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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대흥전 앞 촛대
 해남 대흥사 대흥전 앞 촛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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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단풍
 해남 대흥사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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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이곳이다. 마지막 단풍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해남 대흥사 대웅전 앞 고운 단풍 우산 아래에 촛대들은 우뚝우뚝 솟아 있다. 그리고 묵언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촛불은 진리를 밝히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요즈음 이곳에서 타올라야 할 촛불이 방방곡곡 도심에 켜져 있으니 안타깝다.

유난히 곱다는 단풍이 지나가는 것도 애써 잊은 채 자꾸 무엇에 짓눌린 마음은 도심의 촛불에 붙잡히고 말았던 가을, 그래도 단풍의 끝 정도는 찾아보아야 할 것 같은 안타까움에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한 곳이 우리나라 땅 끝에 있는 전남 해남 두륜산과 두륜산이 품고 있는 대흥사이다.

16일 오전 7시, 풀꽃산행팀 11명은 광주를 출발하여 해남 두륜산으로 향하였다. 두륜산 산행은 대흥사에서 출발하여 대흥사로 돌아오는 코스가 일반적이지만,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륜산 케이블카 뒤쪽에 있는 오소재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오전 9시, 완도로 넘어가는 오소재에서 두륜산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소재에서 오심재로 오르는 길목은 오르막이 거의 없는 편안한 산길이다. 길에 떨어진 낙엽들이 떠나가는 가을을 붙잡고 있다. 길가에 있는 동백잎은 더욱 선명하지만 가을의 분위기에 자신을 맡기고 있는 것 같다.

해남 두륜산 노승봉 오르는 암벽
 해남 두륜산 노승봉 오르는 암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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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두륜산 능선
 해남 두륜산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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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분 정도 오르니 헬기장이라고 하는 널찍한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오심재이다. 오심재에서부터 노승봉으로 오르는 길이 험하다. 노승봉은 그대로 바위로 뒤덮인 봉우리다. 곳곳에 쇠로 된 발받침과 줄들이 늘어져 있다. 갑자기 암봉을 오르기 시작하니 모두 긴장된다. 암벽을 오르는 기쁨, 산행 중 색다른 체험이다. 조금은 힘든 사람들도 있지만 산행은 늘 흙길과 바위길이 어우러지는 공간이 많다보니 암벽은 더욱 즐겁다.

노승봉에 오르니 두륜산 능선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두륜산으로 둘러싸인 대흥사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남도의 알프스라고 일컫는 주작산과 덕룡산 줄기도 눈에 들어 온다. 멀리 완도 상황봉과 다도해의 어우러짐이 실루엣처럼 펼쳐진다. 가을은 곳곳에 있는 단풍들을 통해 아직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늘은 유난히도 맑아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다. 산행의 맛이 이런 것일까?

노승봉에서 두륜봉에 이르는 능선은 그야말로 바위 능선이다. 보통 설악산의 바위 능선이 험하지만 두륜산, 주작산, 덕룡산, 달마산, 팔영산 등 남도의 몇 산들의 바위들도 몹시 험하다. 그만큼 긴장을 하고 그만큼 재미를 느낀다. 파란 하늘에 머리를 담그고 기암괴석 위를 걷는 기분이 시원하다.

노승봉에서 가련봉(703m)를 지나 만일재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헬리콥터가 멈출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그곳에는 잔디들이 낮게 깔려 있고 가장자리에는 억새들도 하얗게 나부낀다. 조금 일찍 점심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앉아 있다.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해남 두륜산 두륜봉 입구 구름다리
 해남 두륜산 두륜봉 입구 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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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30분, 만일재를 지나 다시 두륜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험한 기암괴석을 오른다. 두륜봉 입구에 두륜산에서 가장 유명한 구름다리가 논에 들어 온다. 신기하게 큰 바위가 계곡 위에 놓여 있다.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두륜산의 명물임에는 틀림없다. 모두 구름다리 아래를 돌아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고 좋아한다. 산행의 즐거움이다.

낮 12시, 두륜봉(603m)에서 점심을 먹었다. 넓은 바위에 차려 놓은 도시락들은 그대로 진수성찬의 오찬이 된다. 지금까지 걸어 왔던 두륜봉 능선들의 바위와 멀리 남해 바다와 지나가는 마지막 단풍을 그대로 품고 있는 대흥사를 바라보며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두륜봉에서 상원암을 지나 오후 2시 30분, 대흥사로 내려왔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최정규 저)에 선정된 대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로 한국불교사 전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량으로서 특히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고 있다. 초의 선사로 전해지는 우리나라 차 문화 성지로 알려져 있고, 추사 김정희가 초의 선사와 차를 나누며 새겨 놓은 '무량수각'이란 편액이 유명하다.

대흥사 입구엔 '유선여관'이 유명하다. 유선여관은 1915년에 백양사 법당을 지었던 박목수가 지었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지닌 한옥여관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왔고, 서편제 촬영지, 1박 2일 등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한옥집과 장독대 뒤편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단풍이 매력적인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 '유선여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 '유선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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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하순이 다가오는데 대흥사는 단풍이 한창이다. 단풍이 아름답다. 전남 해남 땅끝에서 조금 안쪽에 있는 두륜산 가운데 대흥사는 우리나라 단풍이 마지막 머무는 곳이다. 그리고 애기단풍이라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두륜산 곳곳에 떨어지는 낙엽들과 대흥사 경내에 울긋불긋 타오르는 단풍은 사람들을 속이지 않았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두 나무의 뿌리가 연결되어 있는 '연리근'이 눈에 뛰었다. '연리(連理)'란 서로 다른 두 나무가 서로 합하여지는 기이한 자연 현상인데, 가지가 하나가 되면 '연리지'라고 하고, 뿌리가 하나가 되면 '연리근'이라고 한다. 하나가 된 나무들을 보며 사람들은 사랑의 연결로 좋아하는데, 이곳의 연리근은 거대한 나무로 자라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남 대흥사에 있는 연리근, 두 나무의 뿌리가 하나로 연결된 나무
 해남 대흥사에 있는 연리근, 두 나무의 뿌리가 하나로 연결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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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글씨 '무량수각'
 추사 김정희 글씨 '무량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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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 들어가니 가을의 냄새가 가득하다. '대웅보전'과 '무량수각'이란 편액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데, 그 선명함은 주변의 어우러진 단풍들의 향연과 하나가 되어 있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로 귀양 가던 길에 이곳에 들러 대웅전에 걸려있는 이광사의 글씨 '대웅보전'이 촌스럽다고 타박하며 현판을 떼어 내라고 했다. 8년 뒤 유배가 풀려 서울로 돌아가던 김정희는 다시 대둔사에 들렸다가 이광사의 현판을 다시 찾아 걸도록 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양 옆에 촛불을 켜는 촛대들이 독특하다. 토기로 빚어 놓은 촛대에 연꽃모양의 초들이 들어 있다. 촛대는 계단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데, 오른 쪽에는 적단풍이 우산을 만들고 있고, 왼쪽에는 노랑 단풍이 우산을 만들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아직 낮이어서 촛불은 보이지 않지만 부처의 진리를 퍼뜨리기에 넉넉하다.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촛대를 본 순간 다시 가슴이 답답하다. 밤마다 도심 곳곳에서 켜지는 촛불은 본래 있던 자리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오늘 두륜산 능선을 지나는 시간에도 오늘 밤에도 촛불에 동참하라는 문자라 몇 번 날아 왔다. 자꾸 단풍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짓눌림을 떨치려 찾았던 두륜산 단풍이 갑자기 안타깝게 느껴진다. 아니다, 내 마음이 안타깝다.

아름다운 단풍을 단풍으로 보고 싶다. 그냥 단풍으로만 느끼고 싶다.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을 자연으로 느끼고 싶다. 사회는 정의로운 민주가 충만해야 하고, 촛불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아하는 산행, 좋아하는 자연을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누려야 한다. 광주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페이스북에 올라온 광주 금남로 촛불의 모습을 훔쳐 보았다. 밤이 늦어 촛불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두륜산 시내와 단풍
 두륜산 시내와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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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연못 위 단풍
 해남 대흥사 연못 위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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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두륜산, #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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