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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8일) 박근혜 대통령의 첫 번째 국회 시정연설을 앞두고 국회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임기 중 첫 번째로 열리는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예우를 갖춰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초재선 그룹은 항의성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따라서 우발적 충돌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정당해산심판청구에 맞서 국회에서 단식농성 중인 통합진보당 지도부도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이 역시 충돌은 불가피하다. 오병윤 원내대표 등은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에도 중단없이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칫 국회 사무처나 청와대 경호실이 경호에 무리수를 둘 경우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앞두고 국회는 난장판이나 아수라장이 될 가능성도 높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시정연설에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에 따라 향후 정국의 향방도 명확히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 도입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회 특위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는 민주당은 시정연설에서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92명 민주당 의원들이 뜻을 모아 17일 청와대 앞에서 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기조 속에, 시정연설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어떤 대응을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원내 지도부는 특별한 지침을 내리지 않겠다는 방침이지만, 초재선 의원들은 "이대로 박수치며 시정연설을 들을 수 없다"며 개별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2008년, 한나라당 '박수'-야 '고요'... 2003년, 통합신당 '기립'-야당 '썰렁'

2008년 10월,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의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도중 본회의장을 퇴장하여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2008년 10월,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의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도중 본회의장을 퇴장하여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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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일어서서 맞이하고 있는 모습. 그러나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일어서서 맞이하고 있는 모습. 그러나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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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의원들은 시정연설 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거나 박수를 치지 않는 방법 등으로 대통령을 향한 각자의 의견을 표해왔다.

2008년 10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쳤다. 반면, 민주당·자유선진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의원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시작하자마자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더 큰 위기가 오고 있습니다', '서민 살리기가 우선입니다'라 적힌 손 팻말을 들어 보였다. 이후 본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보다 더 앞선 2003년 10월 13일, 노무현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30%는 자리에서 아예 일어서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걸어 들어오자 통합신당 의원들은 전원 기립해 전원이 박수를 쳤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기립했을 뿐 박수에 인색했으며, 한나라당 의원은 70%만 일어섰다. 38분의 긴 연설이 끝난 후에도, 통합신당 의원은 전원이 일어서 박수를 보냈으나 민주당 의원은 절반만 일어섰으며 한나라당 의원은 40여 명만 일어서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이번 시정연설 역시 민주당 의원들이 기립 혹은 침묵 등의 방법으로 박 대통령에게 '항의' 표시를 할 거라는 예측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 13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시정연설 '보이콧' 의견까지 나온 상태. 논란 끝에 시정연설 참석으로 결론이 났지만, "대통령이 입장할 때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박수를 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 사망을 의미하는 검은 넥타이, 검은 스카프를 착용하자"는 제안이 봇물을 이뤘다.

민주당 내부 이견..."예우 갖춰야" vs. "행동으로 보여줘야"

그러나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원내지도부도 이에 뜻을 함께 하며 "예우를 갖추겠다"는 큰 기조 아래 의원들에게 어떤 지침도 내리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내일 민주당은 국회를 방문하는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원내 지도부 핵심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시정연설은 국가 대표자로서 예산을 어떻게 쓸지 국회에 설명하러 오는 법적 절차인데, 국회가 이를 듣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며 "만일 대통령이 민주당의 요구에 대해 답변이 없다면 이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하면 되지 지도부 차원에서 지침을 내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지도부의 결정에 초재선 의원은 개별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도부로서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의지와 신념이 있는 사람들끼리 행동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각 그룹별로 행동방침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이라도 할 것이며 그냥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의원도 "박 대통령이 우리 요구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으면 가만히 듣고 보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만일 지도부가 아무 방침 없이 각자 판단하라고 내버려 둔다면, 지도부이길 포기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보이콧해야 한다는 의견도 여전히 있는 상태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어떤 형태로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낮은 것도 '강경 행동론'에 힘이 실리는 지점이다.

시정연설은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 후 실시되는 연설인만큼 박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여야의 협조를 구할 것으로 예측된다. 더불어 국회 계류 중인 경제 관련 법안 처리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은 박 대통령이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이나 특검, 국정원 특위 등의 정치 현안에 대해 입을 열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나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특검이나 특위 등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반복해 와 그 이상의 '메시지'가 나오기 어렵지 않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일반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당내에서는 아무런 방침 없이 시정연설에 임한 민주당 원내지도부를 향한 비판이 강하게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 '단식 농성' 계속, 무력 충돌 벌어질지도

한편, 국회 본관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통합진보당이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진행되는 18일에도 계속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혀, 시정연설을 앞둔 시점 국회에서 충돌이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6일부터 단식 투쟁 중인 오병윤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정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소송을 즉각 취하하라"며 "정당해산 시도가 중단될 때까지 투쟁은 계속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 원내대표는 "내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국회 시정연설이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탄압을 거두고 헌정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국정원을 전면개혁 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국회 사무처는 지난 14일 안내문을 통해 진보당 의원들의 단식 농성 중단을 요구한 바 있다. 진보당 의원들의 건강을 이유로 한 중단 요구였지만, 사실상 진보당을 향해 '경고'를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일었다. 이에 18일 국회 사무처에서 진보당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거나 청와대 경호원과 진보당 의원단 간의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태그:#시정연설, #박근혜, #민주당, #보이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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