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일 역사문화 교류를 하러 충주를 방문한 구마모토의 일한 문화교류 연구회는 금년 심포지엄의 테마로 '카쿠레 키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 카쿠는 '숨은'이라는 뜻으로 지하 또는 잠복을 의미한다. 키리시탄이 이처럼 잠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정적인 이유는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금교령(禁敎令)을 발표하고 선교사에 대한 국외추방을 명했기 때문이다.
카쿠레 키리시탄이 도대체 뭐지?이후 신부의 추방과 신자들의 순교가 줄을 이었다. 1644년 최후의 잠복 사제였던 고니시 만쇼(小西 マソショ)가 순교하면서 키리시탄은 완전히 잠복하게 되었다. 그래서 1644년을 잠복시대의 원년으로 본다. 이러한 잠복시대는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끝날 기미가 보인다. 1859년에는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일본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1862년 니시자카(西坂)에서 순교한 26명의 키리시탄이 성인반열에 오른다.
이를 통해 잠복시대는 끝이 나고 재건과 부활의 시대가 찾아온다. 1863년 베르나르드 프티쟝(Bernard Thadee Petitjean: 1829-1884) 신부가 나가사키에 부임했고, 1865년 2월 19일 오우라(大浦) 천주당을 봉헌하면서 천주교 재건의 시대를 연다. 오우라 성당은 1862년 시성된 26위 순교성인에게 봉헌되었다. 그리고 3월 17일 우라카미(浦上)의 카쿠레 키리시탄이 오우라 천주당을 찾아온다. 그들은 프티쟝 신부를 만나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한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당신과 같은 마음입니다... 산타 마리아상은 어디에?" 프티쟝 신부는 이들을 제대 오른쪽 성모자상 앞으로 데리고 간다. 이때의 모습이 '키리시탄의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오우라 천주당에 부조되어 있다. 이것은 키리시탄 발견 100주년을 기념해서 1965년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라카미(1867)와 고토(五島: 1868)에서는 카쿠레 키리스탄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었다.
1868년 메이지유신이 선포되자 서방국가들은 메이지 정부 수반이었던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에게 항의했고, 종교의 자유를 요구했다. 이에 메이지 정부는 우라카미와 고토의 신도를 사면한다. 그리고 1873년에는 기독교 금지령을 철폐하고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다. 이를 통해 일본에서 기독교가 완전히 부활하게 된다. 1889년에는 일본의 헌법에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조항이 들어간다. 크리스천은 이제 공식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고, 1895년 우라카미 천주당을 새로 짓기 시작한다. 이 성당은 1915년 완공되었고, 나가사키 주교좌성당이 되었다.
카쿠레 키리시탄에 대한 심포지엄 이야기
그리고 금년 6월초 '일본과 한국의 기독교 수용사'라는 제목으로 아마쿠사(天草)에서 심포지엄을 열자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 측에서 2명이 발표를 하고 일본 측에서 3명이 발표를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주제는 기독교도가 박해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중점을 두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최종 결정된 우리 측 논문 제목은 '초창기 조선 천주교의 수용과 신앙공동체 형성'과 '순교자 이국승과 천주교의 충주 전래'였다.
이와 대비되는 일본 측 논문은 '아마쿠사 5인방의 대포와 천주교', '16세기 말 아마쿠사와 콜레지오의 이전 설치',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천주교 신도 카쿠레 키리시탄과 신앙의 양상'이었다. 여기서 아마쿠사는 쿠마모토(熊本) 서쪽, 나가사키(長崎) 남쪽에 있는 큰 섬을 말한다. 행정구역상으로 구마모토현에 속해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구마모토를 지나간다. 콜레지오(Collegio)는 컬리지에 대한 포르투갈어로 우리식으로 말하면 대신학교(大神學校) 또는 신학대학이 된다.
이번에 이처럼 카쿠레 키리시탄 이야기가 심포지엄의 주제가 된 것은 2015년에 '나가사키와 아마쿠사의 천주교 문화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 측 노력 때문이다. 2015년은 오우라 천주당에서 카쿠레 키리시탄이 발견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에서는 1549년 프란시스코 자비에르(Francisco de Xavier)가 가고시마에 상륙, 그리스도교를 전하면서 선교시대가 시작되었다. 1614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천주교 금교령으로 선교사 추방과 순교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644년부터 잠복 사제였던 고니시 만쇼의 순교와 함께 잠복시대가 시작되었다. 재건의 시대는 1863년 프티쟝 신부에 의해 열리고, 1873년 키리시탄 금제령이 철폐되면서 부활의 시대가 열렸다. 이들 전 과정을 가장 자세하게 보여주는 논문은 아마쿠사시 관광문화부 세계유산 추진실장인 히라다 도요히로(平田豊弘)의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천주교 신도 카쿠레 키리시탄과 신앙의 양상'이다. 그는 천주교의 역사를 전래와 전개의 시대, 탄압과 잠복의 금교(禁敎)시대, 부활의 시대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아마쿠사는 어떤 곳인가?
아마쿠사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말이 '보물섬(寶島)'이다. 그것은 기독교와 남만(南蠻)문화가 이곳에서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남만문화는 포르투갈을 통해 들어온 서구문화를 말한다. 아마쿠사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환경 때문에 자신들이 사는 섬을 보도라고 부른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피부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 따스함이 넘치는 천연온천이 아마쿠사를 보물섬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마쿠사는 크게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가면서 오야노시마(大矢野島), 아마쿠사 가미시마(天草上島), 아마쿠사 시모시마(天草上島)가 있다. 그리고 행정구역은 가미아마쿠사시(上天草市), 아마쿠사시(天草市), 레이호쿠마치(苓北町)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아마쿠사시의 면적이 가장 넓고 인구가 가장 많다. 683km²에 8만 866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중 65세 이상 노인이 3만147명이나 된다.
아마쿠사시는 1970년대부터 계속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공부를 하기 위해 외지로 나간 젊은이들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은 농업과 어업을 중심으로 하고, 자연경관과 역사,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업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연평균 기온이 16.2℃로 온화한 편이다. 최고기온은 35.3℃이며 최저기온은 -3.1℃이다. 그렇지만 겨울에도 난류의 영향으로 서리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연평균 강수량은 1915mm로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는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관이 있다. 이를 보기 위해서는 구라다케(倉岳) 전망대나 오이다케(老岳) 전망대, 가라츠토게(烏峙) 전망대 등을 올라가야 한다. 또 바닷가를 좀 더 가까이서 보려면 묘켄우라(妙見浦)나 기카이우라(鬼海浦)로 가면 된다. 이들 포구는 석양이 특히 아름다운데, 기카이우라 석양은 일본 석양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온천은 주로 해안을 따라 발달해 있다. 시모다(下田) 온천, 우시부카(牛深) 온천, 아무리(愛夢里) 온천은 섬의 서남쪽에 분포하고 있다. 가미시마(上島)에 있는 스모토(栖本) 온천, 아리아케(有明) 온천, 마츠시마(松島) 온천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츠와마치(五和町) 앞바다에서는 돌고래가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고쇼우라(御所浦) 백악기 자료관에서는 공룡 등 다양한 화석을 볼 수 있다. 그 외 봄에 열리는 우시부카 하이야 축제, 여름에 열리는 아마쿠사 하이야 축제가 유명하다. 하이야는 일본의 전통 민요에 맞춰 추는 춤을 말한다.
그럼 아마쿠사에는 어떤 천주교 유산이 있지?
아마쿠사의 천주교 유산으로는 성당과 박물관이 있다. 성당으로는 오에(大江) 천주당, 사기츠(崎津) 천주당이 있고, 박물관으로는 혼도(本渡)의 크리스천관, 가와우라(河浦)의 콜레지오관, 오에의 로자리오관이 있다. 이들 중 성당은 1930년대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졌고, 박물관으로는 혼도의 크리스천관이 1966년 처음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10년 장소를 시로야마(城山) 공원으로 옮기고, 전시물을 아마쿠사 시마바라난을 주제로 개편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두 번째로 오래된 박물관이 1988년 오에 천주당 아래 세워진 로자리오관이다. 로자리오관은 카쿠레 키리시탄을 주제로 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1873년 천주교 금지령이 해제된 이후의 기독교 역사도 정리되어 있다. 세 번째로 세워진 것이 가와우라의 콜레지오관이다. 이곳에 전시된 대표적인 유물은 구텐베르크 인쇄기이다. 콜레지오는 1591년부터 1597년까지 이곳 가와우라에 있으면서 선교사를 양성했다.
1933년 봉헌된 오에 천주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가르니에 신부가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지은 성당이다. 오에 천주당은 아마쿠사 지역 천주교 부활을 알리는 성당으로 그 의미가 크다. 오에 천주당에 이어 1934년 지어진 사기츠 천주당은 고딕 양식이다. 하르브 신부가 바닷가에 지은 성당으로 오에 천주당에 비해 고졸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들 두 천주당 외에 토미오카(富岡)에 있는 크리스천공양비(供養碑)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