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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2일 저녁 군산시 수송동성당 정문 앞 풍경
▲ 수송동성당 현수막 지난 달 22일 저녁 군산시 수송동성당 정문 앞 풍경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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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이 얼마나 토론 문화에 미숙한지를 일상생활 중에서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네댓 명이 모여 얘기를 하다 보면 원줄가리 얘기가 오래 지속되지를 못한다. 금세 여줄가리 얘기로 빠져 버리고, 두 명씩 따로따로 다른 얘기를 주고받는 상황도 빚어진다. 원줄가리 얘기가 실종되어 버리는 상황은 대개 말꼬리 때문에 빚어지곤 한다.

이런 현상은 TV토론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대학교수를 포함하여 각계각층의 내로라 하는 명사들이 출연하는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원줄가리는 젖혀 놓고 여줄가리 얘기로 시간을 허비하는 현상을 허다히 보게 된다.     

우리 국민이 원줄가리를 쉽게 잊어 먹고 여줄가리 쪽으로만 집중하는 것도 오랜 습성일지 모르겠다. 우리네 생활 속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본말전도 현상은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조장되는 경우도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집단최면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에도 극명한 본말전도 현상이 전국을 뒤덮었다. 군산시 수성동성당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의 '불법부정선거규탄·대통령사퇴촉구 시국미사'로 빚어진 일이다. 의미심장한 시국미사 자체는 덮여 버리고, 박창신 원로사제의 강론 중에 나온 한마디로 말미암아 대대적인 '종북몰이'가 벌어지면서, 본말전도 현상이 창궐의 바람을 탔다.

하지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하신 성철 스님의 법어처럼 '본(本)은 본이요, 말(末)은 말'인 법이다. 여줄가리가 원줄가리를 덮어 버리는 현상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여줄가리 때문에 원줄가리가 사라지는 일은 만고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원줄가리는 다시 나타나고, 한 순간의 본말전도 현상 덕에 원줄가리는 더욱 확연히 실체가 드러나는 법이다.

한동안 고장의 이런저런 모임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조금은 거북하기도 했다. 군산시 수송동성당 시국미사에 참석한 내 얼굴이 TV 화면에 수없이 비쳐진 덕에 수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복된 처지가 됐다. 내게 이런저런 인사와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지난 달 22일 저녁 군산시 수송동성당 정문 앞 풍경
▲ 수송동성당 앞 지난 달 22일 저녁 군산시 수송동성당 정문 앞 풍경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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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친구들끼리의 상조회 모임 자리에서 '종북타령'을 들어야 했다. 한 친구가 하도 종북을 읊어대기에 그에게 종북의 뜻을 물었다. 북한을 옹호하고 추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 내가 북한을 옹호하고 추종한 것이 뭐냐고 물었다. 현 정부를 비판하고 물러나라고 하는 것부터 종북이라고 했다. 그럼 정부가 국가란 말이냐고 물으니 그게 그거 아니냐고 했다. 그 정도로 무식하고 사리분별을 모르는 친구와 말을 섞는다는 것이 하도 난망하여 그에게 "현 정부가 자네를 똥 보자기로 만들고 있네"라는 말을 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친구에게 '똥보자기론'을 설파해 주기로 마음 먹었다. 새누리당의 불법부정 선거 얘기부터 하자니, 그가 그건 아직 밝혀진 게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그걸 밝히려고 하니까 수사를 막기 위해서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을 찍어냈지 않았느냐고 하니, 설령 그런 불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박근혜 당선에는 별 영향이 없었을 거라는 말이 왔다. 그 친구는 그렇게 똥 보자기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똥 보자기가 되고 있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우리 동네 군수로 당선된 친구는 유세 때 말 한마디 잘못한 것 때문에 선거법에 걸려 법원 판결로 군수직을 잃었다. 그 한마디가 그 친구의 당선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지 않느냐고 하니,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는 몇 군데 재선거를 해도 별 문제가 없지만 대통령 재선거는 국가에 큰 혼란이 생기기 때문에 혼란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말도 했다.

"그래서 자네를 똥 보자기라고 하는 걸세! 지금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대로(大路) 한복판에 똥 무더기가 놓여 있네. 현 정권이 싸질러 놓은 불법부정 선거라는 이름의 똥 무더기일세.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떤 과정과 경로를 거쳐 싸놓은 똥인지 조사를 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그 똥을 제대로 치울 생각은 하지 않고 보자기로 덮으려고만 하네. 보자기로 덮는다고 해서 그 똥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도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건만 현 정부는 기를 쓰고 보자기로 덮으려고만 하네."

다행히 그 친구가 침묵하며 내 얘기를 들어주는 데다가 끼어드는 친구도 없어서 나는 발동이 걸린 형세로 '똥보자기론' 설파를 계속했다.

"똥 무더기를 덮고 감추려는 보자기들은 여러 가지가 있네. 그중의 하나가 '종북'이라는 이름의 보자기일세. 공안사건, 또는 공안정국이라는 이름의 보자기들도 있는데, 지금은 종북몰이라는 이름의 보자기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네. 종북몰이 바람을 일으켜서 그것으로 불법부정 선거라는 똥 무더기를 덮으려는 것이지. 그런다고 그 똥이 온전히 덮여지겠나. 더 문제만 커질 뿐이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정권이 국민들을 종북몰이라는 이름으로 내몰아서 똥 보자기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야."

지난 달 22일 저녁 군산시 수송동성당에서 열린 '불법부정선거규탄.대통령사퇴촉구 시국미사' 장면
▲ 미사 시작 지난 달 22일 저녁 군산시 수송동성당에서 열린 '불법부정선거규탄.대통령사퇴촉구 시국미사' 장면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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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몰이로 국민들을 호도해서 불법부정 선거라는 이름의 똥 무더기를 덮으려고 하니, 결국 국민들을 똥 보자기로 만들고 있는 수작이야. 대체 왜 그런 짓을 할까? 우리나라를 유신시대로 되돌리고 북한의 세습독재정권과 비슷한 성격의 독재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 과거의 유신독재와 군사정권은 북한의 독재정권과 상부상조하는 관계였어. 적대적 공생관계가 유지되어 왔다는 얘기야. 공안정국과 종북몰이에 광분하는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세습독재정권과의 공생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종북정권'인 셈이야. 사실상의 종북세력인 현 정권이 국민을 똥 보자기로 만들고 있는 오늘의 현상을 바로 보아야 해. 자신이 끝까지 똥 보자기 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와 맞서기도 했던 친구부터 입을 다물고 친구들 모두 내 얘기를 귀담아들으며 더러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니 고맙고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적대적 공생관계'의 뜻을 좀 더 설명해주고, 다시금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에서 자리를 마칠 수 있었다. 또 한 해가 기울어가는 덧없는 시간 속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은 지난 11월 22일 밤 7시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미사'를 열었다. 사진은 이날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충남 태안에서 온 지요하 신도 가족.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은 지난 11월 22일 밤 7시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미사'를 열었다. 사진은 이날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충남 태안에서 온 지요하 신도 가족.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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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불법부정선거, #종북몰이, #적대적 공생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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