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불망(寤寐不忘), '깨어있을 때는 물론 잠이 들어서까지도 그리워하는 마음'에는 진하고 꾸준한 그리움이 오롯합니다. 참으로 애틋합니다. 이런 그리움은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일편단심입니다. 오매불망은 사람을 빠져들게 하고 미치게 만듭니다. 진짜 꿈으로 꿀 수도 있습니다.
오매불망에 빠진 사람, 뭔가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은 오로지 한 가지만을 생각하고 있으니 언뜻 보면 반쯤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멍한 표정을 짓고 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오매불망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생기는 사랑의 전유물만은 아닌 가 봅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사람이 하면 마냥 지루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하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결과보다는 결혼하기까지 있었던 뒷이야기, 밀고 당기는 긴장감과 짜릿한 감정이 담긴 연애담이 훨씬 더 재미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부도 그렇고 과학도 그렇습니다. 과학시간에 선생님께서 하시는 과학수업, 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복잡하고 딱딱한 공식에 대입해 풀어나가는 고학은 마냥 딱딱하고 지루하기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있었던 이런 이야기와 저런 사연 중에는 의외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학에 담긴 재미있는 뒷담화 <친절한 과학책><친절한 과학책>(지은이 이동환, 펴낸곳 꿈결)은 결혼에 따르는 연애담처럼 과학에 담긴 뒷이야기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결혼 자체보다 연애시절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듯 잘 정리되고 입증되어 통용되고 있는 과학적 사실보다 훨씬 더 재미는 과학에 담긴 뒷담화 같은 내용입니다.
어느 날 멘델레예프는 63개로 이루어진 카드로 어질러져 있는 책상에서 연구를 하던 중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게 된다. 그의 꿈속에서 모든 원소들이 정확히 있어야 할 위치에 카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종이에 그것을 기록했다. 얼마 후인 1869년 3월 6일, 그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원소의 구성 체계에 대한 제안'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친절한 과학책> 109쪽-케쿨레는 벤젠의 고리형 구조에 대한 힌트를 꿈에서 얻었다. 그에 따르면 꿈에서 탄소와 수소 원자가 결합된 긴 사슬이 마치 뱀처럼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뱀 한 마리가 자신의 꼬리를 물어 고리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친절한 과학책> 114쪽-앞 인용 글은 멘델레예프가 원소주기율표를 작성하기까지의 과정에 있었던 일화이고, 뒤 인용 글은 케큘레가 벤젠의 결합 구조를 밝혀내기까지의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연구에 오매불망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일화들입니다.
모든 과학적 결과가 반드시 논리적이고 표준적인 연구에 의해서만 밝혀지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사고나 실수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어떤 착각에서 이뤄진 우연한 결과에서 얻어지기도 합니다. 그러함에도 모든 과학에 전제되는 건 진지한 관찰과 끊임없는 기록입니다.
책에서는 과학의 모든 분야, 물리, 화학 생물학, 지질학, 생태, 환경 등을 망라하는 모든 과학에 그림자처럼 담긴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은 에피소드 같고 어떤 이야기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원초적이고 신비롭습니다.
송로버섯에서는 수퇘지에게서 나는 것과 같은 냄새가 강하게 나기 때문이다. 암퇘지는 땅속 깊이 묻혀있는 송로버섯을 냄새로 확인하고는 그곳에 수퇘지가 있는 줄 알고 마친 듯이 땅을 파헤친다. 송로버섯을 찾는 암퇘지는 사람에 빠진 것이다. -<친절한 과학책> 290쪽-그러나 결혼하고 나면 남자는 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변하기 시작한다. 잡은 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다. 남자는 또 다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기회를 노리고 있다. 남자는 철저한 기회주의자다.그렇다면 남자는 어떤 여자를 선호할까? 간단하다. '젊은 여자'다. 남성들은 번식의 성공 확률이 높은 여성을 선호했다.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다면 자신의 후손을 많이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여성은 어떤 여성일까? 바로 '젊고 건강한 여성'이다."젊음은 매우 핵심적인 단서다. 여성의 번식 가치는 20세 이후에는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꾸준히 감소한다. 40세에 이르면 현저하게 낮아져서 50세에 이르러 0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여성의 번식 능력은 평생 유지되는 게 아니라 일부 기간에만 집중되어 있다. 남성의 선호는 이 단서에 초점을 맞춘다."(『욕망의 진화』114쪽) 그래서 동안童顔이 인기 있는 것이다. -<친절한 과학책> 169쪽-만화책 보다 재미있고 콜센터 상담원보다 친절한 과학책책을 읽다 보면 송로버섯을 찾을 때 암퇘지를 앞세우는 이유도 알게 되고, 나이 많은 남자들이 보다 젊은 아가씨들을 찾는 것이야말로 종족번식이라는 원초적 본능의 발로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무시해도 좋은 것 같은 아주 작은 숫자도 과학에서는 무척이나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이유도 알게 되고, 식물과 곤충들이 소통하고 번식해 나가는 수단도 알게 됩니다.
나일론이 발명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 이게 그렇게 발견되었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암컷 공작이 수컷 공작보다 화려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면 '아하! 이거 또한 종족번식을 위한 원초적 모성 때문이었구나'하며 감탄하는 횟수가 점차 늘어날 것입니다.
딱딱하게만 생각되던 과학이 말랑말랑해지며 부드러워지고, 골치 아프게만 생각되던 과학이 다시 또 되돌아보게 하는 호기심으로 바뀔 거라 생각됩니다. 책 제목이야 <친절한 과학책>으로 돼 있지만 '만화책보다 재미있고 콜센터 상담원보다 친절한 과학책'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친절한 과학책>┃지은이 이동환┃펴낸곳 꿈결┃2013.11.18┃1만 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