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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시인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탈북시인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 권우성

'장성택 처형'사건을 북한의 조선노동당 출신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1998년부터 약 6년간 조선노동당에서 대남업무를 담당하는 통일전선부에서 대남심리전(101연락소)업무를 담당했던 장진성(42) <뉴포커스> 대표는 탈북인사들 중 이에 대해 분석할 수 있는 한 명으로 꼽힌다.

2004년 1월 탈북해 한 달 뒤 남한에 들어온 그는 2005년부터 6년간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북한 관련 연구를 했고, 연구소를 떠난 이후 2011년 12월부터 <뉴포커스>를 만들어 북한 뉴스를 다루고 있다.

지난 16일 만난 그는 "인민경제파라 부를 수 있는 장성택 그룹과 당 조직지도부-군부가 핵심인 핵무장노선 강경파와 갈등하는 과정에서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당한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면서 "김정은은 당 조직지도부와 군부의 결정에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를 '강경파에 둘러싸인 수령 연기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숙청작업 한창 진행되던 11월말, 김정은 왜 백두산에 갔을까"

그는 '김정은의 11월말 백두산 삼지연 방문'에 주목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국회를 통해 '장성택 실각설'을 처음 밝힌 게 12월 3일이었다. 11월 말이면 장성택 세력에 대한 숙청작업이 한창 진행되는 상황이었을 텐데 왜 김정은은 평양을 떠나 오지에 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당 조직지도부가 장성택과 떼어놓기 위해 김정은을 백두산에 가 있게 한 다음에 장성택 제거작업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장성택이 당하는 과정은 북한 내부 통신원들에게 취재한 것이고, 백두산 행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를 바탕으로 추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권 2년께를 맞은 김 제1비서의 1인 지배 공고화 과정에서 '2인자 장성택'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김 제1비서의 권력이 불안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치국(확대)회의 잦은 개최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지난해 7월 리영호 총참모장 해임은 정치국 회의, 이번 장성택 당 행정부장 숙청도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 결정됐다.

"김정일 때는 회의나 이런 게 필요 없고 말 한마디면 됐는데, 지금은 최소한 합의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에서 김정은 시대의 당 정상화'가 아니라 김정은 권력 약화의 단면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장성택 처형 발표문에서 여자문제가 거론된 것에 대해서도 "수령의 누이동생인 김경희의 명예까지 묻어버리고 형편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라며 "백두혈통과 김정은 신격화보다 장성택 숙청이 더 급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이다.

 "북한이 변하지 않았구나, 오히려 더 호전적으로 변했구나, 인권 상황이 더 나빠졌구나 이런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북한이 변하지 않았구나, 오히려 더 호전적으로 변했구나, 인권 상황이 더 나빠졌구나 이런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 권우성

-북한에 있을 때, 숙청 장면이 이렇게 TV방송 등으로 나온 적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처음이다."

- (연안파와 소련파를 숙청한) 1956년 8월 종파사건이나 1967년 갑산파 사건 등의 숙청사건에 대한 보도가 어떠했는지 아는 게 있나.
"그때는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았을 때니까, 지금처럼 보도는 안됐을 것이다. 북한의 유일지도체제를 강조하려면 내부 분열은 최소화해서 보여줘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 사건들은 나중에 학습으로 알게 된 것이고, 지금 북한 주민들도 이런 숙청장면은 처음 보는 것이다. 북한의 언론 매체에 있던 나도 이번 보도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처형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소름이 돋았다. 누구를 죽였다,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북한이 변하지 않았구나, 오히려 더 호전적으로 변했구나, 인권 상황이 더 나빠졌구나 이런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 최고 권력자의 고모부인 장성택은 왜 처형까지 당했을까.
"일종의 쿠데타로 본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전에 없던 분파가 생겼다. 인민경제파라 부를 수 있는 장성택 그룹이 만들어지면서 당 조직지도부와 군부가 핵심인 핵무장노선 강경파와 갈등하게 됐다. 당 조직지도부 주도로 (올해 2월 13일) 3차 핵실험을 하게 됐는데, 핵 능력 강화는 김정일의 유훈이기 때문에 장성택이 반대할 수 없었다. 반면 인민경제를 강화하려는 장성택은 외무성과 체육지도위원회를 띄우고 (북한이) 스포츠 강국이라고 홍보를 한다. 그래서 지난 달 6일까지도 (일본 참의원) 안토니오 이노키를 만난 것이다."

"장성택, 실제 북한 움직이는 당조직지도부와 갈등 관계"

- 핵보유를 강조하는 당 조직지도부-군부라는 강경파와 장성택의 온건파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강경파가 장성택을 제거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는 당 조직지도부와 갈등 관계였다. 핵강국과 경제발전 둘 다 김정일의 유훈이다. 그래서 북한은 올해 3월 '경제선설-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것인데, 이 싸움에서 처음에는 장성택이 주도권을 잡았었다.  원래 인민군 총정치국 산하 54부의 대외무역창구가 승리무역회사인데 이 회사가 김정일에게 정치자금을 대준다고 하면서 북한의 주요 광산을 다 장악했다. 이 회사가 외화벌이에 성과를 내면서 장성택이 54부를 54국으로 승격시켰다. 장성택의 측근인물로, 이번에 처형된 장수길이 54부장 출신이다. 장수길은 원래 골동품으로 외화벌이를 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는데,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었다.

장성택이 인민경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가운데, 인민보안부를 키웠고 당 조직지도부가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많이 잃었다. 국가안전보위부의 류경 부부장과 우동측 제1부부장이 각각 2011년 초와 2012년 초에 숙청됐다. 북한은 수령뿐 아니라 특권층도 세습되기 때문에 숙청을 통해 사람을 바꿀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자 조직지도부가 장성택에 대한 내사를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다. 그는 원래 장성택과 매우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결국 그를 배신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장성택에 관련 내용을 조직지도부에 넘긴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당 조직지도부가 11월말에 김정은을 장성택과 떼어놓기 위해 백두산 삼지연에 가 있게 한 다음에 장성택 제거작업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 이같은 설명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간 우리 매체와 연락을 해온 북한 내부 통신원들이 있다. 장성택이 당한 과정은 북한 내부 소식통들에게서 나온 얘기고, 김정은이 11월말에 백두산 삼지연에 간 것이 당 조직 지도부가 김정은을 장성택과 떼어놓으려고 했다는 것은 내 추론이다. 국가정보원이 국회를 통해 '장성택 실각설' 처음 얘기한 게 12월 3일이다. 11월 말이면 장성택 세력에 대한 숙청작업이 한창 진행되는 과정임이 분명한데 그때 왜 김정은은 평양을 떠나 오지에 가 있었을까?

이번 장성택 처형과 관련해 '김정은 주도설'과 '김정은 수령 연기자설' 두 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나는 후자로 본다. 김정은이 당 조직지도부와 군부의 결정에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회의장 절반이 비어 있다...유일 지도 체제 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

 장성택 조선노동당 행정부장에 대한 숙청을 결의한 12월 8일 정치국 확대회의 장면. 뒤 절반 정도가 비어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장성택 조선노동당 행정부장에 대한 숙청을 결의한 12월 8일 정치국 확대회의 장면. 뒤 절반 정도가 비어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 <뉴포커스>제공

- 강경파 드라이브를 김정은이 추인한 것이다?

"이번에 북한은 당 정치국 확대회의 자리를 통해 장성택을 숙청했다. 김정일 시대에는 당 정치국이 별 의미가 없었다. 김정일 생존 때는 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김정일 말기에(2011년 6월) 정권을 넘겨주기 위한 차원에서 처음 열린 데 비해, 김정은이 들어선 뒤에 2번 열렸고, 정치국 회의까지 포함하면 총 5번 열렸다.

8일 정치국 확대회의 사진을 보면 재미있는 게 있다. 뒤에 절반이 비어 있는데 유일 지도 체제를 강조하는 북에서 회의장이 절반이 비어 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신격화의 공백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김정일때는 회의라는 것은 동공도 움직일 수가 없는 건데, 김정은이 들어선 뒤에는 발언을 위해 손을 들기도 하고 앉아있는 자세들도 그렇고 이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이번 장성택 처형 발표문을 보면, '당의 조직적 의사인 당의 노선과 정책…'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원래 이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 앞에 '수령의 영도에 의한'이라는 말이 꼭 붙는데 빠져 있다. 당의 조직적 의사라고 하지만 누구의 의사인 건지 알 수가 없는 거다."

- 정치국 확대회의의 개최가 김정은 권력약화의 한 징후라는 것인가.
"김정일 때는 회의나 이런 게 필요 없었다. 그 때는 말 한마디면 되는 건데, 지금은 사람 하나 해임할 때도 회의를 한다. 리영호 총참모장 해임할 때도 정치국 회의를 했다. 모여서 최소한 합의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김일성때는 내각에도 빨치산 출신 측근들이 많았다. 그런데 김정일이 권력장악하면서 당으로 일원화시켜버렸다. 그래서 1980년대에 외부 권력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일은 당 조직 지도부가 다 했다. 조직 지도부장은 계속 공석으로 두고 부부장들만 두면서 김정일이 직접 챙겼다. 오늘날의 북한은 김정은이 상징적 지도자이고 실제적인 지도는 당 조직지도부가 한다고 봐야 한다.

이번에 북한은 장성택의 여자문제까지 거론했는데, 이게 남한 사람들한테는 어떨지 몰라도 북한 사람들한테는 어마어마한 충격이다. 수령의 누이동생인 김경희의 명예까지 묻어버리고 형편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백두혈통과 김정은 신격화에 대한 야망보다 장성택 숙청이 더 급했음을 보여준다. 김정은은 결국 '강경파에 둘러싸인 수령 연기자'로 볼 수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이번 장성택 처형 발표문은 흔들리는 체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장성택 처형 발표문, 흔들리는 체제의 모습 그대로 노출"

 "당조직지도부는 전국에 거미줄처럼 조직망을 갖고 있는 체계다. 조직 지도부는 실제적으로 권력 장악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장성택은 밖으로만 요란했다."
"당조직지도부는 전국에 거미줄처럼 조직망을 갖고 있는 체계다. 조직 지도부는 실제적으로 권력 장악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장성택은 밖으로만 요란했다." ⓒ 권우성

- 김정은 권력이 절대적이라면 그렇게까지는 안 한다?
"유일 영도의 핵심은 신격화 권력인데 당 조직지도부는 신격화보다 유일 영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북은 이번에 장성택 해임과 처형에 대해 빠르고 상세하게 보도했는데.
"과거에는 유일 영도 체제에 위반하는 내부 숙청에 대해서는 철저히 은폐하는 분위기였다.그런데 이번에는 북한주민들은 볼 수 없는 조선중앙통신 즉 대외로 알리는 게 먼저였고,로동신문에는 그 다음날 실렸다. 이건 김정은 정권이 대외적으로 설명할 부분이 많다,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 남한의 대부분 언론과 전문가들은 장성택을 북한의 2인자라고 말해왔는데.
"백두혈통(김일성 가문)의 곁가지다. 2인자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김정은의 고모부로서 새로운 인민경제를 주도하는, 권력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었던 사람이다."

- 장성택이 먼저 빨리 움직였다면 어땠을까.
"게임이 안되는 게, 당조직지도부는 전국에 거미줄처럼 조직망을 갖고 있는 체계다. 조직 지도부는 실제적으로 권력 장악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장성택은 밖으로만 요란했다. 지금 남한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나를 포함해 조직지도부 전체 조직과 활동내역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 장성택 처형을 알리는 북한 발표문에서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 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다"라고 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 가문에 대한 절대성이 이미 확립돼 있는 건가.
"그렇다. 이전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선…'이라고 해야 하는데 '위대한 수령 김일(전 부수상) 동지'라고 얘기했다고 해서 수용소에 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 북한이 발표할 때 소왕국이라고 하지 않았나. 김씨 가문이 왕국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하는 이야기다."

- 장성택 처형 이후 최룡해 총정치국장을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그가 장성택의 공백을 메울 것이라는 추정인데.
"북한에서 권력 소유는 당 조직지도부부터 얘기해야 한다. 대내적 권력과 대외적 권력이 나눠져 있는데 이걸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 장례 위원 명단으로 서열을 읽어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인가.
"공식적인 서열에 의해 돌아가는 국가라면 맞겠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항상 2번째로 호명되는데, 그가 실제 2인자? 그렇지 않다."

- 장성택은 중국과 '각별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나온 중국의 반응은 "북한 내부 문제"라는 정도다. 북한이 장성택을 체포한 지난 8일 북한과 중국은 고속철도와 고속도로 건설 사업에 합의하기도 했는데, 그의 처형이 북중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정일때 북중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장성택의 존재가 다행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안에서만 주체할 것이지 왜 밖으로도 주체를 하느냐는 불만이 많았다. 그런 강경책을 희석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장성택이었는데 그가 제거됨으로써 중국으로서는 굉장히 답답한 상황이 됐다."

- 2004년에 남에 들어와서 4년정도 이른바 민주파 정부에서 살았고, 그 뒤 보수파 정부가 계속되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6년간 일하기도 했는데, 남한의 보수에 대해 어떻게 보나.
"좀 권위주의적 벽이 높은 것 같다. 보수는 젊은 표가 없다고 그들 스스로 말하는데 그건 권위주의적 벽을 높이니까 그런 것이다. 젊은이들 눈높이에 맞게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믿고 따라와라' 그러다 보니까, 보수 쪽에서 특히 세대 차이가 큰 것 같다."

"남한 보수 권위주의적, MB때 당한 탈북자들 많아"

 "탈북자들이 김대중 정부 때부터 남한에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보수 정부를 체험해보지 못했다. 사실상 MB정부가 처음이었는데..."
"탈북자들이 김대중 정부 때부터 남한에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보수 정부를 체험해보지 못했다. 사실상 MB정부가 처음이었는데..." ⓒ 권우성

- 2010년지방선거 때, 이른바 엘리트 출신 탈북자들 다수가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다는 말들도 나왔는데.
"이명박 정부때 당한 탈북자들이 많았다. 하나원 직원으로 근무하던 탈북자 7명이 한꺼번에 쫓겨나기도 했다. 진보 정부라면 그렇게 막 쓸어버리는 짓을 감행했겠나 싶다.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하는 걸 보면서 사람 문제를 처리하는데 신중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적이라는 것을 탈북자들이 많이 느꼈다. 어찌 보면 현실을 알려준 것이다. 탈북자들이 김대중 정부 때부터 남한에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보수 정부를 체험해보지 못했다. 사실상 MB정부가 처음이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때 하나원에서 그렇게 내몰렸으면 크게 화제가 됐을 거다."

- 진보는 어떤가.
"남한의 진보는 독재에 반대했던 세력인데. 왜 그 가치를 지금에 와서 훼손시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수령의 고모부도 불경죄로 처형하는 나라인데 주민들에게는 오죽하겠나. 민주당이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당원으로 가입할 생각이 있다."

- 탈북자 단체들이 보수세력의 전위대가 돼 있다는 비판이 많다.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진보가 인권을 가치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김정은#장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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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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