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앙이 아니라 씨앙이에요. 하고 싶다, 썅(想.). 욕을 하세요, 욕."아침부터 한바탕 '욕' 소동에 웃음보가 터진다. 50세 전후부터 60대까지 중년들이 중국어를 배우느라 벌이는 유쾌한 현장이다. 이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한 번씩은 중국에 가서 말이 안 통해 애를 태워봤기에 중국 사람들과 멋지게 대화하고 싶단다.
하지만 중국어는 낯설 뿐더러 어렵다. 한자(漢字)도 중고교 시절 배운 것과는 다른 간자체라 처음 보는 게 대부분이다. 게다가 중국어는 올리고 내리고 내려갔다 올라가는 등 4성으로 구분된 성조(聲調)까지 익혀야 해 결코 만만치 않다.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의 한 강의실. 중국어강의를 무료로 진행하는 노정배(58)씨는 다짜고짜 "중국어는 16시간만 공부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한 수강생이 "에이, 어떻게 16시간으로 중국어가 되냐"고 묻자 노씨는 진지하게 설명한다.
"실제 중국어를 완벽하게 하려면 7년 이상 공부해야 해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학문할 게 아니잖아요? 말만 하면 되잖아요. 취(간다), 라이(온다), 칸(본다), 츠(먹는다), 흐어(마신다), 마이(산다), 씨앙(하고 싶다), 씨환(좋아한다) 등 몇 개 단어만 알면 돼요. 진짠지 아닌지 저랑 일주일에 2시간씩 2달만 공부해보자고요.""중국어, 16시간만 공부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수강생 중 지난해 고등학교 교장을 정년퇴임한 홍태식(64)씨는 "앞으로 30년 이내에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고등학교에선 제2외국어로 무조건 중국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여행 경험이 몇 번 있다는 홍씨는 "중국에 갔다 무사히 돌아 올 수 있는지는 중국어를 말하는 것보다 알아듣는 것이 관건"이라며 웃는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왕복 3시간 동안 전철을 타고 강의를 들으러 오는 정경옥(57)씨는 "나이가 들어선지 방금 배운 것도 돌아서면 잊게 된다"며 "이렇게 외국어를 배우니 삶에 활력이 생긴다"고 미소를 지었다. 정씨는 지난해 말 퇴역한 육군 소장의 부인으로 "좀 편안해지려 했더니, 이제는 중국어 때문에 새롭게 긴장하게 됐다"면서도 싫은 표정이 아니다.
이런 중년을 대상으로 노씨가 중국어강의를 하게 된 건 건강 탓이었다. 노씨는 파주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중 건강이 무척 악화됐다고 한다. 그때 그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이리 죽나 저리 죽나 독학하던 중국어 공부나 맘껏 해 보자며 유학을 결심한다. 가족을 두고 혈혈단신 중국으로 떠난 것이 지난 2006년, 그의 나이 쉰 살 때이다.
그는 중국 보하이(渤海)대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아들딸 벌되는 중국학생들 틈에서 공부하며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제 석사학위 논문 내용이 '외국인에게 중국어를 교육시키는 방법 연구'였다"며 "중국 교수들이 깜짝 놀라며 '우수' 평점을 줬을 만큼 이래봬도 중국어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나름 전문가"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수강생들의 직업은 은행 지점장, 중견기업 임원, 학교 운영위원, 신문기자, 공무원 등 다양하다. 그 외 주부들도 독서지도를 하거나 문해(文解) 교사과정을 수강하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벌인다. 세상 돌아가는 정보에 민감하고 밝은 탓에, 일찌감치 중국을 주목한 이들 중 다수는 자녀를 중국으로 유학보내기도 했다.
지난해 국내 대학을 다니던 아들을 중퇴시켜 유학 보낸 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마저 중국으로 떠민 최도순(51)씨는 "회사에서 상무로 일하며 중국에 능통한 인재를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며 "나라도 배워서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에 틈틈이 강의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본인도 회사를 다니며 융합기술 관련 석사 학위를 땄던 최씨는 "석사 때 너무 고생해 힘든 건 알지만 기회가 된다면 중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아보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2년 전 아들을 유학 보낸 이강선(53)씨는 "우리 아들이 중국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 한국말을 하면 기사가 '정말 한국 사람이냐며 깜짝 놀란다'고 하더라"며 "이제는 먹고 말하는 게 중국이 더 좋다고 할 만큼 중국 사람이 다 됐다"고 말했다.
"미국을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중국이 유일"중국 유학과 관련해 노씨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현재 중국에 가 있는 한국유학생은 6만3천여 명 정도고 이들 중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2만4천여 명이다"며 "한국학생들은 대개가 외국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는 대외국인본과에서 공부하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중국학생들과 공부하는 중국인본과를 졸업하는 인재가 필요해요. 중국과 외교, 정치, 무역 등을 위해서는 중국학생들과 꽌시(관계, 關係)를 잘 맺는 게 중요해요. '동북공정에 대한 역공정'이 뭔 줄 아세요? 중국에서 중국친구들과 함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가는 거예요. 그런데 말로는 중국, 중국 하면서 현재 중국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조차 중국어를 못 해요. 제가 중국어를 강의하는 이유, 아시겠어요?"세계 경제와 안보는 G2(Group of 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돌아간다. 중국을 아는 것은 시대의 큰 흐름이다. 우리나라의 수입과 수출 1위국 역시 중국이다. 강의를 듣는 이들은 "미국을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중국이 유일하다"며 "중국어를 익히는 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 중구의 롯데백화점 본점 외벽에 걸린 홍보문구는 중국어로 바뀐 지 오래다. 서울 명동이나 제주도에 가면 중국 사람들로 붐빈다. 명동 거리의 수많은 상점들은 밀려드는 중국인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중국어가 가능한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중국어가 유창하고 중국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인재를 찾는 게 당면 과제다. 하지만 중국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가능한 일자리는 대부분 조선족들의 차지다.
그런 점에서 중년들의 중국어 공부는 의미가 있다. 수강생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이강미(48)씨는 "얼마 전 명동에서 길 가는 중국인들을 만나 배운 데로 써먹었더니 진짜 대화가 되더라"며 "앞으로 언제 어디서 중국인을 만나더라도 이젠 안 무섭다"고 웃었다.
취재를 마무리하며 수강생들에게 나이를 물었다. 그랬더니 또 한바탕 소동이다. 개인 사업을 하며 학교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는 정혜림씨가 "올해 딱 쉰이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홍태식 전 교장이 너스레를 떤다.
"50이라고요? 야, 꽃띠네 꽃띠. 내가 그 나이면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겠네. 이제 100세 시대니까 부지런히 중국어 공부하세요. 저보다 훨씬 오래 써 먹을 거 아니에요?" 까르르~ 일제히 웃음꽃이 피어난다. 지켜보는 이조차 미소 짓게 만드는 만학의 즐거움은 덤. 중장년들의 좌충우돌 유쾌한 중국어 따라잡기는 내일도 계속된다. 또 봅시다~ 짜이찌엔(再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