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때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풍자한 포스터를 붙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팝아티스트 이하(45, 본명 이병하)씨가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씨의 포스터는 예술창작의 표현으로 보기 충분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씨는 "예술의 특성인 '표현의 자유'라는 부분이 이번 판결에서 인정된 셈"이라며 재판부의 결정을 환영했다.
지난해 6월, 이씨는 당시 박근혜 후보를 백설공주로 풍자한 포스터 200여 장을 부산시내 일대 버스·택시 정류장 광고판에 붙였다. 그가 그린 포스터에는 백설공주 옷을 입은 박 후보가 청와대를 배경으로 비스듬히 누워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사과를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씨는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논의가 활발하던 같은 해 11월에도 두 후보의 얼굴이 절반씩 그려진 포스터 900여 장을 서울과 광주 시내에 붙였다.
검찰은 박 후보를 비방하고 문 후보를 지지할 목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판단에 따라 이씨를 기소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 "창작의 일환으로 볼 여지 충분히 있다"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윤성원 부장판사)도 6일 공직선거법위반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포스터를 붙인 시기가 선거기간이어서 오해를 산 부분은 있지만, 이씨는 예전부터 이와 비슷한 작업을 해온 점이 인정된다"며 "창작의 일환으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대통령을 풍자하는 작품을 계속 그려왔다"며 "풍자 작업을 계속 해왔다는 점을 재판부가 정당한 예술행위로서 인정해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 검찰은 저를 조사할 때 '다음 총선 때 어느 당에서 공천을 받을 거냐'고 질문하기도 했다"며 "'정치적 목적'이 있을 거라는 시각으로만 저를 바라본 검찰과 달리, 법원은 순수하게 예술가로만 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씨는 항소심 판결문에서 "제3자가 보는 작가의 의도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문구에 주목했다. 그는 "그림에는 누군가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지가 명확하기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며 "예술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재판부가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보수진영의 '종북몰이'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에 좌우나 '종북'이란 구분이 어디 있나"라며 "자신과 가치관이 다르다고 상대의 자유를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폄훼로 논란이 된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아래 일베)'를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 역시 문제 있다고 우려했다. 이씨는 "일베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며 "그게 해괴망측한지 여부는 관객이 엄격하게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언가를 표현한 작품은 좌우라는 구분 없이 사람들의 해석에 맡겨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는 법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