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에 위치한 대형마트 M에서 한 사람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잘 걷던 아이는 픽 쓰러진다. 유독가스다. 누군가가 소리친다. 모두들 에스컬레이터로 돌진한다. 짧은 시간에 빠른 속도로 모인 에스컬레이터는 옆구리 터진 김밥 마냥 사람들을 밖으로 추락시킨다. 사람들의 공포는 극에 달하고 광기 어려진다.
이것은 소설 온다 리쿠의 소설 <Q&A>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뭔가 신변에 위협이 온다 싶으면 사람들은 진위여부를 따지기 앞서 줄행랑치기 마련이다. 현대화의 핵심인 대형마트라는 공간, 그리고 주 아이콘 에스컬레이터를 소설 주 무대로 설정하고 그 위에 공포를 뿌려 놓은 작가는 테러나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 작가는 이런 형식을 토대로 인간 삶 면면을 건드려댄다. 인간 소외 현상부터, 물질만능주의 폐해, 인간의 근본적인 이기심 등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이 초조해하는 마음을 다독여준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단답형 질문과 냉소적인 대답으로 구성된 이야기나이, 직업, 성별이 각기 다른 사람들을 하나둘씩 불러 그날 참사에 대해 묻는 형식으로 챕터는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베스트3으로 꼽는 사연이다.
첫 번째 이야기(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남자) 부모님을 잃은 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잠을 청하다, 결국 자신이 꾸린 새 가족까지 파괴시키는 한 남자의 이야기. 가족을 또다시 잃을 수 없다는 남자의 '절절함'은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의미가 남다르거나 가족의 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독자들의 레이더에 쉽게 잡힌다.
두 번째 이야기(사고 당시 '발'만 떠오른다는 사무직 여자) 작가 자신이 빙의한 채 써내려가는 듯한, 디테일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에피소드도 있다. M에서의 사고 때문에 뼈에 금이 갔던 41살의 사무직 여자는 이상하게도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넘어졌을 때 보았던 눈앞에 있던 사람의 발이다. 빨간 양말 위에 보라색 덧버선을 신었던 그 발을 보며 "양말을 겹쳐 신고도 용케도 신발에 발이 들어가는 군"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만 떠오른다는 여자는, 뒤이어 아마도 이것은 "발을 떠올리는 습관을 들여서 무의식적 중에 사건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게 아니었냐"는 남편의 말을 덧붙인다.
세 번째 이야기(비디오를 판독하며 죽음을 목격한 대형마트 M측 고문 변호사) 사고의 후유증은 피해자에게 한한 것은 아니다. 대형마트 M측에 서서 최대한 피해 복구 비용을 최소화하려던, 고문 변호사팀에서 일하던 다음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다.
비디오테이프에서 무엇을 봤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시작으로 남자는 그가 봤던 검은 덩어리가 실상 에스컬레이터 밑에 쌓여 있는 사람들이었다며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그렇다. 테이프 따위 분석하는 게 이렇듯 고통스러울지 몰랐던 그는, 결국 도망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텅 빈 눈, 텅 빈 얼굴. 다들 무표정한 것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들의 가족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을 지켜보면서 M측에 서서 조금이라도 M에 유리하도록 전략을 짜는 자체에 혐오감을 느꼈던 그는 '일차적으로' 마음의 동요가 일어났다.
더욱이 뒤이어 나타난 진실. 실제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그 날 M에 온 그로서는 이중적인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그가 그토록 죽이고 싶도록 싫어했던 그녀, 그 남자의 전처였던 그녀가 이 참사로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인터뷰 형식을 빌어 남자의 마음을 한 자락 한 자락 벗겨내지만 그 속살은 직접 보는 순간은 놀라웠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다양한 감정을 이토록 섬세하고 예리하게 끄집어내어 펼쳐내는 형상을 보고 있자면 아이러니하게도 위안을 받는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니구나, 싶어서다.
대참사는 있는데 원인은 없다 세상에는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들조차도 의미를 부여해 Q&A 설문지를 만들어내고, 기를 쓰고 답을 완성해간다. 이 소설 역시 이번 참사에 대해 사람들을 불러 Q&A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질문은 명확할지 모르겠지만 답은 항상 똑 떨어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사람들의 모호한 답을 빌어 이러한 모호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참사는 묘한 기운, 잘못된 공포로부터 시작해 무지에서 비롯된 대참사일 수도 있다고 슬쩍 찔러 준다.
비록 이번 사태를 면면히 분석해 보면서 사람들의 대답이 대부분 비확실성에 기대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지만 이는 정답이 없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람들의 인터뷰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대형마트에 화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한 남자는 의식 속에서 문득 어릴 적 집에 있던 개에 대한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집에 와서 개집을 본 순간 개가 이미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말로 시작하는 그는 이번 참사도 일어나기도 전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혹은 예전에 M을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처음 그 건물을 본 순간 "어이쿠, 어째 비석 같은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증언까지.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운 같은 것이어서 문답 따위 무용지물 되기 십상이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이 "부조리하고 이유가 없는 대량 사망 사건"의 원인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부질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다. 이유가 없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대가 온다 리쿠답게 소설은 사건을 보여주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형식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사건의 원인은 없고 대참사만 있었다, 라는 결말을 보여주며 그는 이번에는 사회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들의 공포에 대해 촘촘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중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몇몇 공포를 건드려주는 에피소드는 지극히 사실적이어서 오랫동안 맘에 남는다.
온다 리쿠는 온갖 에피소드를 툭툭 던져 펼쳐버린다. 흡사 노점 판매대에 사람들의 필요로 하는 물건들 책, 과일, 손목시계 등을 올려놓듯이. 이런 점 때문에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을 순간 오싹하게 느껴버린다.
덧붙이는 글 | (온다 리쿠 씀 |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07. | 1만2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