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고장 남도. 여행은 입이 즐거워야 하지요. 믿을 수 있는 먹거리가 따라야 여행이 풍성해 집니다. 그동안 많은 블러그들의 활약으로 알려지지 않는 곳곳의 맛집이 발굴 되었습니다. 과도한 홍보, 불친절한 음식점은 여행객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합니다. 맛집은 사실 정답이 없습니다. 입맛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늘 묻습니다. "정말 맛있는 집 좀 알려주세요." 기자는 그런 맛집을 찾아 조심스럽게 연재를 시도합니다. 맛집에 대한 평가는 독자 여러분이 댓글로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기자 주
연잎이 밥으로 탄생했다. 이름하여 '연잎밥정식'이다.
연잎밥 하나로 '대박'을 터트리는 곳이 있다. 순천시 월등면 농선리에 있는 수련산방. 입소문을 듣고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마침 일을 마치고 광주에서 내려오는 길이라 아내의 말에 솔깃했다. 드라이브도 할겸 점심을 예약했다. 생각보다 멀어 아내에게 짜증을 부렸다.
"점심 한 끼 먹으로 여기까지 뭔 개고생이야. 점심값보다 기름값이 더 들겠다."나의 투덜거림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아내도 내심 불안한 모양이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순천시내에서 약 20분 거리다. 주차를 하고 약간 걸으니 고택이 나왔다.
3대가 살아온 600평 기와집에서 먹는 연잎밥
고택 규모가 크다. 총 600평이다. 마치 옛날 시골 기와집에 찾아온 느낌이다. 마당 너른 고택에 들어서니 첫 번째 기와집이 나왔다. 식당이라 믿기지 않지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식탁 10여 개가 전부다. 식당 맞은편 연못 너머로 사랑채도 있다. 사랑채는 식사 후 차를 마시는 곳이다. 사랑채를 지나면 대청마루가 나온다. 대청마루는 꽃피는 봄날 차를 마실 수 있는 차실이란다.
부자(父子)가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다. 아버지는 사랑채에서 차를 담당한다. 주방은 어머니 몫이다.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아들은 홀을 담당한다. 아들 장영호(34세)씨는 "호주에서 국적을 취득하고 안정된 직장을 접기까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아내와 함께 이곳에 들어온 지 1년이 채 안 됐지만 아이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얼굴을 보고 자랄 수 있어 의미가 크다"고 지금 생활에 만족해했다.
진흙탕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청정의 표상' 연꽃은 극락세계를 상징해 사람들이 귀하게 여겼다. 연꽃에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이제염오(離諸染汚) - 연꽃은 진흙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유연불삽(柔軟不澁) - 부드럽고 온화해 자기를 지키고 사는 사람을 유연불삽이라 한다.견자개길(見者皆吉) - 연꽃을 보거나 간직하면 길하여 좋은 일이 생긴다.성숙청정(成熟淸淨) - 연꽃은 곱게 피어나니 몸과 마음이 맑아진다.면상희이(面相喜怡) - 연꽃은 둥굴고 원만해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절로 온화하고 즐거워진다.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연잎밥은 사찰뿐 아니라 궁중음식으로도 사랑받았다. 아내와 함께 연잎밥정식을 주문했다.
연잎밥은 총 3번 찐다. 처음 밥만 한 번 찐후 연잎에 싸서 두 번을 더 찌면 비로소 연잎 맛이 우러난 밥이 탄생한다. 반찬이 15가지. 기다렸던 연잎밥이 나왔다. 연잎에 쌓인 밥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연잎밥이 베일을 벗었다. 밥을 감싸고 있는 연잎 한 잎을 벗기니 또다른 연잎이 나온다. 두 번째 연잎을 펼치니 보약밥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한 노랗고 푸른 밥이다. 밥맛에서 감칠맛이 난다. '음식에 개미가 있다'는 말, 이럴때 써도 좋을듯 싶다. 전라도에서는 음식맛이 좋을 때 '개미가 있다'고 한다.
"와~ 제법인데... 완전 대박이네!"금세 기분이 풀렸다. 밥 한 끼에 사람 맘이 이렇게 변하다니.
주인장 장경진(46년생)씨는 집안에서 장손으로 태어났다. 젊었을 때는 좀 놀았다. 안 해본 일이 없단다. 나무젖가락 공장을 해서 돈을 좀 벌었는데 중국산이 밀려오자 문을 닫았다. LG장판 총판도 했다. 순천에서 조경전문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또 순천고 총동문회 부회장, 과거 새정치국민회의 순천지구당 수석부위원장을 해서 인맥이 넓다. 하지만 일은 망했다. IMF 때 보증을 잘못 선 게 화근이었다.
"나도 참 속없이 살았어요. 사업을 하다 보니 잘못 보증을 섰죠. IMF 전에는 서로 보증 서는 것이 예의였어요.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기서 사니 이렇게 편한 걸..."방송촬영 거부한 사장님, 결국...
그의 아내가 식당을 시작한 것도 보증 때문이었다. 인맥이 넓으니 손님이 없어 고민한 적은 없었단다. 하지만 몇년 전 모친의 건강이 안 좋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내려온 그들은 전국 맛집을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찾기에 나섰다. 연잎밥 정식을 하게 된 계기다. 장경진씨의 얘기다.
"그간 방송에 여러 번 나왔어요. 처음 <VJ특공대>에서 제의가 들어왔는데 안 찍는다고 거절했죠. 근데 PD가 3번이나 전화를 왔어요. <VJ특공대>는 막 박수치고 사람들 모아놓고 '우~~' 했싸면서 시끄럽잖아요. 우리 집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거든. 그래서 사양했죠. 그랬더니 제의가 들어왔어요. 딴 곳은 하루에 찍는데 우리 집은 이틀에 걸쳐 찍기로 했죠. 이후 방송이 나간 후 3시간 동안 전화에 불이 났어요. 전국에서 위치가 어디냐고 물어봐서 며칠 동안 혼이 났죠. 방송이 그렇게 좋은(?) 것도 모르고 안 한다고 했으니 얼마나 웃었겠어요."방송의 힘을 그때 처음 알았단다. 이후 방송을 찍고 난 후 PD가 한 달 내에 타 방송국에서 제의가 들어올 거라 했는데 한 달도 안 돼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다. <생생정보통> <굿모닝 대한민국>을 포함해 지방방송에도 여러 번 나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연잎은 피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 또 플라보노이드화합물이 함유되어 있어 해독제 역할도 한다. 연잎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백연'이다. 연잎은 연잎축제로 유명한 전남 무안 연잎을 사용한다.
이곳은 생긴 지 3년 반 정도 됐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방송을 탔다. 지금은 전국에서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시골 골짜기지만 꼭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오전 11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7시 반에 문을 닫는다. 매주 둘째, 넷째주 수요일은 휴무다. 연잎밥이 어디에 좋은지 장씨 어머니에게 물었다.
"요즘 공해가 많으니 병이 많잖아요. 연잎은 혈액순환에 좋아요. 치유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든 병을 예방하죠.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연잎밥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식사 후 사랑채로 갔다. 밥을 먹으면 차는 덤이다. 차는 연잎차, 녹차, 발효차, 국화차 등 종류가 다양하다. 수련산방은 놀러 오는 개념으로 들르면 더 좋겠다. 맛도 맛이지만 오감이 즐겁기 때문이다. 찻집에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가야금 연주도 참 좋다.
노후를 이렇게 보내면 참 좋겠다. 하루하루 일에 쪼들리지 않고 즐기면서 하는 일, 얼마나 행복할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