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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힘들지 않게 겨울산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북한산 둘레길.
 그리 힘들지 않게 겨울산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북한산 둘레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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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정말 다른 세상이다. 특히나 눈 내린 겨울산은 한 폭의 수묵화 같고 타 계절과 완연히 다른 느낌이 들어 꼭 한 번 가보곤 한다. 하지만 유난히 해가 일찍 저무는 데가 겨울산인 까닭에 어스름한 새벽에 일어나 일찍 출발을 해야 한다.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는 이불의 유혹을 이겨내고 침대에서 나와 산행을 위해 어둠과 추위가 기다리고 있는 집밖으로 나서는 일은 전장에 나서는 전사의 용기가 필요할 정도다.  

다행히 필자가 사는 서울엔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밥까지 잘 먹고 찾아가도 겨울 산행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북한산 둘레길이다. 주말이면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로 인파를 이루는 불광역 2번 출구로 나와 몇 분 걸어가면 북한산 둘레길 표지판과 함께 북한산 생태공원이 나온다. 북한산 둘레길 8코스 구름정원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구름 정원길이라니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둘레길 이름이 참 낭만적이다. 생태공원 뒤로 눈 내린 북한산의 멋들어진 능선이 펼쳐져 있어 걸음을 멈추게 된다. 

북한산 생태공원에서 은평 뉴타운이 들어선 진관동을 지나 시골학교 같은 분위기가 남아있는 북한산 초등학교까지 걸어가 보았다. 북한산 둘레길 코스로는 8코스에서 10코스까지로 코스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구름정원 길, 마실 길, 내시 묘역 길로 흥미로운 이름들이다. 

구름정원 길, 마실 길.. 정답기도 하다

길섶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서있는 북한산 자락의 동네 독박골.
 길섶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서있는 북한산 자락의 동네 독박골.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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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아래로 숲과 도시의 전경이 펼쳐지는 나무 데크길, 구름정원 길의 백미다.
 발 아래로 숲과 도시의 전경이 펼쳐지는 나무 데크길, 구름정원 길의 백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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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은 오르막길도 있지만 경사가 순하고 평탄한 길이 대부분이라 눈 내린 겨울이지만 걸음걸음이 부담스럽지 않다. 하얀 설경을 추억 속에 사진에 담으며 같이 간 친구와 얘기도 나누고 중간 중간 벤치에 앉아 쉬어가다 보면 족히 반나절이 걸린다. 나무 데크길, 산길, 숲길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져 따분하지 않고 걷는 재미가 있다.

둘레길의 미덕은 산과 숲을 지나면서도 험하지 않다는 것. 북한산 자락을 가로질러 구불구불 걷는 길이다 보니 가족들과 같이 나온 아이들이 길 섶의 쌓인 눈으로 눈싸움을 하며 장난을 치고, 주인과 함께 온 귀여운 반려견은 흰 눈을 보고 신나서 발을 구르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요즘처럼 눈 내린 겨울에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어 동네 어르신들도 운동 삼아 산책 삼아 나오기 좋겠다. 

길가에 둔중하고 커다란 바윗돌들이 나타나 눈길을 끌고 둘레길의 정취를 돋구었는데 이 동네의 옛 이름이 독박골이란다. 독박골은 독바위골의 줄임말로 바위가 독(항아리)와 같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는 설과 유달리 바위가 많아 숨기 편하다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는데 크고 작은 바위들로 보아 충분히 그런 이름이 붙을 만하다. 가까이에 있는 6호선 전철 이름도 독바위역이다. 전철을 타면서 독바위역의 유래가 궁금했는데 둘레길에서 풀렸다. 

눈이 내린 후라 뽀드득 뽀드득 경쾌한 발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구름정원 길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나무 데크길이 이어진다. 주위엔 저마다의 포즈를 취하고 서있는 소나무들이 가득하다. 탁 트인 하늘과 울창한 숲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시의 풍경이 함께 발밑에 펼쳐져  보여 발걸음이 저절로 멈추게 한다. 나무 데크길 끝엔 벤치가 놓여져 있는 전망대도 있어 한숨 쉬어가기도 좋다. 머리 위로 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북한산과 능선이 손을 뻗치면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능선에 쌓인 겨울눈 때문인지 북한산의 위용이 한결 돋보인다.  

둘레길 중간에 놓여있는 쉼터마다 써놓은 걷기 관련 명언 가운데 프랑스의 작가 장자크 루소가 남겼다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걸을 때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절과 암자, 서울의 옛 동네... 새롭고 새삼스러운 풍경들

둘레길을 걷다가 언제든 고개를 위로 들면 멋진 북한산 풍경이 나타난다.
 둘레길을 걷다가 언제든 고개를 위로 들면 멋진 북한산 풍경이 나타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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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길에서 만난 서울의 옛 동네 모습이 새삼스럽다.
 마실 길에서 만난 서울의 옛 동네 모습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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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자락엔 작은 사찰과 암자들이 숨어 있는 듯 자리하고 있다.
 북한산 자락엔 작은 사찰과 암자들이 숨어 있는 듯 자리하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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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 뉴타운의 아파트 단지와 북한산 둘레길이 들어서기 전엔 시민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았을 불광사, 성수암, 선림사 같은 이름 없는 작은 절들도 만난다. 절 마당 한쪽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항아리들이 참 정답고, 스님들이 도를 닦고 피안의 세계를 추구하는 불자이기 전에 매일 먹고 살아야 하는 평범한 인간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런데 요즘 산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유행인지 소리가 나는 작은 스피커를 주머니에 넣고 걷는 사람들이 흔하다. 겨울 산속의 고즈넉한 적막이 고독하고 외롭게 느껴져서일까. 저마다 라디오, 음악을 서로 들리게 켜놓고 지나는 모습이 생경하다. 어떤 아저씨는 너무 스피커 소리를 크게 틀어놓아 정중히 소리 좀 낮춰 달라고 말하자 다행히도 미안해 하는 표정을 짓는다. 뽀드득~ 눈길에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는 경쾌한 소리, 고개를 들면 언제든 멋진 겨울 풍광을 보여주는 북한산의 장중한 고요함도 즐겼으면 좋겠다.  

둘레길은 9코스 마실길 코스를 지나면서 산자락에서 잠시 내려와 어느 동네를 지난다. 항아리들이 정답게 모여있는 옥상이 있는 단층집들과 골목길을 걷다 보면 서울에 존재했던 옛 동네의 정취가 물씬 풍겨와 새롭다. 겨울엔 더 적적했을 동네에 북한산 둘레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인지 식당과 가게들에서 활기가 보여 좋다. 간식거리를 구하러 들어간 작은 슈퍼엔 둘레꾼들을 위해 커피믹스와 라면도 끓여준다.    

북한산 둘레길 8코스 구름정원길이 끝날 지점에 부근에선 잘 알려진 큰 절 진관사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절 입구 일주문에서 대웅전 안까지 계곡을 따라 나무 산책로가 있어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감상하며 기분 좋게 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내 자판기에서 차 한 잔을 뽑아 절 툇마루에 앉았다. 눈 내린 사찰과 그 뒤로 호위하듯 펼쳐진 북한산의 풍경, 화려한 색깔이라곤 눈에 띄지 않는 흑백의 풍경이지만 한 폭의 수묵화 그림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서울에서 제일 멋진 풍경을 지닌 초등학교

소나무 벌목을 금하는 '송금비' 앞을 지키는 문인석.
 소나무 벌목을 금하는 '송금비' 앞을 지키는 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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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진 풍경을 지닌 학교가 서울에 있다니.
 이렇게 멋진 풍경을 지닌 학교가 서울에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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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에서 나와 사슴목장과 농원, 밤나무골이 이어지는 길은 도시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시골길이다. 북한산 둘레길 10코스 내시묘역 길로 도저히 서울 같지가 않고 어디 멀리 여행을 떠나온 듯싶다. 길섶에 웬 문인석과 묘비, 눈 덮인 무덤이 나타난다. 1637년(인조 15년) 조성된 것으로 내시부의 환관이었던 신공(申公)의 묘역이라는 안내팻말이 서있다. 하얀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내시의 무덤이 포근해 보인다. 

내시묘역 길엔 이외에도 무연고의 무덤들도 보이고 '경천군 송금물침비'라는 무슨 내용의 비석인지 궁금하게 하는 큰 비석도 나타나 눈길을 머물게 한다. 비문을 해석해보면 '임금(광해군)이 경천군에게 하사한 경계 내의 소나무를 침범하는 것을 금하니 들어가지 말라'라는 뜻이다. '송금(소나무 松, 금할 禁)' 이란 역사적으로 국가가 필요로 하는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소나무의 생장에 적당한 곳을 선정하여 보호하고 벌목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송금 정책은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시행됐다.

고려 때 이미 국가에서 소나무를 심고 함부로 베어 내지 못하게 했는데 '고려사'에 현종 4년(1013)에 "성내(城內)의 송백남벌을 금함과 아울러 공용(公用)에 쓸 것 이외에는 시기에 어긋나서 벌송(伐松)함을 일체 금지하였다"는 기록으로 잘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소나무는 오래전부터 조상들의 아낌을 듬뿍 받아왔구나 싶다.

오늘날의 '자연보호정책'과 같은 역할을 했던 송금(松禁)비는 600년 전 조선시대 '송금정책'의 실례를 보여주는 것으로 서울시 문화재가 되었다. 비석 덕분인지 둘레길 주변이 나무들로 빽빽하고 숲이 울울창창해 '멧돼지 출현 주의' 현수막이 붙어 있을 정도다.  

내시묘역 길의 끝에는 북한산 국립공원과 함께 소박한 분위기의 시골학교 같은 북한산 초등학교가 나타난다. 학교 정문으로 가는 길엔 익살맞은 표정의 장승들과 함께 1967년 학교를 세울 때 큰 역할을 했다는 '유흥억 할아버지 공적비'가 세워져 있어 이채롭다. 당시 산이었던 학교 터를 다듬어서 교실을 짓고 나무를 심으며 운동장을 닦는데 동네 어른들이 모두 나서서 땅을 파고 수레를 끌며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당시 학교에 심은 나무들이 잘 자라 2005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학교 숲 상을 받았단다. 무엇보다 내겐 학교 운동장 뒤로 우뚝 펼쳐진 북한산의 자태가 참 멋있어 작은 운동장을 한 바퀴 천천히 걸으며 눈 쌓인 겨울 산을 눈이 시리도록 감상했다. 아마 가을엔 또 다른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리라. 서울에서 제일 아름다운 학교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겨울산행 TIP) 겨울 산행 때는 배낭을 꼭 메는 게 좋다. 산행 중 내리막길이나 쌓인 낙엽 위를 걷다가 미끄러져 뒤로 넘어지면 자칫 엉덩이뼈나 머리를 다칠 수 있는데 이때 배낭이 완충역할을 해 부상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ㅇ 문의 ;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시설과 둘레길운영팀 (02-900-8085)
ㅇ 서울시 온라인 뉴스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북한산 둘레길, #구름정원길, #마실길 , #내시묘역길, #북한산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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