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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6일부터 11월 20일까지 부산 사상공단의 새시조립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습니다. 취재를 목적으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노동일기를 정리하다 르포로 남기고 싶어 글을 적었습니다. 총 5회 분으로 하루에 한편씩 올릴 예정입니다.... 필자말

 공장 내부. 절단공정과 작은 창틀 조립을 주로 한다.
 공장 내부. 절단공정과 작은 창틀 조립을 주로 한다.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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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부드러운 음악과 함께 낮게 속삭이는 소리가 지옥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황급히 손을 뻗어 휴대폰 알람을 끈다. 5분 후. "일어나세요~" 소리는 아까보다 더 크게 울린다. 나는 다시 손을 뻗는다. 그렇게 두 번을 더 알람을 끈 뒤에야 일어나 얼굴에 두어 번 물 칠만 하고 대충 옷을 꿰어 입고는 집을 나선다.

오전 여섯 시 십오 분. 다섯 시 사십오 분에 맞춰놓은 첫 알람이 울린 후 집을 나서기까지 삼십 분. 그나마 반은 의식을 잡고 늘어지는 잠과의 싸움으로 보냈다. 집에서 지하철까지 십오 분. 집 밖으로 나서면 걸음은 종종거리다 못해 거의 뛰다시피 한다. 여섯 시 삼십 분 출발 차를 꼭 타야 한다. 이 차를 놓치면 십 분을 기다려야 하고 그러면 지각이다.

처음엔 늦어도 다섯 시 이십 분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출근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출근 하루 만에 폐기되었다. 나에겐 아침밥보다 오 분, 십 분의 잠이 더 소중했다. 아니 몸이 그걸 요구했다.

지하철 속에서의 한 시간은 다시 수면으로 채운다. 애초에는 독서를 계획했다. 출·퇴근 두 시간이 오로지 독서 시간으로 확보된다면 이거 괜찮은 거다. 독서시간을 계획해 놓지만, 대부분 지키지 못하는 이전의 일상보다 오롯이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오히려 더 확보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역시 이틀 만에 폐기되고 말았다. 지하철에 앉아 책을 펼치면 세 정거장도 지나기 전에 이미 졸고 있다. 몸이 어느새 의식을 점령하기 때문이다.

일곱 시 삼십 분, 부산 사상공단 모덕역은 출근하는 노동자들로 붐빈다. 모두 후줄근한 작업복을 입은 그들의 눈꼬리엔 미처 떼어 놓지 못한 잠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지하철 역사를 나오니 공단 지역이지만, 아침 공기는 상쾌하다. 잠이 확 깨며 공장까지 가는 십 분 동안 내 몸은 작업 모드로 바뀐다. 뻐근한 손목과 묵지근한 아귀가 통증을 못 느끼는 무신경 모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일당 명목이 어떻게 정해지느냐가 중요하다

 작업용 코팅 장갑, 삼 일에 한번 씩 지급한다.
 작업용 코팅 장갑, 삼 일에 한번 씩 지급한다.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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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6일부터 11월 20일까지 나는 부산 사상공단의 새시(건물의 창호) 제조업체 H사에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8시간 일을 하면 5만 원을 받는다. 8시 30분까지 잔업 하면 7만 원, 여기에 특근 두 시간을 더하여 10시 30분에 마치면 9만 원을 받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당은 5만 원이 아닌 4만 5000원이다. 5000원은 교통비란다. 첫날 관리직 직원이 설명해준 일당 내역이다. 명목이야 어떻든 받는 돈이 같으면 그게 그거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명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잔업시간의 계산이 달라진다.

즉 일당이 5만 원이면 시급이 6250원이지만, 4만 5000원이면 5625원이 된다. 이 시급에 따라 잔업을 계산한다. 나중에 공장 생활을 오래 한 다른 동료로부터 이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명목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왜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올해 최저임금인 시급 4860원보다 765원이나 많고(하루 치로 계산하면 무려 6120원이나 된다) 여기에 점심과 (잔업을 할 경우) 저녁까지 제공하니 알바 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은 대우 아닌가 싶었다.

의문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정규 8시간 근무는 8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점심시간 한 시간을 빼면 5시에 마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5시 30분이지? 그러나 그것도 이내 풀렸다. 작업 중간에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오전 9시 30분, 오후 2시, 4시에 각각 10분씩 쉬는데 이 시간을 모두 보태면 30분이 된다. 그 시간만큼 늦게 퇴근하는 것이다.

"회사가 즈그들 손해 볼 짓은 절대 안 해."

설명해 주었던 동료의 말이었다. 이런 초보적인 시간 계산도 못하다니, 그동안 내 생활의 잣대가 시간 단위로 살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공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일상은 모든 것을 시간 단위로 비교 측정하는 시급 인생이 되었다.

첫날 이십 분 전에 사무실에 가니 관리직 직원이 근무태도에 관한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려준 후 현장의 공장장에게 인계하였다. 50대 중반인 공장장은 흰 면장갑과 안쪽에 빨간 비닐코팅이 입혀진 장갑 두 켤레를 주었다. 약 150평 정도 되는 2공장 안은 두드리는 소리, 가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쾅쾅, 웅웅, 붕붕, 익숙지 않은 소음에 귀가 멍했으나 그걸 의식할 만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공장장은 나를 창틀 조립 공정에 배치했다.

창틀은 알루미늄으로 만든다. 그래서 그다지 무겁지는 않다. 그러나 절단기로 베어낸 자리는 날카로워 자칫하면 베이기 쉽다. 될 수 있으면 맨살을 노출시키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냉난방 시설이 없는 이곳에서 한여름이라면 그게 가능할까 싶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차라리 베이는 게 낫다고 한다. 특히 올여름 같이 무더우면 더욱 그렇단다.

그들이 말을 하며 걷어붙인 팔과 다리는 긁히고 베인 상처가 금간 자동차 유리처럼 자잘했다. 그것은 훈장처럼 자랑스러운 노병의 부상도 아니었고, 자해 공갈단처럼 과장된 상처도 아니었다. 그저 삶의 흔적이었다. 오래된 가구에 나 있는 흠집처럼 자연스러웠다.

잔업 없는 수요일

첫 임무는 조립한 창틀의 빈 공간에 플라스틱 부속을 끼우는 것이었다. 끼우는 작업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다. 손가락에 약간의 힘만 주면 된다. 그러나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이고 단순반복 동작을 쉬지 않고 계속하니 아귀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쉬고 싶었다. 몇 시간은 했지 싶어, 공장 벽에 붙어 있는 시계를 보니 한 시간도 안 됐다.

첫 쉬는 시간, 사람들이 일제히 하던 동작을 멈추고 건물 밖으로 나간다. 한시라도 소음과 먼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 같았다. 쉬는 시간 십 분은 꿀처럼 달콤했다. 그러나 작업 시작 알림은 독처럼 썼다. 쉬고 있으니 손아귀의 통증이 더 심해졌다. 다시 부속을 잡고 끼우며 이제 한 시간 지났다, 나머지 일곱 시간을 어떻게 견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금세 사라졌다. 내 앞에 창틀이 쌓이기 시작했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 눈앞에 쌓이는 작업량은 생각을 몰아냈다.

어느새 점심시간. 직원이 정규직과 알바 포함해서 총 스무 명 내외인지라 자체 식당은 없고 음식점과 월계약으로 식당을 이용한다. 식당은 공장 바로 옆에 있다. 다른 중소공장 사람들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공장 식사시간은 11시 30분에 시작한다.

30분 안에 우리 공장 식구들이 먹고 나가야 다른 공장 사람들이 12시부터 식사를 한다. 그러니 밥 먹는 시간이 오래 걸려선 안 된다. 식당으로선 사람들의 식사 시간이 오래 걸릴까 봐 걱정할 것 같았는데 그러나 그것은 나의 기우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불과 십 분 늦어도 십오 분 내에 식사를 마치고 나갔다. 가장 늦게까지 식사한 사람은 나였다. 그런 나도 십오 분을 넘기지 않았다.

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텅 빈 공장 안에 괴괴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혼자서 알루미늄 창틀 재료에 앉았다. 사르르 잠이 왔다. 졸다 보니 쨍하는 기계음이 허공을 갈랐다. 오후 작업 시작 시간이다. 사람들은 어느새 자신의 작업대 앞에 서 있다.

오전 작업이 손의 고통과의 싸움이었다면 오후엔 다리의 고통과의 싸움이었다. 몇 시간째 서 있다 보니 다리에 서서히 감각이 없어져 갔다. 쉬는 시간이 오기만을 바랐다. 차라리 움직이는 게 나았다. 재료를 나르는 일이 오히려 반가웠다. 그만큼 제자리에 서서 작업하는 게 더 힘들었다.

오후 두 시,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재료 더미에 그냥 앉았다. 사람들은 모두 건물 밖으로 나갔다. 혼자 있는데 누군가 빵과 우유를 들고 오더니 나에게 내민다. 두 시는 간식을 나눠주는 시간인데 내가 혼자 앉아 있는 걸 보고 갖다 준 것이다. 고마웠다. 그 사람이 갖다 준 것은 빵과 우유가 아니라 거친 광야에서 건네준 한 통의 물이었다.

오전 내내 말 한마디 안 했고, 식사 시간에도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었다. 말을 건네는 사람도 없었지만, 먼저 말을 붙이지도 않았다. 낯선 환경에서 스스로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밀자 나는 목마른 자처럼 그의 호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4시 휴식 시간이 지나자 시계를 보는 간격이 짧아졌다. 십오 분마다 한 번씩 쳐다보다 십 분으로 줄더니 나중엔 오 분마다 한 번씩 쳐다본다. 그러면 그럴수록 시간은 더디 갔다. 드디어 다섯 시 반. 하루가 끝났다. 이날은 수요일. 잔업 없는 날이다. 모두가 퇴근한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사상공단에도 일 주일에 하루, 잔업 없는 날이 지켜지기 시작했단다.

묵지근한 다리를 이끌고 퇴근을 했다. 잔업 없는 여덟 시간 근무에도 녹초가 됐는데, 다음날부터는 여덟 시 반까지 열 시간 작업해야 하는데 어떻게 견딜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입구에 편의점이 하나 있다. 창에 붙어 있는 파란색 로고가 그날따라 눈에 들어왔다. 나는 로또를 샀다.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PERD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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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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