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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공항(2005. 7.)
 평양공항(2005. 7.)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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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1995년 8월 5일 11시 30분 조선민항 고려항공기가 베이징공항 활주로를 이륙했다. 여객기가 고도에 진입하자 곧 여승무원이 수레(카트)에다 여러 가지 음료수를 싣고 왔다. 준기 부부가 망설이자 승무원은 배단물을 권했다. 그것을 마시자 배맛에 사이다 맛으로 입안이 산뜻했다. 이어 기내식이 나왔다. 오랜만에 먹는 고국의 밥이 아닌가. 기내식은 도시락으로 맛이 아주 담백했다. 승무원이 준기 부부의 차림과 행동이 여느 손님과 달라 보였는지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손님, 무슨 일로 평양에 가십니까?"
"신행 가요."
"네에?"

승무원 눈이 커지며 깜짝 놀랐다.

"휴전선 때문에 늦었네요."
"아, 네. 기러세요. 오데서 오시는 길입니까?"
"미국에서 왔어요."
"아, 네. 아주 멀리서 오셨구만요."

승무원은 계속 놀란 표정이었다. 준기가 불쑥 끼어들었다.

"결혼 후 처음 시집 가는 길이야요."
"네에! 오마나 매우 귀하신 려행이십네다."
"기런 셈이디요."
"오마니께서 아주 반가워하시겠습네다."
"아마 기러실 겁네다."
"손님, 지금 기분이 어떠십네까?"
"비행기를 탄 기분입네다."
"지금 비행기를 타셨지 않습네까?"
"기래서 비행기를 탄 기분이라고 했디요."
"손님은 우스갯말을 잘두 하십네다. 아무토록 두 분 즐거운 고향방문 려행이 되십시오."
"고맙습네다."

평양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북한 어린이들이 특기교육을 받고 있다(2005. 7. 21.)
 평양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북한 어린이들이 특기교육을 받고 있다(2005. 7. 21.)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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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공항

기내 창으로 밖을 내다보자 고려항공기는 어느새 조중 국경선을 넘어 신의주 상공에 접어들었다. 준기로서는 자나깨나 그리던 고국강산이 아닌가. 준기의 심장은 요동쳤다. 순희가 미리 준비한 신경안정제 약을 꺼냈다. 준기는 그 약을 입에 넣고 생수를 마셨다. 조금은 감정이 가라앉는 듯했다. 곧 여승무원이 우리말과 영어로 안내방송을 했다.

"우리 비행기는 지금 신의주 상공을 날아가고 있습니다. 잠시 뒤 우리 비행기가 평양공항 땅에 닿을 것이니, 손님 여러분은 지금 바로 안전띠를 매야겠습니다. 현재 평양의 기온은 섭씨 29도이고 날씨는 매우 맑습니다. 그럼 손님 여러분의…."

그 방송에 준기는 다시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45년 만의 귀향이 아닌가. 북받치는 감정을 자제하고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마침내 고려항공기가 평양공항 활주로에 닿으면서 언저리 산천이 기내 창 밖에 펼쳐졌다.

미루나무, 버드나무, 소나무, 아카시아나무… 벼가 익어가는 논, 콩밭, 옥수수밭, 그리고 어디선가 울려오는 듯한 매미소리….

준기는 평양공항이 아니라 남녘 여수나 원주공항에 내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평양공항 청사 위에 김일성 주석의 사진만 없다면 남녘의 여느 중소도시 공항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언저리 풍경이었다.

준기는 비행기에서 내려 땅을 밟았다. 활주로에서 조금 떨어진 공항 청사 위에는 '평양', 그리고 대형 김일성 주석 초상, 'PYONGYANG'이라는 붉은 글씨가 일렬로 새겨져 있었다. 준기는 만감이 교차했다. 순간 울컥한 감정이 북받쳐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하지만 준기는 그런 감정을 극도로 자제했다.

준기는 평양공항 청사로 걸어가면서도 현실이 아닌 꿈만 같아 계속 언저리를 두리번거리며 심호흡을 했다. 준기가 내린 곳은 분명 평양이요, 현실세계였다. 준기에게는 45년 만에 다시 밟아보는 조국 땅이었다.

비무장군사분계선에 세울 표지판들(1953. 7. 31.)
 비무장군사분계선에 세울 표지판들(1953. 7. 31.)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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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청사

공항 활주로에는 다른 나라 비행기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활주로뿐 아니라 공항 청사도 매우 고즈넉했다. 공항청사에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대기실로 나오자 두 사람이 손을 내밀며 활짝 웃고 있었다.

"김준기 선생 내외분이십네까?"
"네. 그렇습네다."
"해외동포위원회 리동구입네다."
"홍남표입네다."

준기 부부는 그들이 내민 손을 잡았다.

"저희 부부를 초청해주셔서 고맙습네다."
"두 분의 고향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네다."

준기 부부는 해외동포위원회 북녘 두 선생에게 거듭 고맙다고 인사했다. 북녘 선생들은 볕에 그을린 탓인지 얼굴도 까맣고 손도 까칠했다. 준기는 어머니나 동생들이 공항에 마중 나오지 않았을까 하여 공항 청사에서 계속 언저리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준기의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부풀었던 고무풍선이 펑 터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준기는 혀를 깨물며 극도로 감정을 자제했다. 45년 만의 고향방문, 부모 상봉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겠는가. 그래도 자기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고향방문을 먼저 한 윤성오 목사가 출국 전에 충고한 말이 새삼 떠올랐다.

"참고 견디는 자만이 열매를 딸 수 있디요. 갸네들이 하자는 대로 느긋하게 기다리시라요."

준기는 그 말을 곱씹으며 공항청사를 빠져나갔다. 청사 바깥은 더운 열기와 함께 가까운 숲속의 매미가 준기 부부의 고향방문을 환영하는 듯, 요란하게 울부짖었다.

유엔군 포로들이 반전 플래카드를 들고 시기지를 행진하고 있다(서울, 1950. 8.)
 유엔군 포로들이 반전 플래카드를 들고 시기지를 행진하고 있다(서울, 1950. 8.)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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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태그:#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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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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