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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거처 하고 스님의 토굴 뒷산 어디쯤인가의 물웅덩이에 파이프를 연결해 수도꼭지를 달아 쓰고 있는데 가끔씩 나뭇잎 쪼가리나 물이끼가 섞여 나온다.
 임시 거처 하고 스님의 토굴 뒷산 어디쯤인가의 물웅덩이에 파이프를 연결해 수도꼭지를 달아 쓰고 있는데 가끔씩 나뭇잎 쪼가리나 물이끼가 섞여 나온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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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하려는데 식수가 똑 떨어졌다. 요즘 잘 아는 스님이 사용하던 토굴에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혼자 생활하고 있다. 두 평 남짓한 아래위 방 두 개에 아궁이 불을 지피는 스님의 토굴, 그 뒷곁에는 물줄기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 출처가 불분명하다.

본래 이 토굴은 내가 잘 모르는 다른 스님이 썼던 것이라 내가 잘 아는 스님은 이 물이 어디서부터 흘러나오는지 알지 못했다. 나나 스님이나 토굴 뒷산 어디쯤인가의 물웅덩이에 파이프를 연결해 수도꼭지를 달아 쓰고 있다는 것만 대충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토굴에 들어와 처음 보름 정도는 대충 그 물을 목마른 개처럼 벌꺽벌꺽 마시거나 밥을 짓고 찻물을 끓여 식수로 사용해 왔다. 전기를 이용한 모터 돌아가는 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벌레들이 갉아먹은 듯한 잎사귀 쪼가리에 물 이끼까지 섞여 나왔다.

그 물질들을 확인한 순간 항문(나는 볼일을 보고 나서 손바닥 만한 휴지로 대충 닦아 내고 물로 씻는다)이 간질간질해 지는 것 같았다. 공연히 아랫배가 살살 아파 왔다. 산물에 섞여 나오는 부유물을 목격한 이후 더이상 식수로 쓰기에는 찝찝했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식수로 써왔는데, 사람 마음이라 게 참 간사하구나, 내가 참 어리석구나 싶으면서도 그 찝찝한 마음은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결국 스님의 토굴 저 만치 아래에 살고 있는 영주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영주네는 바위를 뚫어 아주 깊이 관정을 박아 지하수를 뽑아 쓰고 있다. 수도꼭지만 틀면 맑은 물이 꽐꽐 쏟아져 나온다. 그 지하수를 식수로 받아쓰고 스님 토굴에서 나오는 산물은 세면을 하거나 쌀을 씻고, 설거지나 빨래 등을 할 때 허드렛물로 사용하고 있다.

공주에서 사과밭을 하는 김현식 선생에게서 얻은 저 농약 사과 몇 개를 싸들고 영주네 집으로 내려갔다. 사흘만이다. 그러고 보니 5리터 정도의 물통으로 사흘을 버텼던 것이다. 토요일 인데 영주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초등학교 3학년인 영주 녀석은 간난 아기 때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다. 쫄랑쫄랑 따라오며 "농부 아자씨~" "농부 아자씨 뭐 해요?" "저건 뭐예요?" "왜 그래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댔던 녀석이 오늘은 늦잠을 자는 모양이다.

불가피한 환경에 길들여지다 보니...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허드렛 물로 쓰고 식수는 토굴 아래 저만치에서 살고 있는 영주네 집에서 받아 쓰고 있다. 5리터 정도 돼는 이 물통 하나로 보통 사흘을 버티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허드렛 물로 쓰고 식수는 토굴 아래 저만치에서 살고 있는 영주네 집에서 받아 쓰고 있다. 5리터 정도 돼는 이 물통 하나로 보통 사흘을 버티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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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네 지하수를 받아 스님 토굴로 돌아오는데 남 주는 것 좋아하고 맛난 음식 나눠 먹을 줄 아는 맘씨고운 영주엄마가 그런다.

"아이고, 선생님은 고만큼 물로 사흘이나 쓰시는데 우리는 물을 너무 많이 쓰는 거 같아 죄송하네요... 우리도 물 좀 아껴 써야 겠어요."
"죄송하긴요. 살다 보니께 그냥 그렇게 됐네요..."

사실 나는 물을 아껴 쓰겠다는 굳은 마음가짐으로 아껴 쓰고 있는 게 아니다. 매일 같이 식수를 따로 받아 써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부지런하지 못해 적게 쓰고 있을 뿐이다. 다만 몸을 씻고 가꾸는 데 불성실한 덕분에 평소 남들보다 물을 적게 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터를 돌려 지하수를 뽑아 쓰고 생활했을 때는 분명 그 쓰는 물량이 사흘에 5리터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전에는 알게 모르게 그보다 훨씬 많이 썼을 것이다.

한 달 전부터 영주네 집으로 내려가 식수를 받아쓰고 있다 보니 이제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불가피한 환경에 길들여 졌던 것이다. 그 불가피한 습관이 물을 적게 쓰게 한 것이었다.

이전에는 모르긴 몰라도 전기를 사용해 모터를 왱왱 돌려가며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썼을 것이었다. 지금 사용하는 물량으로도 충분한데 왜 무엇 때문에 예전에는 두 배 이상의 물을 썼을까? 따지고 보면 그것도 습관이었다. 함부로 쓰고 버리는 악습이었다. 그 악습으로 어디가에서 목마름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몰고 올수 있다듯이 나의 생활 습관 하나하나가 내 몸은 물론이고 내 자식들, 이웃들, 더 나아가 지구촌 어딘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 끝에 얼마 전 초대형 태풍 '아이옌'으로 끔찍한 피해를 본 '필리핀의 눈물'이 떠올랐다.

얼마 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필리핀 대표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강대국들의 행동을 눈물로 호소했다. 그는 배출가스 절감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개발도상국에게 필요한 자금을 즉각 제공할 것을 촉구하며, 이에 따른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때까지 단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국립기상자료센터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로 인해 태평양에서 발생한 초강력 태풍의 평균 풍속이 매년 시속 1.6km씩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지구 온난화의 가장 큰 주범인 미국 같은 강대국들은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는 환경오염의 법적 규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단지 강대국들만의 책임에 있겠는가?

지구온난화의 주범들인 강대국들의 횡포에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져 있다. 강대국들이 환경오염을 일으키며 생산해 내고 있는 온갖 부산물들을 함부로 쓰고 소비하는 우리들 또한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강대국들의 횡포를 저지하고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생활 습관에 달려있다.

따지고 보면 지구온난화로 끔찍한 피해를 입은 '필리핀의 눈물'은 함부로 쓰고 버리는 우리들이 흘리게 한 눈물이다. 필리핀 뿐만 아니라 지구 저편에서 먹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어미들의 눈물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산물로 씻은 쌀에 영주네 집에서 받아온 식수를 부어 전기밥솥에 앉히면서 내내 그 불편한 마음을 떨쳐낼수 없었다.

원고를 다 쓰고 나서 문득 풀무고등학교 아이들의 노래가 떠올랐다. 지난해 가을, 풀무고등학교 축제에서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로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는데 그때 불렀던 노래였다. 우리 집 큰 녀석 송 인효가 작곡 작사하고 노래는 풀무고등학교 2학년(지금은 3학년) 아이들 모두 다 함께 불렀다.

제목은 '그댄 울고 있었나요' 지구 저편에서 굶주리고 있는 난민들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

작곡 작사/ 송인효
노래 /풀무고등학교 아이들

조용히 눈감고 귀를 기우리면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있는
울음소리가 들려

그댄 울고 있었나요
내가 웃고 있을 때도
지금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도
그대는 울고 있겠죠
내가 지나치는 아주 작은 생각을 할 때마저
그대는 울고 있을 테죠

그댄 울고 있었나요
내가 힘이 될께요
지금 노래를 부르면서 그대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댄 울고 있었나요
내가 웃고 있을 때도
지금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도 그대는 울고 있겠죠

그댄 울고 있었나요
내가 이젠 힘이 될께요
지금 노래를 부르면서 그대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댄 울고 있었나요
내가 이젠 힘이 될께요
내가 외면했던 그대의 눈물 모두
우리의 가슴속에 담아 줄께요

녀석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

덧붙이는 글 | 풀무고등학교 아이들 노래 '그댄 울고 있었나요'를 첨부했습니다.



태그:#식수, #습관, #지구온난화, #필리핀의 눈물, #그댄 울고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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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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