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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시스와 패러시오스라는 두 화가. 두 사람은 누가 더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지 내기를 하게 되었다. 제우시스는 벽에 포도를 그려 날아가는 새들을 유혹했다. 완벽한 포도 그림을 보고 새들이 날아왔다. 사실은 그가 그린 포도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 새들의 눈이 그것에 속은 것이었다. 제우시스는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패러시오스에게 다가갔다. 패러시오스는 커다란 베일 앞에 서 있었다.

'자, 이제 저 베일을 벗고 당신의 그림을 보여주세요.'

그러나 이 말을 하는 순간, 제우시스는 패러시오스에게 패배하고 만다. 패러시오스가 그린 것은 바로 '베일'이었던 것이다. 동료 화가의 눈조차 속이게 만든 사실적인 그림. 어쩌면 우리는 일생을 통해 베일을 그림이 아니라 진짜라고 믿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늘 베일 너머 어떤 본질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여배우 정행심의 연기 인생은 바로 베일 같은 것이다. 그녀의 연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연기 뒷면에 어떤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는 패러시오스의 베일처럼 눈앞에 있는 사실적인 것이다. 진한 커피향이 우러나오듯, 그녀의 연기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려온다. 사실적인 묘사, 사실적인 행동, 사실적인 감정의 격동…. 그녀의 연기를 보는 우리는 어느덧 제우시스의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곡쟁이 여자 포스터
 곡쟁이 여자 포스터
ⓒ 몽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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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정행심의 '哭女 곡쟁이 여자'가 부산 관객을 찾아간다. 부산 시립극단 단원인 정행심은 지난 32년 동안 수백 편의 연극 무대에 출현한 부산의 중견 배우이다. 이제 액터스 소극장(부산 남천동 소재)에서 11월 19일부터 11월 24일까지 그녀의 드라마가 진지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늙은 창녀의 노래(1997년), 망초꽃 향기(2009년)에 이어 이번 작품은 그녀의 세 번째 모노드라마이다. 웬만한 연기 내공을 가진 배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모노드라마를 여배우 정행심은 세 번이나 올리는 것이다. 혹시 영화 <사생결단>(류승범, 황정민 주연)에서 나왔던 짧은 장면 하나를 기억하시는가? 황정민이 여자 마약 밀매상을 취조하는 바로 그 장면! 너무나 사실적인 연기에 황정민이 감탄을 금치 못했던 여배우가 바로 정행심이다.

'哭女 곡쟁이 여자'는 삼십년에 걸친 정행심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는 중요한 연극이다. 또한 그녀의 내면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열정을 아낌없이 볼 수 있는 모노드라마가 될 것이다.

여배우 정행심
 여배우 정행심
ⓒ 몽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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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남의 상갓집에서 상주를 대신해서 곡을 해주며 딸을 키웠던 어머니가 있었다. 그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딸이 이제는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사람들을 만난다. 온화한 미소를 지은 여인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고된 시집살이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구구절절이 배여 있는 눈물과 한숨, 그리고 절망.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관객들은 차츰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며 그녀의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어느새 관객들은 제우시스의 시선이 되어 진짜 베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분노와 격정을 드러내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여인의 모습. 그건 한 폭의 사실적인 그림처럼 관객들을 유혹한다.

오랜 시간 회한을 토해 낸 여인은 다시 미소를 띠며 관객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순수하고 소박했던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패러시오스의 베일 뒤로 몸을 숨긴다. 그리고 천천히 막이 내려온다. 

배우이기 전에 한 어머니의 딸이었고, 한 아들의 어머니이기도 한 인간 정행심. 그녀의 내면을 아낌없이 볼 수 있는 '哭女 곡쟁이 여자'. 어쩌면 이 모노드라마는 그녀의 지난한 삶이 녹아 있는 사실적인 드라마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부산 액터스 소극장(남천역 1번 출구, 하이마트 뒤)에서 공연. 11월 19일(화) ~ 11월 24일(일) 평일 7시 30분, 토-일 4시.



태그:#곡녀, 곡쟁이 여자, #정행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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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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