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 이치우, 유한숙. 이분들은 다르지 않다. 꽃 같은 영혼을 세상에 뿌려 놓은 분들이다. 만델라는 '세상에서 모든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누군가가 그것을 해내면 가능한 것으로 바뀐다'고 했다.이치우, 유한숙 어르신, 그리고 여러분은 대한민국과 밀양의 만델라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송전탑은 절대로 안 된다. 고통 받더라도, 힘들다고 하면서도 일어서고 있다."
천주교 문규현 신부가 한 말이다. '음독 사망'한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첫 추모제가 11일 저녁 밀양 영남루 계단 쪽에서 열렸는데, 문 신부가 발언했다.
문 신부는 "송전탑 반대 주민이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갔더니, 경찰관이 대표가 누구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그 주민은 내가 대표다고 하셨다"면서 "자기 재산 자기가 지켜내는 사람이면 대표인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제에는 송전탑 반대 주민을 비롯해 부산, 밀양, 창원 등지에서 온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용길 노동당 대표와 장영달 전 민주당 경남도당 위원장, 하승수 녹색당 운영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는 인사말을 통해 "어떤 생명도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게 아니고, 생명은 참으로 고귀하다"며 "어떤 죽음이건 억울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신부는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에 대해 정부와 한전, 경찰에 책임을 묻기 이전에 대책위가 죄인이고, 우리 스스로 겸손을 나타내는 게 아니다"며 "지난해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셨을 때 다시는 이런 죽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해서 '분신대책위'를 만들었는데, 다시 이런 일이 벌어져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김 신부는 "유한숙 어르신의 희생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사회적 타살이다"며 "한전은 경찰 뒤에 숨어서 송전탑 공사를 한다는 것은 어르신 죽음에 대한 모독이고,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인의 친구인 반무출(75)씨는 "한전 직원이 다녀간 뒤 집과 돈사가 보상, 이주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말을 듣고 괴로워했으며, 송전탑이 들어서면 안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밀양 희망버스' 기획단 김덕진 실장은 "희망버스(11월 30일~12월 1일)가 다녀간 뒤에 유한숙 어르신께서 음독하신 데 대해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는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경찰에 연행되거나 구속되는 한이 있더라도 송전탑 공사를 막기로 했고, 2차 희망버스를 준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제는 김철원 밀양농민회 정책실장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밀양 노래패 '통'이 추모곡을 불렀으며, 김경미․반민순씨가 살풀이를 추었다. 김남희(40)씨는 이응인 시인이 고인을 추모하며 쓴 시 "여기 길에서 잠든 어른을 보라"를 낭송했다.
"억울하게 떠난 그 분을/추모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여기는 누가 사는 땅인가?/주민의 생명은 팽개치고/한전의 억지만 보호받는/여기는 누구의 나라인가?/ 칠십평생 일구어 온 땅인데/여기가 뼈를 묻을 곳인데/누구 마음대로 송전탑을 세우는가?"(추모시 일부).
마지막에 유족인 고인의 두 아들과 딸이 앞에 나와 인사했다. 큰아들은 "아버지 고통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죽음까지 이르게 한 죄인이고, 날씨가 너무 추운데 멀리서 저의 부친 추모제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지금까지 빈소와 분향소, 추모식 준비까지 마을주민과 여러 어르신, 대책위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는데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큰아들은 "밀양경찰서와 밀양시청은 아버지 죽음이 '복합적 원인'이라고 했는데, 왜 그러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며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말이다. 진실을 주변에 많이 알려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시민 분향소 조문 행렬... 고등학생들도 찾아와영남루 맞은편 밀양교 옆에 있는 시민 분향소에는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분향소 4일째인 11일 오후 이정희 최고위원과 통합진보당 경남도당 강병기 위원장, 석영철·이천기 경남도의원, 박유호 창원시위원장 등이 조문했다.
조문단은 고인의 명복과 영면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전했다. 이정희 최고위원은 "먼저 천막을 부수고, 비닐을 치지 못하도록 막는 등 시민분향소 설치·운영을 방해하는 공권력 폭력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추모를 보장해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와 한전은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에 깊이 사죄하고, 죽음을 부르는 송전탑 공사 강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학생들도 분향소를 찾아 왔다. 밀성고 2학년생 6명이 찾아와 조문한 뒤, 유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조문하자 노천에 앉아 있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학생들은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조문하자고 해서 왔다"며 "뉴스를 보고 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밀성초교 6학년 학생 5명이 이곳을 찾아 왔는데, 이들은 "학생들은 송전탑이 들어서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분향소 설치를 못하게 하는 경찰을 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밀양전국대책회의, 서울 분향소 설치밀양전국대책회의는 12일 서울시청 광장에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분향소'를 설치한다. 밀양전국대책회의는 미리 낸 자료를 통해 "국가가 죽였다. 송전탑 공사 즉각 중단하"며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밀양전국대책회의는 "목숨을 끊으신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 앞에 한전과 국가는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고인에 대한 어떤 예의도 보이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12일부터 22일까지를 집중 추모기간으로 선정하고, 이 기간 동안 고인의 죽음을 추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돼지를 키우던 유한숙 할아버지는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농성에 참여했다가 지난 2일 밤 밀양 상동면 고정리 집에서 음독 자살을 시도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6일 새벽 숨을 거두었다.
유족은 8일까지 밀양농협장례식장에 빈소를 두고 조문객을 맞았다. 유족들은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면서 이날 오후부터 시민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