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여름 7월부터 11월 초까지 모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일했다. 그리고 일을 관둔다고 사장님에게 통보했을 때, 어떻게 지금 같이 바쁜 때에 일을 관둘 수 있느냐, 네가 가게 영업을 망쳤다 등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수화기 너머로 들어야 했다.

내가 일한 사업장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처음 면접을 볼 때 사장님은 시급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나를 고용했다. 사장님이 별 말이 없었기에 나는 첫 달 월급이 입금되기 전까지는 최저시급은 받으며 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장님이 정한 기준대로 달마다 임금이 인상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7월부터 9월 중반까지는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시급으로 계산된 월급이 내 통장에 입금됐다.

일을 관둔 후, 시월 달 월급이 원래 입금되어야 하는 날짜에 들어오지 않은 걸 확인했다. 그 후, 내가 조합원으로 소속된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아래 알바노조) (준) 부산지부를 찾아가 상담을 진행했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도움을 받아, 체불된 월급뿐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내가 원래 받아야 하는 주휴수당도 정산을 해봤다. 정산이 끝나니 내가 받지 못한 돈의 총액이 약 100여만 원으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나왔다.

정산이 끝난 후, 이를 세세하게 정리한 체불 임금 계산서를 내가 일한 사업장으로 내용증명 형태로 발송했다. 이 내용증명을 시작으로 사업장에 보내는 모든 공문은 알바노조의 이름으로 발송했다. 혼자 이걸 처리했다면 난 쉽게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그냥 애초에 없던 돈으로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 나와 함께 싸워 줄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있어 힘을 낼 수 있었다.

체불임금 청구에 "네 욕심만 찾지 마라"

내용증명을 받았는지 사장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었나?", "네 욕심만 찾지 마라"등의 답이었다. 그리고는 가게에 찾아와서 사과해야만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도저히 혼자서 가게를 찾아가 임금을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용증명에 대해 돌아온 10통 가까이 되는 문자 메시지와 이전의 통화 내용도 내겐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직접 얼굴을 보고 임금 이야기를 한다?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용기를 내 찾아가도 못 받은 월급만 주고, 주휴수당은 지급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을'로 지내온 기간을 무시할 수 없음을 그때서야 알았다. 사장인 '갑'에게 학습된 무기력함과 공포가 '을'인 내게는 쉽사리 용기를 낼 수 없게 했다.

나는 알바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면담 날짜를 잡고 가게에 같이 찾아가기로 했다. 면담 요청 또한 공문을 작성해 발송했다. 공문에는 체불임금뿐만 아니라 근로계약서 작성 및 교부와 근무자를 위한 휴게 의자 비치에 대한 요청도 함께 첨부했다. 물론 나의 체불된 임금만 입금되면 끝날 일이기도 했지만 나의 이의 제기로 나 같은 알바 노동자들이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근무했으면 하는 바람에 이같은 요청도 첨부했다.

나는 올해 상반기에 알바연대가 만들어진 당시부터 활동가로 알바 노동자들의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수많은 알바 노동자들과 마주하며 그들의 근무 환경에 대해 전해 듣고, 부당한 사항에 대해서는 알바연대와 함께 바꿔 나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내가 막상 그들 입장이 되니 그동안 내가 입이 닳도록 해왔던 말들이 무섭게 와 닿았다.

나는 그동안 알바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4000원도 채 안 되는 시급을 받으면서도 왜 그것에 대해 사장이나 점주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지, 왜 시도도 해보지 않고 무기력함에 빠지는지에 대해 무척 답답해 했다. 하지만 내가 체불 임금을 요구하는 입장이 되니 그들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조합원들과 함께 체불임금을 요구해도 이렇게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혼자서 임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그동안 내가 해온 말들이 내 어깨 위에 쌓인 후에야 그 말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후덜덜~ 잘못한 건 사장님인데 내가 왜 이러지

큰사진보기
▲  면담을 하기 위해 가게를 방문한 조합원들과 나.
ⓒ 알바노조	관련사진보기

드디어 약속한 면담 날. 조합원들과 함께 알바노조 조끼를 맞춰 입고 가게로 가는 길에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기분을 이겨내기 위해 애써 밝은 척하며 조합원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이렇게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었음에도 퇴사 후 처음으로 사장님과 마주하려니 발걸음이 무거웠고, 전신에 피가 빠르게 돌았다. 퇴사할 때 수화기 너머로 들은 고함소리가 공명하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가게에 도착한 우리들은 사장님이 올 때까지 테라스에서 대기했다. 사장님은 가게에 도착해 함께 온 알바노조 조합원들을 보자마자 "영업방해다", "제 3자는 빠져라"라고 하며 면담에 응하지 않으려 했다. 알바노조 자문위원과 부산지부 위원장이 면담을 거부하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사장님은 대답 대신 경찰에 우리를 신고했다. 우리는 잠시 후 가게에 도착한 경찰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최종적으로 사장님이 면담을 거부한다고 판단한 후 가게를 나왔다.

자문위원과 지부 위원장이 사장님과 대화를 하는 내내 나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주위에 동료가 있었는데도 난 경직돼 있었고 사장님의 눈을 쉽게 쳐다볼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그렇게 가게를 등지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방금까지와는 다른 태도로 내 이름을 다정히 불렀다. 그리고는 다음에 볼 때까지는 몸 건강히 지내라는 덕담을 했다. 난 사장님에게 당당히 "체불된 임금 주시면 걱정 안하셔도 건강히 살 겁니다"라고 응수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이라 스스로도 놀랐다. 함께한 조합원들로부터 용기를 얻어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으리라. 그 일 이후 나는 긴장을 풀게 됐다. 또, 경직돼 있던 이전의 태도에서 변화해 적극적으로 나의 요구 사항에 대해 사장님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호스로 물을 맞아가면서도 계속된 면담 요청

사장님이 면담을 거부한 후, 알바노조와 나는 노동부에 체불임금 진정을 접수했다. 그리고 사장님이 면담을 받아들일 때까지 가게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기로 했다. 피켓에는 면담 공문에 첨부했던 요구사항이 적혔다. 하지만 사장님의 반응은 여전했다. 심지어는 나를 피고인으로 해서 고소하겠다고 했다. 또 계속해서 영업방해를 한다며 우리를 경찰서에 신고했고, 1인 시위를 할 때마다 우리는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사장님은 경찰에게 우리를 현행범으로 잡아가 달라고 요청했다. 어느 날인가, 사장님은 경찰도 대동하지 않고 피켓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우리에게 물줄기가 쏟아졌다. 사장님이 청소를 한다는 핑계로 우리를 향해 호스로 물을 뿌린 것이다. 물을 피해 보던 우리는 청소가 끝나면 다시 피켓을 들려고 가게에서 떨어져 서 있었다. 하지만 청소가 끝난 후 다시 피켓을 들고 가게 앞에 서자 사장님은 다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비록 물도 맞고 내 생애 가장 많은 경찰과 단기간에 마주했지만, 난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내가 든 피켓을 본 주민들의 반응을 통해 알바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적용되는 게 얼마나 생소한지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다.

큰사진보기
▲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과 대화중인 나와 사장님
ⓒ 알바노조	관련사진보기

당당한 '을'이 된 나에게 남은 과제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고용노동부에 출석해 근로감독관과 함께 사장님을 만났다. 고용노동부의 풍경은 고요하면서도 살벌했다. 내가 체불된 임금은 매우 적은 금액에 속할 정도로 큰 금액을 체불 당한 노동자들도 많았다. 또 노동자의 체불임금 신고에 화가 나서 전화기에 대고 쌍욕을 하는 사장님들도 있었다.

간단히 끝날 것 같던 3자 대면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약 1시간 30분 만에야 사실 관계 확인이 종료됐다. 진정을 넣을 때 함께 첨부했던 내용증명은 사실 관계 확인을 수월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알바 하는 사람에게 출석 노트를 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내가 원하면 임금을 체불한 사장님을 형사처벌받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아마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모르는 사실일 것이다.

사장님은 고용노동부 출석이 끝난 후, 바로 체불임금을 입금했다. 그동안 사장님과 싸운 지난한 시간들이 눈앞에 흘러갔고, 너무도 허무하고 쉽게 임금이 입금돼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근로감독관과 1대 1로 면담을 하는 동안, 사장님은 휴게실에서 내 면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사장님은 휴게실에서 나를 기다리던 알바노조 조합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고 한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사장님은 프랜차이즈 본사로부터 착취  당하는 수익구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니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눈앞에 보였다.

알고 보니 사실 나는 '을'이 아니라 '병'이었다. 내가 있던 '을'의 자리에는 사장님이 자리하고 있고, 사장님이 있던 '갑'의 자리에는 '슈퍼 갑'인 프랜차이즈 본사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갑을병' 피라미드에서 가장 하층에 자리하고 있는 '병'인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나와 같은 '병'들에게 함께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자고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체불임금 사례와 같이 '병'에게 끝없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요구를 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슈퍼 갑'을 상대로 '을'과 '병'을 동시에 착취하는 수익 구조를 개편하라는 요구도 해야 한다. 피라미드 최하층에 속한 '병'인 내가 손에 쥔 것이 비록 모래들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모래들을 계속해서 '슈퍼 갑'을 향해 던져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그들의 눈에 내가 던진 모래가 명중하는 날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