화(軟性化)된 독재정권'이라 표현할 수 있다. 부정선거, 관권선거로 정권을 잡았고, 반동적 전단(專斷)을 일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심상치 않다. 당장 일본은 '보통국가화'를 지향하며 중국과 대치하려 든다. 한국경제는 활기를 잃고 대다수 국민이 빚더미 위에 앉아 '푸어 공화국'이란 조어가 만들어진 실정이다. 보수 세력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만큼 성장했다'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는 성장과 분배 양쪽 날개 모두 삐걱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울러 남북관계는 출로를 찾지 못한 채 여전히 단절되어 있다.
대내외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있는데,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장기집권 야욕에 사로잡혀 이를 외면하고 있다. 그러면서 적반하장 격으로 민생문제의 미해결을 야당의 책임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에 야당은 신야권연대로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지금 역사에 대한 책임은 정권을 잡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 자신에게 있다. 이 책임을 외면한 채 지금과 같은 정치를 지속한다면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