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사당역을 출발해 경부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오늘(11월 12일)은 J부부와 함께 1박 2일 여정으로 지리산으로 가을 여행으로 떠나기로 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차량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기흥휴게소에 도착하니 오전 7시 30분. 이곳에서 우리는 J부부와 만나기로 했는데, 우리가 예정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이럴 땐 먼저 도착을 한 사람이 오히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20여 분쯤 지나니 J부부가 도착했다. 여행길에 동반자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많이 기다렸지요?""천만에, 우리도 방금 도착했어요."우리는 J가 준비해온 김밥에 어묵국과 라면을 시켜서 아침을 먹었다. J와 함께 여행을 갈 때에는 언제나 그녀가 김밥을 준비해 온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강남 어디에 있다는 김밥인데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는 김밥이다.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우리는 장수IC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고속도로에서는 함께 간다는 것이 어렵다. 차량이 홍수를 이루고 고속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기 때문에 서로 놓치기 십상이다.
고속도로에서 약속을 할 때에는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길로 빠지기 때문이다. 나는 내비게이션에 '장수읍'을 찍고 예정대로 대전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탔다. 장수IC를 바져 나올 때쯤 J로부터 전화가 왔다. J는 내비게이션에 '장수IC'를 찍고 갔는데 회덕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함양까지 갔다고 한다.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에는 지도를 보고 전체적으로 가는 길을 체크를 했기 때문에 길이 크게 엇갈리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이 생긴 이후로는 너무 기계에 의존하다 보니 길이 엉뚱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도로가 복잡해져서 내비게이션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비게이션도 고장이 나서 엉뚱한 곳으로 길 안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쪽 내비게이션 아가씨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닌가 봐요?"요즈음 남자들은 세 여자 말을 들어야 성공을 한다는 말이 있다. 엄마, 아내 그리고 이 내비게이션에서 길 안내를 하는 '아가씨'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다음날 우리는 서울로 돌아올 때 정안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순천만을 출발했다. 물론 두 사람 다 내비게이션에 '정안휴게소'를 찍었다.
나는 순천-구례-전주-정안휴게소로 가는 길을 미리 체크를 하고 출발을 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의 아가씨는 순천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라고 안내를 했다. 나는 이곳 길을 잘 알기 때문에 내비게이션 아가씨의 말을 무시하고 구례로 가는 17번 도로를 탔다. 구례에서 전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려고 하는데 J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비게이션 아가씨가 남해고속도를 타라고 해 지금 진주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 물론 그쪽으로 돌아가도 서울로 가는 길은 있겠지만 많이 돌아가는 길이다. J에게 진주에서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타는 것을 잊지말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우리도 장수를 거쳐 통영-대전간 도로를 타고 금산 인삼랜드휴게소에서 가까스로 만났다. J는내비게이션 아가씨 말만 듣다가 엄청 헤맸다고 한다. 처음에는 순천만에서 송광사 쪽으로 길을 안내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2차선 지방도로를 타고 한참을 갔다고 한다. 그리고 주암IC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탔다는 것. 덕분에 구경은 잘 했지만 무척 당황했다는 것. 그러니 세 여자 말을 잘 들어야 출세를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아마 그쪽 내비게이션 아가씨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닌가 보지요?""호호, 그러게 말이에요. 그쪽 내비 아가씨는 구례 아가씨이고 우리 쪽은 서울 아가씨인가 봐요."우리는 우스게 소리를 하고 웃고 말았지만 상황은 자못 심각했었다. 우리는 IT시대, 스마트 폰 시대, 내비게이션 등 최첨단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너무 기계에 의지를 하다 보니 사람이 수동적이 되고 창조성은 물론 인간성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아무리 최첨단 기계가 정확하고 편리하다고 할지라도 사물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마음으로 보는 눈은 기계처럼 정확하지는 않을지라도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