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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지난 7월 22일 보도화면.
 TV조선 지난 7월 22일 보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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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이 암살됐다는 소문이 15일 나돌아 동경 외교가를 한동안 긴장시켰다."

<조선일보> 1986년 11월 16일자 기사의 한 대목이다. <조선>은 17일 신문 발행일이 아님에도 '호외'를 발행했고, 18일에는 총 12면 중 7개 면에 걸쳐 사망 배경, 국내외 반응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보도는 대한민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북한 관련 '특종'이 아니라 '오보'가 된다. 며칠 후 김일성 주석과 몽골 대통령의 정상회담 모습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김일성 이후 8년이나 더 살았고 <조선일보>는 1994년 7월 9일 '김일성 사망' 호외를 다시 발행해야 했다. 김일성뿐 아니라 그의 아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사망설에 시달렸다.

<"김정일 사망설 사실 아니다">- 2008.05.27 <경향신문>
<왜 '김정일 사망설' 계속 불거지나?>- 2009.12.04 <노컷뉴스>
<北 연평도 포격 도발 '김정일 사망설 해프닝' 외신까지 들썩>- 2010.11.24<문화일보>
<김정일 사망설에 증시 쇼크, 'FTA음모론'도>-2011.11.08 <조선일보>
<겨울 문턱만 들어서면 나도는 '김정일 사망설'>-2011.11.09<연합뉴스>

<연합뉴스> 기사 제목처럼 "겨울문턱만 들어서면 나도는 '김정일 사망설'"이건만, 정작 그가 정말 숨졌을 때 한국 국정원은 그 사실을 즉각 인지하지 못했다. 지난 2011년 12월 19일 정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을 알렸다. 김 위원장 사망 시각은 17일 오전 8시 30분이었다. 정부 당국은 무려 51시간 30분이나 김정일 사망을 몰랐던 것이다.

이뿐 아니다. 국정원 등 정부당국은 리영호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 해임(2012.07.15)-현영철 대장의 차수 승진(2012.07.17)-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원수' 칭호(2012.07.18) 등으로 이어진 북한 내 변화도 제때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를 내다보는 <조선>? 7월에 장성택 실각 언급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이 떨어져서일까. 우리 언론들도 북한 관련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지난 2011년 5월 20일 오전 9시 11분 <연합뉴스>가 보도한 '<긴급> 北 김정은, 투먼 통해 방중' 기사다. 이는 결국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으로 확인됐다. '김정은 중국 방문'은 대형 오보였던 셈이다. 추측성 기사도 많다. 지난 7월 <조선일보>와 종편 <TV조선>은 김정은 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위독설'을 집중 보도했다.

북한 정권의 막후 실세이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인 김경희(67·사진) 노동당 비서가 80일째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이날 "2009년 6월 재기 이후 김경희의 공백이 이렇게 장기화한 적은 없었다"며 "평소 여러 지병을 앓는 김경희가 위독한 상태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 2013.07.22 <조선일보> 김정은 고모 김경희 위독설

기사는 "정보 당국이 '김정은 정권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하는 김경희는 지난 5월 12일 김정은·리설주 부부, 남편 장성택 당 행정부장과 함께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린 조선인민내무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한 이후 두 달 넘게 행방이 묘연하다"며 위독설을 전했다.

이어 "같은 기간 남편 장성택의 공개 활동도 급감했다. 올해 장성택의 공개 활동은 21일 현재 27회지만, 김경희의 마지막 등장(5월 12일) 이후로는 3회에 불과하다"면서 "일각에선 이를 '장성택 실각설'과 연결짓기도 했지만 실은 김경희의 건강 악화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눈에 띄는 내용은 '장성택 실각설'이다. 지금 와서 보면, 미래를 예측한 대단한 특종인 셈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일보>는 실각설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설, 설, 설, 설... '소식통', '관련자'만 있는 그들만의 뉴스

지난 4일 MBS<뉴스데스크> 보도화면
 지난 4일 MBS<뉴스데스크> 보도화면
ⓒ 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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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하고 있는 북한 관련 뉴스는 '장성택 실각'이다. 뉴스에 박근혜 대통령보다 장성택의 이름이 더 많이 등장하고 있는 듯하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지난 3일부터 11일 오후 5시 27분 현재까지 '장성택'으로 검색을 하니 무려 5390건의 기사가 검색됐다.

MBC<뉴스데스크>는 지난 4일 <북, 장성택 숙청계획 중국에 사전통보…반응은?>에서 "북한은 지난 10월쯤 중국측에 장성택의 숙청계획을 미리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면서 "중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장성택 라인이 더이상 대중관계를 전담하지 않게 됐으며,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는 취지의 설명을 북한이 해왔다고 대북 소식통을 통해 밝혔다"고 단독보도했다. 하지만 후속 보도는 없었다.

SBS <8시뉴스>도 지난 10일 <북 장성택 측근, 핵개발 관련 핵심 문서 들고 탈출">기사에서 "숙청된 북한 장성택의 핵심 측근이 최근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한 중요한 자료를 빼돌려서 중국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장성택에 대한 숙청 작업이 이 인물의 망명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단독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보도에 구체적인 물증이나 관련자 인터뷰는 실리지 않았다. 이처럼 <뉴스데스크>와 <8시뉴스>의 단독보도 속에는 '관련자'와 '대북소식통'만 있었을 뿐,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한 근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장성택 실각 '설'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지자, 또다른 설들이 언론들을 통해 퍼졌다. 바로, 장성택 '처형설'이다.

<북 장성택 '처형 가능성'... 매체 동원 뭇매>-10일 <MBC뉴스>
<북, 장성택 '처형' 가능성 내비쳐>-10일 <국민일보>
<"전기로에 처넣고 싶다" 장성택 처형 여론몰이 나선 북한>-<중앙일보>

11일 <조선닷컴>은 <'북, 장성택 처형 강력 암시, "장성택을 제거하고...역적 무리는 곧 죽음"'> 제목 기사에서 "북한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한 처형(處刑)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또 장성택 부위원장 출당·제명 이후 당원은 물론 주민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사상 통제 강화에 나섰다"고 전했다. 보도를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부다. 하지만 이런 언론보도는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현상을 왜곡하는 디딤돌이 될 소지가 있다.

'장성택-리설주 부적절한 관계' 보도, 어이가 없다

장성택 실각이 김정은 부인 리설주와 부적절한 관계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장성택 실각이 김정은 부인 리설주와 부적절한 관계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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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2일 언론들은 장성택 실각 원인이 김정은 제1위원장인 부인인 리설주와 부적절한 관계 때문이라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장성택 실각 원인, 리설주 때문? '부적절한 관계' 의혹 - <매일경제>
리설주, 장성택 숙청 이유? '부적절한 관계' 의혹 제기 - <아시아투데이>
장성택 실각 이유 .. "리설주와 부적절한 관계?" - <세계일보>
北 장성택, 리설주와 부적절한 관계 가졌다? - <한국일보>
리설주, 장성택과 부적절한 관계했나..'예술단원 처형사건' 재조명 - <한국경제TV>
리설주, 장성택과 부적절 관계 루머..신변이상설도 '충격' - <서울신문>
"리설주와 부적절한 관계?" - <세계일보>

<조선일보> 인터넷판 <조선닷컴>은 11일 <"리설주, 장성택이 김정은에게 소개해줬는데…불륜?"…장성택·리설주 동반숙청설까지 돌아>에서 "김정은의 장성택 숙청이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 리설주와 연관이 있다는 설과 함께 리설주와 관련된 각종 추문(醜問)이 난무하고 있다"면서 "최근 증권가에서는 '장성택이 리설주를 김정은에게 소개시켜 결혼이 성사됐으나 리설주와 장성택이 불륜관계를 맺어왔고 이것이 김정은의 귀에 들어가 사단이 났다'는 설이 떠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0월 한국 언론들은 리설주 '포르노물' 관련 내용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당시 물증을 가지고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이번 장성택-리설주 보도 또한 팩트를 확인할 수 없는,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증권가 찌라시'가 그 바탕이다. 언론 보도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은 YTN과 한 인터뷰에서 "장성택이 리설주와의 추문 때문에 숙청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북한 고위층들이 여성과 관련된 비정상적인 일들을 벌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지금와서 그것을 문제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리설주와의 추문은 신빙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북한 관련 보도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명확한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떠도는 설들을 마치 사실인 것마냥 보도하는 건 언론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장성택과 리설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앞다퉈 보도하고 있는 언론들이 다시 한 번 언론의 정도가 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북한, #장성택, #오보와 추측성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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