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화풍으로 그려진 그림이 단순하고 경쾌하다. 소박하며 파격적이고 익살스러운 민화의 특성을 살려서 우리 옛이야기의 빠른 호흡과 바뀐 세상에 대한 환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안 표지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문양에 주인공들을 배치하여 책의 이야기가 우리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민화는 촌스러운 그림이 아니다. 이 책에 사용된 하나의 매체로서 민화풍으로 그려진 그림에 대한 화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집은 내용을 인용해 보겠다.
"아이디어는 실현 가능할 때에만 훌륭하다. 매체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미숙한 표현은 좋은 아이디어를 망치거나 주제를 실망스럽게 만든다. 아주 뛰어난 기교로 부실한 내용이 가려지는가 하면, 이미지가 억제되기도 한다. 한편, 투박하거나 부정확한 표현이 필요한 예도 있다. 처음부터 기술을 완벽하게 익힌 사람만이 그 기술을 사용할지 아니면 버릴지를 판단할 수 있다."-'미술을 보는 101가지 통찰 미술에 관한 모든 것(킷 화이트 지음. 김노암 옮김. 틔움. 2013.)' 28의 원문을 그대로 인용.'갑돌이와 용감한 여섯 친구'에 그려진 김천경의 그림은 책을 읽는 사람이 이야기의 흐름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장치이다.
풍뎅이, 알밤, 자라, 밥주걱, 쇠똥, 맷돌은 갑돌이를 통해 말에 모이게 된다. 갑돌이가 억지로 말에 태우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함께 할 것을 요청한다. 시키는 것이 아니고 진정성을 가진 양이 축적되는 것이다.
집단이 언제나 평온할 수는 없다. 밤이 오고 날이 추워진다. 쉴 수 있는 거처를 발견했을 때, 그곳에 호랑이라는 더 큰 위기가 기다린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섯 친구는 자기가 가진 능력에 따라 조직된다. 양이 축적되더라도 조직되지 않으면 질적인 변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호랑이에게 제물이 될 아가씨는 갑돌이와 여섯 친구에게 돌아가라 한다. 생명을 잉태하고 품어서 세상을 지탱하는 여성성의 발현이다.
아가씨라는 호랑이의 이기심이 곧 눈에 보이는 막바지에 불이 꺼진다. 아궁이에서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강력한 무기인 앞발을 물리고 얼굴을 맞게 된다. 미끄러지고 하늘이 내린 벌에 죽는다. 이러한 과정이 여섯 친구의 조직된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죽은 호랑이를 말 등에 싣고 가서 깊고 깊은 강물에다 첨벙 빠뜨렸어요." 고기는 먹고 가죽은 팔아서 돈을 벌었다는 결말이 아니다. 옛 세상과 단절이다.
호랑이가 죽고 아가씨가 새 생명을 얻은 세상은 갑돌이가 말을 타고 찾았던 이상향이다. 갑돌이와 아가씨, 여섯 친구가 개별이 아니라 서로 자기가 가진 능력을 공동체에 이바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새 세상이다.
오늘, 정보를 통해 정치의 한 복판에서 칼춤을 추는 대한민국국가정보원은 사람인 아가씨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를 닮았다. 새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