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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올해 누구로 정했어요? 산타요."

아침에 출근하는 차 뒷자리에 앉은 아들이 뜬금없이 묻는다.

"음… 글쎄. 딱 한 사람 정해놓은 건 아니구 몇 사람 후보에 올라있기는 해. 근데 그거 말해주면 반칙이잖아."

엊그제까지는 벌써? 이랬는데 눈이 내리니 당연하게 크리스마스 리스를 걸어 둘 준비를한다.
▲ 미리 크리스마스 엊그제까지는 벌써? 이랬는데 눈이 내리니 당연하게 크리스마스 리스를 걸어 둘 준비를한다.
ⓒ 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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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고 어제는 첫눈까지 내리니 요녀석들 또 마음이 급해지긴 하는가보다. 생각해보니 이제 한 달 정도 밖에 안 남은 것 같다 크리스마스도.

"한울아, 닌 누가 산타해주면 좋겠는데?"
"음… 나는 작은이모 그리고 연우언니 오빠는?"
"나는 재민이 형아, 형아가 엊그저께 내가 말도 안 했는데 검정 지우개랑 스톱워치랑 막 챙겨주더라. 형아는 내가 달라고 안 해도 쳐다보기만 해도 다 주는데… ."

그러더니 아이가 갑자기 시무룩해진다.

"그런데 왜? 형아가 산타해주겠지."
"형아가 너무 멀리 살아서 자주 못보니까 문제죠. 형아는 내가 착한 일 하는 거 자주 못 보고 내가 진짜 진짜 갖고 싶은 거 알아야 하는데 너무 멀어요, 엄마."
"아니 뭐가 그렇게 갖고 싶은데?"
"우리 반 애들 몇 명이 갖고 있는 왕딱지. 그거 선물로 받으면 좋겠는데… 아휴."

아무런 대가없이 무턱대고 갖고 싶은 걸 다 사주는 엄마가 아니란 걸 너무 잘 알기에 힘이 빠지나보다. 이번에도 심부름 좀 더 해서 용돈 모아서 사라고 말할까? 하다가

"엄마가 형아랑 다른 산타 될 수도 있는 사람들한테 소문내 줄게. 대신 너는 착한 일 많이 해야해. 네가 포춘쿠폰 모은 거 사진 찍어서 카스에 올려놓고 다들 보라고 소문내 줄게."

우리집 아이들은 용돈을 거져 얻을 수 없다. 명절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에만 받을 수 있고 오랜만에 오시는 친척분들에게만 받을 수 있다. 장사를 하는 집이다보니 아이들이 돈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할까봐 아무런 노력없이 생기는 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막아놨다. 손님들께서 아이들 이쁘다고 주시는 천원 이천원도 아이들 스스로 단호하게 거절하게끔 교육을 시켜놓았다.

"개안타, 받아도 된다. 어른 손 부끄럽꾸로 그라노? 이번 한 번만 받아라 아나~꽈자 사먹어라 아나~"

이렇게 주시려는 분들께는 정중하게 설명을 드린다.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이들에게 교육 중이니 부탁드린다고. 아이들이 착한 일을 하거나 예쁜 말을 많이 하거나 심부름을 하면 포춘 쿠키를 준다.  쿠키를 쪼개서 꽝이 나오면 쿠키만 먹고 당첨 쪽지가 나오면 천원을 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걸 가지고 고민을 한다. 맛있는 간식을 사먹을 것인가 아니면 소원저금통이나 마음대로 저금통에 분산 투자를 해 놓을 것인가.

아이들은 알아서 7대3 정도로 나누어 넣어둔다. 자전거를 사기 위한 소원 저금통에 700원 출출할 때 사먹거나 구슬을 필요할 때 사기 위한 마음대로 저금통에 300원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큰 아이의 마음대로 저금통에는 몇 달 전 아빠에게 레고를 사기위해 빌려간 돈을 갚느라고 꺼냈기 때문에 몇 푼 안 남아있다. 그래서 맥이 빠졌나보다.

"걱정마 소문 많이 많이 내줄게. 우리 아들 태권브이보다 더 용감하고 착한 일 많이 한다고."
"와~좋겠다. 엄마 저두 저두 오빠처럼 소문 내주세요. 저는 갖고 싶은 거 나중에 생각나면 말해줄게요. 저 오늘 아침에도 착한 일 해서 받은 거 알죠?"

학교에 가는 아이 표정이 드디어 살아나기 시작한다. 무기가 하나 생기는 기분이 바로 이런 건가? 큰아이가 다섯 살 때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고 돌아와서는 속았다는 표정으로,

"엄마, 산타할아버지 없는 거 확실해요. 오늘 산타할아버지 옷입고 선물준 사람이 이사장님이었어요. 목소리가 딱 이사장님 이었다니까요."

이 세상에 산타는 없다는 말을 큰 아이에게 처음 들은 날. 어떻게 이야기하지? 앞으로 작은 아이도 있는데 어찌 설명을 하지?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고 이해시킬 건 시켜야겠다 결심을 했다. 한순간 세상의 모든 어른들을 다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특히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가문에 말이다.

"찬아, 산타 할아버지가 원래 성니콜라스 할아버지인 건 알지? 책에서 봤지요?"
"네. 봤어요. 근데 오래 전에 돌아가셨잖아요. 그러니까 이젠 없죠."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의 자식들은 없었을까? 그 자식들이 지금까지 계속 아이를 낳고 또 낳고 가문이 이어져 왔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을까 생각해봐. 자기 아버지인 산타가 하던 일을 자식이 하고 손자가 하고 또 손자의 손자들이 하면서 내려온 거야. 그리고 전세계에 퍼져서 수많은 산타가 생겨나고 말이야. 착한 일을 하는 아이들을 평소에 계속 지켜보고, 잘 기억해두었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가 되는 거지. 엄마랑 아빠도 해마다 어떤 아이들의 산타가 되잖아. 어떤 때는 지환이 형아 또 어떤 때는 다정이 누나. 어린이집 원장님이나 이사장님도 평소에 너희들을 자주 보잖아. 너희 노는 거 먹는 거 행동하는 거 잘 봐뒀다가 그날에는 산타가 되는 거야. 전 세계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 지금까지 우리 아들, 딸 선물은 엄마 아빠가 준 건 아니야. 분명히 산타가 주고 간 거야. 할머니나 할아버지였을 때도 있고 이모나 이모부 고모나 고모부가 됐을 때도 있어. 그러니까 산타는 있는거야. 많은 사람들이 산타가 되어서 너희들 지켜보고 선물로 응원해주고. 어른들이 거짓말 하는 게 아니지?"

그렇게 큰아이 작은아이에게 해마다 설명을 해줘서 이제는 저희 아이들은 산타가 굴뚝으로 들어오지는 않지만 평소에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잘 지켜보고 있다가 현관에 걸어둔 양말이나 주머니에 선물을 넣어준다는 건 아는 것 같다.

눈이 날리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비슷한 세상으로 모여들 수 있다.
▲ 눈은 어린아이다. 눈이 날리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비슷한 세상으로 모여들 수 있다.
ⓒ 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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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맘때부터는 바짝 긴장을 하고서는 동네에서 마주치는 어른들께 인사도 더 잘하고 심부름도 잘하고 이쁜 말도 더 많이 쓰려고 하고 싸우지도 않으려 한다. 때로는 시키지 않은 일들을 찾아서 서로 하려고 하다가 일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런 순수한 모습이 오히려 사랑스럽고 깜찍하다.

이웃 어른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친지들일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더욱 잘하려하고 평소에 갖고 싶은 걸 열심히 얘기도 한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자기네들도 산타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 평소에 학교나 유치원에서 친구들 잘 도와주고 시비 걸지 않고 고운 말 쓰고 아니면 좋아하지만 말을 하지 못한 친구를 잘 지켜보다가 몰래몰래 가방에 선물을 넣어줄 거라고 신이 났다. 아이들은 뭔가 비밀스러운 행동을 도모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되고 신나니까.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비밀인데 옆가게 비빔밥집 세 살 꼬마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 막내랑 참 잘 놀고 먹을 것도 잘 나눠주고 인사도 참 잘한다. 우리 아이들이 눈치를 챘을까? 또 다른 아이는 음… 비밀이다. 오마이에도 비밀. 아무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

당신은 올해 누군가의 산타가 되어줄 건가요?


태그:#산타클로스, #어린이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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