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보자 A씨가) 111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특별한 반응이 없어서 끊었다. 열흘 쯤인가 지나 111 콜센터 누리집에다 '20년을 운동권으로 살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신고 내용에 신빙성이 있을까 했다. 그래서 본인을 만나려고 전화를 했다."

시작은 국가정보원 제보 전화, 111이었다고 한다. '제보자' A씨는 20년 넘게 진보 운동에 몸 담았다. 그는 2010년 3월 터진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맹목적인 북한 추종에 실망했다. 같은 해 5월 111로 전화를 걸어 국정원이 지하혁명조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RO를 신고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10여 일 후 국정원 콜센터 누리집에 글을 올렸다. '20년을 운동권으로 살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남겼다.

111 콜센터에서 시작된 내란음모 사건?

국정원 수사관 문아무개씨가 주장하고 있는 A씨와의 첫 접촉 과정이다. 14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 2차 공판(형사12부, 부장판사 김정운)에서 문씨는 A씨와 녹음 파일을 주고받은 경위 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A씨에 대해 국정원과 검찰은 '공익에 헌신한 내부조력자'로, 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의 변호인들은 국정원이 매수한 '프락치'로 규정하고 있다.

국정원 수사관 문아무개씨에 따르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제보자 A씨는 국정원 111 콜센터 누리집에 '20년을 운동권으로 살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글을 남겨 제보했다.
 국정원 수사관 문아무개씨에 따르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제보자 A씨는 국정원 111 콜센터 누리집에 '20년을 운동권으로 살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글을 남겨 제보했다.
ⓒ 강민수

관련사진보기


문씨에 따르면 두 사람은 그해 7월, 수원의 리츠호텔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다. 문씨는 "운동권은 (평소에) '적'이라고 생각해서 부담이 있었다"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했다"고 첫 만남의 소회를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인사를 나눈 뒤, 문씨는 A씨의 RO와 관련된 제보 내용을 듣고서 반신반의했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했다.

다시 한 달 후 만난 자리에서 A씨는 홍순석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해왔다고 한다. 문씨는 "내용을 들어보니 (RO는) 대단한 조직이었다"며 "(A씨가) 다른 녹음기를 갖다 달라고 해서 사무실에 있는 녹음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녹음이 잘 안 들렸고 새로 갖다준 녹음기는 또 용량이 작아서 교체하는 등 총 5개의 녹음기를 사용했다.

문씨는 "레스토랑, 한식집, 고깃집 등 식당에서 만났다"며 "다른 사람이 대화를 엿들을 수 없도록 '룸'에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국정원 수원지사 사무실을 찾아 녹음 파일을 컴퓨터에 옮기거나 파일의 해시값(hash value)을 산출하기도 했다고 문씨는 주장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 문씨는 이후 A씨로부터 지난 2011년 1월 25일부터 지난해 5월 18일까지 RO 모임을 녹음한 파일 11개를 직접 건네받았다. 이후 법원에 감청 허가(통신제한허가조치)를 받아 지난해 6월 21일부터는 올해 7월 29일까지 법원으로부터 추가로 36개의 녹음파일을 받았다. 44회에 걸쳐 총 47개의 녹음 파일을 받은 문씨는 총 12개의 녹취록을 작성했다.

"대가로 교통비 밥값만 줬다"... 25일 오후 대질신문 예정

일부 언론에 제기된 제보자 매수 의혹에 대해 문씨는 "국가기관이 형사 사건 협조자들에게 제공해주는 교통비나 밥값을 실비 수준에서 (돈을) 지급을 했다"며 "경제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A씨를 수사에 활용한 이유에 대해 "RO는 비밀 조직으로 수사관이 회합 장소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내부자의 협조 없이는 녹음할 수 없어서 제보자를 거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녹음 날짜와 만남 장소, 대화 내용을 유도한 적이 없다"며 "특정 내용을 유도하면 상대방이 의심할 수 있다, 굳이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이 터지기 직전, A씨는 수원시 친환경학교급식지원센터장을 맡고 있었다. 지난 2008년 총선 때는 수원 권선구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었다. 현재는 연락이 두절됐으며 해외로 도피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지만 A씨는 다음 주부터 재판에 등장할 예정이다. 21일 검찰, 22일 이석기 의원 쪽 변호인단의 신문에 응하고, 25일 오후 2시부터는 국정원 수사관 문씨와의 대질신문이 예정돼 있다.

A씨가 '국정원에 매수된 프락치'임을 입증해내야 하는 변호인단의 불꽃 튀는 반론이 예상된다.


태그:#내란음모 사건, #국정원 직원, #제보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